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을 말하다

(3) 부모들이 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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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혐의로 피소된 담임선생님… 탄원서 제출 이후 무혐의 처리

학교에서 아이들은 친구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잊어가고 있다.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되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린다. 심각한 교내 폭력도 가해자를 피해자와 분리시키고,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는 방식으로 해결된다. 어디에도 반성과 화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사 역시 갈등 해결에 무책임하다. 학생들 간의 갈등 해결을 위해 교사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여전히 학교폭력 사안에 대해 담임 종결권과 학교장 종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교사와 학교장이 학교폭력을 덮고 쉬쉬할 것이라는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이 학교폭력 피해학생도, 가해학생도, 교사와 학부모들도 멍들어가고 있다. <주간경향>은 3회 연속으로 학교폭력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보기로 했다. 세 번째는 학교폭력 가해자로 몰린 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한 엄마들의 이야기다.

탄원서를 작성한 엄마들이 지난 12월 초 한 커피숍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류인하 기자

탄원서를 작성한 엄마들이 지난 12월 초 한 커피숍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류인하 기자

지난해 초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생을 학대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2017년 3월부터 1년간 1학년 담임교사가 반 아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했음에도 학교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인터뷰에서 아이가 스트레스성 적응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교사를 교육청에 고발하는 한편 경찰에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했다. 피해아동의 부모가 경찰에 제출한 교사의 가해혐의는 다섯 가지였다.

급식소 난간에 매달리며 노는 아이를 제재하고 막은 혐의, 식사 도중 맞은편 아이를 발로 찬 것을 제재한 혐의, 복도에서 뛰는 행동을 제재한 혐의, 하굣길에 교내 상급생과 부딪혀 다쳤는데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혐의, 전학 가는 날 송별회를 해주지 않은 혐의 등이다. 부모는 교사의 부적절한 처치로 아이의 자율성과 자아존중감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조사로 건강 악화된 교사에 권고휴직

교사는 경찰 조사에서 “급식소 난간에 매달리며 놀 경우 크게 다칠 수 있어 제재했고, 맞은편에서 밥을 먹는 아이를 차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기 때문에 옆으로 이동해 식사를 하라고 이동조치를 한 것뿐”이라고 진술했다.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것은 훈육이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잠깐 서 있도록 하되 교사도 함께 서서 지키고 있었다고 말했다. 상급생과 부딪혀 다친 것 역시 즉시 조치를 취했던 부분이고, 송별회의 경우 파티는 하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인사하는 시간은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이뤄진 절차에서 교사의 편이 돼주는 곳은 없었다. 교육청 조사 및 해명과정에서 건강이 악화된 교사에게 학교는 권고휴직을 종용했다. 그는 담임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졸지에 교사의 반 아이들은 학기 중간에 담임이 교체됐다.

엄마들이 탄원서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경찰과 연계된 아동보호단체의 연락을 받은 이후였다. 그 전까지는 아이의 학대를 주장하는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여 왔다.

피해아동과 같은 반을 했던 한 학부모는 “2학년 자모모임(엄마모임)에 나온 A엄마가 A가 1학년 때 겪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아이가 이런 피해를 입었다. 너무 속상하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다. 엄마이기 때문에 내 자식이 학교에서 학대를 당했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은 마음에 그 엄마의 말에 공감하고 힘들어 하는 말에 귀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 사이 아동보호단체에서는 피해아동과 같은 반이었던 2학년 아이들을 상대로 추가조사를 벌였다. 또 부모가 입회하지 않은 상태에서 상담사가 아이들을 1대 1로 면담하겠다는 문자를 엄마들에게 보냈다. 반 아이들의 추가 피해 진술을 확보해 교사의 혐의를 좀 더 보강하려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그러나 “내 아이들을 조사하도록 놔둘 수 없다”고 했다. 이미 1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아무리 내 아이지만 만 7세에 불과한 어린아이가 하는 말이 모두 진실일 수도 없다고 했다. 또 너무 어려서 답변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을 상대로 진술조사를 벌여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피해아동 엄마의 주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때쯤이었다.

[학교폭력을 말하다](3) 부모들이 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낸 이유

“요즘 선생님들은 학교 카페에 가끔 아이들 사진을 남겨주시기는 하지만 자신의 얼굴까지 함께 찍혀가면서 아이와 같이 찍은 사진을 올려주는 교사는 드물었어요. 젊은 여선생님이셨고, 거의 초임교사였으니 얼마나 성실하게 아이들을 봐주셨겠어요. 항상 정성껏 아이들을 대해준 분인데 왜 유독 한 아이만 학대했을까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거죠. 그 과정에서 피해아이와 2학년 때도 한 반을 했던 우리 아이가 저한테 질문을 하더라고요. ‘엄마, A는 수업시간에 그림그리기 하기 싫다고 그냥 가방 싸서 집에 가던데 나도 그래도 돼요?’라고요. 선생님이 가만히 계시더냐고 하니 지금 선생님은 그냥 가도 놔둔다고 했어요. 우리가 아무래도 너무 피해아이 엄마의 말에 치우쳐 있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거죠.”

아동보호단체로부터 연락을 받았던 엄마들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1학년 담임교사 부모님을 직접 만나고 온 엄마도 있었다. 부모는 “혼자 이 일을 헤쳐나가기가 너무 힘들어 어머님들께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좀 알아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면서도 “어머님들과 (가해교사로 몰린) 내가 연락을 하면 안 좋은 말이 나올 것 같아 연락을 드릴 수 없었다”고 이 엄마에게 전했다.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교사가 1년간 1학년 반 아이들의 활동을 기록한 각종 일지부터 각종 증거를 만들어놓고 있는 동안 그 교사를 도운 사람은 없었다. 한 엄마는 “ 부모님이 너무 울어 말을 잇지 못하실 정도였다”고 했다.

엄마들은 대부분 ‘워킹맘’이었다. 낮에 모여 의견을 나눌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3명의 엄마가 탄원서 문구를 일단 작성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피해아동의 부모는 아이를 위하는 마음이 강했을 뿐이겠지만 이 과정에서 교사는 너무 큰 상처를 입었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더 이상은 학교와 선생님,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신속하게 해달라는 내용으로 작성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엄마들이 작성한 탄원서 내용 중 일부

엄마들이 작성한 탄원서 내용 중 일부

같은 반 엄마들 “객관적 시각” 의견

탄원서 문구가 모두 작성되는 데까지 꼬박 이틀이 걸렸다. 퇴근 후 아이들이 잠든 시각부터 엄마들의 작업이 시작됐다. 한 사람이 문구를 제안하면 나머지 엄마들이 의견을 내고, 또 다른 문구를 만들어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한 엄마는 “이틀 밤을 꼬박 새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A4용지 한 장짜리 탄원서가 만들어졌다. 16명의 엄마가 서명했다. 엄마들이 회사에 반차를 내고 모였다. 다 함께 탄원서를 들고 교육청으로 갔다. 교육청 관계자는 그러나 “우리가 손쓸 것은 없고, 이 사안은 이미 경찰로 넘어갔다”고 했다.

엄마들은 작성한 탄원서를 제출하고 곧바로 학교로 갔다. 혹 학교와 상의없이 엄마들끼리 벌인 일에 피해가 갈까 걱정된다고 했다. 교장·교감은 “이런 생각을 가져줘서 고맙다”고 했다. 경찰에도 “엄마들을 조사할 일이 있으면 우리가 조사를 받을테니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수사를 부탁한다”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후 경찰은 교사의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전부 혐의 없음 종결처리를 했다. 피해를 주장했던 아동은 학교를 떠났다.

여전히 ‘가해 선생님’으로 낙인찍힌 교사는 학교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 관계자는 2일 “그 일로 학교도,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모두 생채기를 입었다”면서 “학교 입장에서는 어떤 말을 하든 또 다른 누군가가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절 질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엄마들에게 탄원서에 어떤 내용을 담았냐고 물었다. 한 장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중략) 사실 지난 1년간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에서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누구도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재 담임교사는 피소되어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이 사건으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교직에 복귀하는 것도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란 앞으로 더 큰 사회로 나가기 위해 연습하는 곳입니다. 조직(단체)생활은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있고, 이를 어길 경우 훈육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지속적으로 교사를 문제삼고 사사건건 지적한다면 과연 교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으며, 아이들 또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훈육은 아이들이 바람직하게 자라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후략)”

2017년 교권침해 상담사례 508건 접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해 5월 발표한 ‘2017년도 교권 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접수된 교권침해 상담사례 건수는 508건으로 집계됐다. 2007년(204건)에 비해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교총이 접수·상담한 508건 가운데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267건(52.56%)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고, 처분권자(학교장·교육청 이상)에 의한 부당한 신분피해가 81건(15.81%)으로 다음으로 많았다. 교직원에 의한 피해(77건·15.22%), 학생에 의한 피해(60·11.81%), 제3자에 의한 피해(23·4.53%)가 뒤를 이었다.

교육전문가들은 아이가 친구나 교사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담임교사와 먼저 이야기를 나눠본다면 교권침해 건수도 현저히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접수되는 각종 학부모 민원이나 교사 민원사례를 살펴보면 신뢰를 갖고 대화만 해도 갈등 없이 해결가능한 것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부모님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나쁜 일을 당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즉시 항의하거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만 손해를 본다는 그릇된 인식이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나 내 아이의 말 역시 일방적인 진술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갖고 한 번만 학교를 믿고, 교사를 믿고 대화를 한다면 교사를 상대로 한 학부모의 항의, 폭행, 소송은 지금보다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와 학부모의 다툼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아이들”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해 12월 26일 ‘교원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교육위원회를 통과, 앞으로는 학부모나 학생의 폭력·폭언 등 교권침해 신고 시 교육감이 의무적으로 고발조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학생의 경우 일시적인 반 변경 조치 및 심할 경우 강제전학까지 가능하게 됐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특별법 강화로 교권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그러나 교사와 학부모가 먼저 대화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노력하는 게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학교폭력 실태조사’ 문제 없나

초·중·고에서 매년 두 차례 실시, ‘좋은 친구찾기 조사’도 함께하자

대한민국 아이들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매년 두 차례에 걸쳐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답한다.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한 실태조사는 학교폭력 정책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된다.

나는 좋은 친구인지, 좋은 친구가 있는지를 떠올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제공=천경호 교사

나는 좋은 친구인지, 좋은 친구가 있는지를 떠올려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제공=천경호 교사

나쁜 기억, 나쁜 친구 떠올리게 돼

일부 학교의 경우, 실태조사가 사실상 가해자 색출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수업 중 선생님의 수업을 의도적으로 방해하거나, 선생님에게 욕설을 하거나,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학생을 목격한 경우 그 내용을 기재하라’, ‘설문조사 대상기간에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거나 목격한 경우,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라(※가해학생의 이름, 학년, 반, 학교 등을 적으세요)’ 등의 질문을 던지는 곳도 적지 않다. 아이들은 응답을 위해 자신이 아는 나쁜 친구를 떠올리고, 나쁜 경험을 되살려야 한다. 이 같은 조사는 긍정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외부에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학교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교사에게 알릴 수 있고, 학년별로 어떠한 형태의 학교폭력이 이뤄지는지를 파악해 적절한 예방교육도 가능하다.

문제는 매년 이 같은 질문지에 답을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친구라는 존재, 학교라는 존재가 어떤 이미지로 남을지에 대한 교육적 고민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너무도 쉽게 학교폭력이라는 말을 꺼낸다. 어떤 행동이 학교폭력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지를 어른보다 더 잘 안다. 매년 받아드는 설문지 문항을 통해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들은 자신을 도와줬던 친구, 만나면 웃음이 나는 친구, 싸운 뒤에도 친구로 지내고 싶은 친구, 친구와 함께 어려운 상황을 이겨냈던 기억, 즐거운 기억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긍정적 경험을 떠올릴 기회를 교육이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천경호 성남서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이 매년 두 차례 실태조사 응답을 하면서 결국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학교에서 있었던 나쁜 경험, 나쁜 친구의 얼굴”이라며 “실태조사도 좋지만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좋은 경험, 좋은 친구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도 동등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간경향>은 ‘학교폭력을 말하다’ 기획을 마무리하면서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더불어 ‘좋은 친구 찾기 조사’도 함께 할 것을 제안하기로 했다. 아이디어 및 자료 제공은 천경호 교사가 맡았다.

조사방법은 각 해당 문장에 떠오르는 친구가 있거나 내가 문구와 일치하는 행동을 하는지 여부를 생각하고 ○/×로 답변하는 방식이다. 잠깐 시간을 내서 이 항목들에 답을 해보자. 나는 어떤 친구인지, 나의 우정은 어느 정도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자.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좋은 친구를 떠올릴 기회를 같이 가져보자.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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