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가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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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 기자

이하늬 기자

한 언론사에서 인턴기자를 할 때 일입니다. 기자들과 한 부장검사가 만난 자리에서 선배들은 제일 어린 제게 “부장님 옆에 앉으라”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장검사는 “요즘 그런 말 하면 성희롱이야”라고 말하면서도 제게 옆에 앉으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모두 웃었지만 저는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3년차 기자 때 일입니다. 취재원과 커피를 마시던 중이었습니다. 일 이야기를 잘 하다가 그가 갑자기 손으로 제 등을 쓸었습니다. 이어 제 입술에 뽀뽀를 했습니다.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성추행 대응법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지 마세요”라고 말한 다음 전철역으로 도망쳤습니다.

한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폭력이 다른 물리적인 폭력에 비해 더 극심한 고통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폭력은 피해자가 스스로 “내가 처신을 잘못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에서 피해자를 힘들게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왜 그때 크게 소리라도 지르지 못했을까.

<주간경향>은 올해의 인물로 서지현 검사를 선정했습니다. 12월 17일 서지현 검사를 만났습니다. 서 검사와 저는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회사가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주어 치유가 잘된 편입니다. 서 검사는 “나도 조직 내에서 해결이 됐다면 언론에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피해를 겪고 나서야 성폭력 피해자도 맛있는 것을 먹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비춰지는 피해자의 모습은 늘 비슷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터뷰에서는 서 검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사에 얼마나 반영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는 지금껏 언론에 비춰지던 모습과 다른 면을 많이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인터뷰는 수다 떨듯이 진행됐고 기자와 서 검사 모두 많이 웃고 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기사에 쓰지 못한 ‘수다’들이 많습니다. 혹시나 누군가 그를 비판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서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그리고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고 할까봐 늘 마스크를 쓴다고 합니다. 그가 피해를 공론화한 지 1년이 되어갑니다. 변한 건 없습니다. 하루빨리 그가 마스크를 벗었으면 싶고, 저는 그와 나눈 소소한 이야기를 기사로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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