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총수들 신년사 “기회와 도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변화의 근간은 급격한 혁신보다는 그룹의 전통과 고유 경쟁력 계승 강조

재계가 1월 2일 신년 하례식을 시작으로 일제히 2019년 한 해 대장정에 돌입했다. 2018년은 재계에 세대교체의 바람이 분 해였다. 삼성, 현대자동차, LG 등 주요 그룹의 총수가 사실상 교체됐다. 제조업의 위기 속에 반도체만 호황을 보이며 기업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했다. 올해 실적에 따라 새 총수들의 자질과 능력이 평가받게 될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1층 강당에서 열린 그룹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1월 2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 사옥 1층 강당에서 열린 그룹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하고 있다. / 현대자동차그룹 제공

신년사에서 그룹 총수들은 위기보다는 기회와 도전을 더 강조했다. 40~50대 젊은 총수들의 의욕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급격한 혁신보다는 그룹의 전통과 고유 경쟁력을 계승하자고도 했다. 변화만큼이나 조직의 안정을 바탕으로 신임 총수 체제의 연착륙을 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온고지신’ 외친 삼성과 현대차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50)과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48)의 현재 처지는 묘하게 닮았다. 둘 다 재계의 황태자로 불리며 오랜 기간 승계수업을 받았다. 승계과정에서 숱한 논란을 일으켜 큰 파장을 낳았고, 승계작업이 미처 완료되지 못한 상태에서 총수 지위에 오른 것도 동일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그룹의 총수에 해당하는 ‘동일인’ 지정을 받았고,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그룹을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그룹의 비약적인 도약을 이끈 재계의 ‘거목’이라는 점도 닮았다.

삼성과 현대차가 재계의 라이벌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는 점에서 올해 두 기업이 일궈낼 성과에 따라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서로 비교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이들을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도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그래서인지 이 부회장과 정 수석부회장은 신년사에서 그룹 전통의 계승에 의미를 부여하며 ‘옛것을 통해 새것을 알자’는 의미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을 강조했다.

삼성의 경우, 이 회장이 와병 중인 2014년 이후부터 전문경영인 명의의 신년사를 내고 있다. 올해도 이 부회장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삼성전자의 김기남 대표이사(부회장)가 하례식을 주관하고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초일류·초격차의 100년 기업을 만들자”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자세로 개발·공급·고객관리 등 전체 프로세스 점검을 통해 기존 사업의 기반을 더욱 견고히 하자”고 밝혔다. 2019년은 삼성전자가 설립 50주년을 맞는 해다. 초일류와 초격차는 압도적인 기술·경쟁 우위를 뜻하는 삼성의 고유 그룹 경영방침이다. 김 부회장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법고창신을 동시에 언급한 배경에는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세운 그룹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중이 담겨 있다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현대차 정의선 수석부회장 역시 전통을 강조했다. 그룹 시무식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은 정 수석부회장의 첫 당부는 변화와 혁신, 그리고 도전이었다. 정 수석부회장은 “기존과는 확연하게 다른 새로운 게임의 룰이 형성되고 있다”며 “생각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도전과 시도, 이질적인 모험을 즐기자”고 밝혔다. 이어 꺼내든 화두는 온고지신이었다. 그는 “글로벌 자동차산업과 대한민국 경제의 발전을 이끈 정몽구 회장님의 의지와 ‘품질경영’, ‘현장경영’의 경영철학을 계승하겠다”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시장의 판도를 주도해 나가는 게임체인저로서 고객으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는 그룹으로 거듭나겠다”고 포부를 내비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이 1월 2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 신년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SK그룹 제공

최태원 SK그룹 회장(가운데)이 1월 2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 신년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SK그룹 제공

지난해 타계한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에 이어 총수에 오른 구광모 LG㈜ 대표이사 회장(40)의 신년사에도 온고지신의 정신이 담겨 있다. 구 대표는 “LG가 쌓아온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동시에 더 높은 도약을 위해 변화할 부분과 LG가 나아갈 방향을 수없이 고민해 보았지만 결국 그 답은 ‘고객’에 있었다”며 10분간 진행된 신년사에서 고객을 무려 30번이나 언급해 화제가 됐다.

돌이켜보면 LG의 ‘고객가치 존중’ 정신은 고 구본무 회장의 신념이다. 구 회장은 1995년 회장으로 취임한 직후 사람의 얼굴 모양을 형상화한 현재의 LG그룹 CI를 만들면서 그룹의 주요 경영방침으로 고객가치를 제시했다. LG그룹의 TV 이미지 광고 노래로 더 유명한 ‘사랑해요 LG’ 역시 이때 탄생했다. 구 전 회장의 경영신념을 본인 역시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구 대표는 서른 번의 고객 언급으로 대신했다. 구 대표는 이어 ‘LG만의 진정한 고객가치에 대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고객가치 신념을 공개하기도 했다.

‘사회적 가치’ 강조한 SK와 롯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틀에 박힌 시무식이나 하례식 대신 토크콘서트 방식의 파격적인 신년회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올해로 총수 취임 21년을 맞는 베테랑의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최 회장은 그룹 주요 계열사의 CEO들과 연단에 나란히 앉아 임직원들이 낸 질문과 그룹의 화두에 대해 대담을 나누는 방식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최 회장은 대담을 통해 자신이 수년 전부터 관심을 쏟아온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공헌에 대한 생각을 쏟아냈다. 최 회장은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도 더 큰 행복을 만들어 사회와 함께 하자”며 행복을 키워나갈 수 있는 네 가지 행동원칙을 제시했다. 최 회장은 “그룹 구성원의 개념을 고객, 주주, 사회 등 범위로 확대해야 한다”며 “회사의 제도 기준을 관리에서 행복으로 바꾸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신년사에서 사회적 가치 창출과 주변 공동체와의 공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우리의 고객, 파트너사 등과 함께 나누며 성장할 때 더 큰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며 “롯데가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함께 가는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밝혔다. 그룹의 올해 실행과제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신속한 비즈니스 전환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모바일 혁명 시대를 맞은 유통업계의 급속한 변화에 발맞춰 사업 모델을 빠르게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역시 신년사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을 올해 그룹의 목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원대한 뜻을 이루기 위해 바람을 타고 물결을 헤쳐간다’는 의미의 ‘승풍파랑(乘風破浪)’을 새해 경영화두로 꼽았다. 최 회장은 이어 “새롭게 출범한 기업시민위원회와 기업시민실을 중심으로 기존의 사회공헌활동들을 재편하겠다”며 “새로운 공헌활동들도 추진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선순환되는 사회공헌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