난항에 빠진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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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러리스트 집단인 쿠르드 민병대 YPG를 미국이 감싸고 들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터키 대통령은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의 면담도 취소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계획이 난항에 빠졌다. 군 장성들 사이에서 이른 철군에 대한 우려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데다, 철군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의회에서 미국의 쿠르드 민병대 안전보장 조건부 시리아 철군 계획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앙카라|로이터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의회에서 미국의 쿠르드 민병대 안전보장 조건부 시리아 철군 계획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앙카라|로이터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 1월 8일(현지시간) 미군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 파트너인 쿠르드족에 대한 안전보장을 철군조건으로 내건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과의 면담을 취소했다. 터키는 미국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이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테러리스트 집단인 쿠르드 민병대 YPG를 미국이 감싸고 들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70년간 동맹을 이어온 요르단의 분위기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시리아 주둔 미군 철군계획은 중동지역 동맹국들과 의견을 조율한 다음에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스라엘이 미국에 시리아 남서부 골란고원 점유에 대한 영토주권 인정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트럼프 정부의 외교 난맥상이 시리아 철군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터키·쿠르드 딜레마

터키의 YPG에 대한 경계감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리아 철군이 수개월이 아니라 수년까지 늦춰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터키는 YPG가 자국 내 분리주의 무장정파 쿠르드노동자당(PKK)과 연계해 터키 남부와 시리아 북부에 세력권을 형성할 것을 우려한다. YPG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면서 ‘미군이 철수하기만 하면 이들에 대한 군사작전을 감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8일 의회 연설에서 볼턴 안보보좌관이 앞서 6일 이스라엘 방문시 했던 조건부 철군 발언을 두고 “심각한 실수”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에르도안은 “터키 군대는 시리아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며 군사행동까지 시사했다.

사실상 전날부터 볼턴과의 면담 취소 및 날선 비판 등 파행은 예고된 것이었다. 에르도안은 7일 YPG가 전쟁기간 소년병들을 징집하고 자주 테러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징집한 소년병들을 가족들과 재결합할 수 있도록 조사활동이 마무리될 때까지 YPG에 대한 군사작전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터키 대통령 대변인실은 터키가 쿠르드족을 겨냥하고 있다는 볼턴의 발언은 “비이성적”이라며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이 나토 동맹국 터키 입장에 치우쳐 쿠르드족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만약 쿠르드족을 방치하면 미국은 대테러전 파트너를 이용한 뒤 버렸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향후 대테러전을 위해 중동에 진입해야 할 때 군사 파트너는 물론이고 교두보를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진다. 결과적으로 중동에서 러시아·이란 견제는 더욱 힘들어지고 영향력은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6일(현지시간) 에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야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기자회견 뒤 악수를 하고 있다. / 예루살렘|EPA연합뉴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6일(현지시간) 에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타야후 이스라엘 총리와 공동기자회견 뒤 악수를 하고 있다. / 예루살렘|EPA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갑작스런 철군 결정 이후 시리아 북동부 일대 쿠르드 자치지역에서는 미국에 대한 배신감이 높아질 대로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에는 YPG와 이들이 주축이 되는 대테러 무장조직 연합체 시리아민주군(SDF)이 주둔한다. SDF 대변인은 군사매체 <디펜스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미국과 협력할 때부터 지역 무장분파들은 ‘언젠가 당신들은 미국에 이용만 당하다 버림받을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미군이 철수할 경우 지역 무장파벌의 SDF, YPG를 대상으로 한 보복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쿠르드 자치지역 정당 연합체 민주사회운동 대표 알다르 할릴은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우리는 많은 적을 얻었지만 트럼프는 결국 모든 것을 망쳐놔버렸다”고 말했다.

쿠르드족은 터키와 지역 무장분파들의 군사위협에 러시아가 지원하는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까지 손을 내밀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터키가 호시탐탐 노리는 만비즈 인근에 병력을 집중 배치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군사당국자들에게는 쿠르드족이 자신들과 협의도 없이 아사드 정권에 군사지원을 요청한 것 자체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AP통신은 8일 러시아 군경이 시리아 정부군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만비즈를 순찰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시험대 오른 친이스라엘 노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드러지고 있는 극단적인 친이스라엘 노선도 중동에서 외교 해법을 도출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6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볼턴 안보보좌관에게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토주권 공식 인정 필요성을 거듭 설명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예루살렘에서 업무만찬 전 볼턴에게 “당신이 그곳(골란고원)에 있으면 왜 우리(이스라엘)가 골란고원을 떠날 수 없는지, 왜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영토주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한지 완벽하게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볼턴 안보보좌관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와 함께 예루살렘 올드시티 ‘통곡의 벽’ 지하에 있는 고대 터널을 둘러보기도 했다. 이전 정부에서 미국 관료들은 관례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점유권 논란이 끊이지 않는 예루살렘에서의 회의를 피해 왔다. 예루살렘은 국제적으로 누구의 영토도 아니며 예루살렘 동쪽은 팔레스타인에, 서쪽은 이스라엘에 거주가 허용된다. 볼턴이 방문한 올드시티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과정에서 요르단으로부터 빼앗은 지역이다.

이 같은 볼턴 안보보좌관의 행보에 요르단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아이만 사파디 요르단 외무장관은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토주권 인정 요구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스라엘군은 골란고원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골란고원 영토주권 인정 요구는 이란과 충돌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불안요소로 지적된다. 이스라엘과 이란은 시리아 내전의 혼란 속에서 그림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시리아 내부에서, 특히 골란고원에서 군사력 증강 움직임이 포착되면 이스라엘이 공습으로 이를 저지하는 양상이다. 이스라엘의 골란고원에 대한 영토주권을 인정하면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 이란 양국의 군사충돌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9일에는 이란이 직접 골란고원 내 이스라엘군 시설을 공격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란이 헤즈볼라, 하마스 등 지원세력을 동원하지 않고 직접 이스라엘군을 공격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협상 탈퇴 결정 여부를 지켜보면서 그동안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한 반격을 자제해 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스라엘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상 탈퇴를 선언한 지난해 5월 8일 곧바로 예비군을 소집하고, 방공미사일 ‘아이언 돔’에 배터리를 장착하는 등 최고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특히 골란고원 주둔 당국자에게는 이란군의 이상행동 징후가 발견되는 대로 폭격에 대비하라고 주문했다.

<박효재 국제부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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