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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본궤도’ 기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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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연결이란 돌파구 마련… 주요 기업들 대북사업 TF팀 바빠져

서울역을 출발한 특별열차가 북녘 땅을 밟았다. 남북 철도 연결사업도 첫 삽을 떴다. 철도 연결은 남북 경제교류의 시발점이다. 선언에 그쳤던 ‘신남북경협’은 남북 철도 착공식을 기점으로 조금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북·미관계 속에 헛돌던 남북경협이 본궤도에 오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향후 30년간 남북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원에 이를 것”이라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전제로 통일경제특구 설치와 동아시아철도공동체 설립 등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영업기업, 협력기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기원하며 풍선을 날리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지난 2016년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영업기업, 협력기업의 대표와 임직원들이 개성공단 재가동을 기원하며 풍선을 날리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남북경협 ‘기지개’

그간 미지근하게 남북경협을 바라보던 기업들의 셈법도 새해 들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간판을 내건 각 기업의 대북 태스크포스(TF)팀도 경협의 물꼬를 틀 궁리를 시작했다. 신남북경협이 ‘세상에 없던 발전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여부가 2019년에 그 윤곽을 드러낸다.

11년 만에 열린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제협력은 주요 의제가 아니었다. 대북제재가 존재하는 한 자칫 공식 회담장에서 갖는 경협 논의는 공염불에 그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뒤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경협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보수정권 내 서랍 속에 넣어 두었던 ‘공리공영과 유무상통’(공동의 이익과 번영 및 양측에 없는 것을 서로 지원한다는 의미) 원칙도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회담이라는 큰 성과에 비해 남북경협의 진척은 더뎠다. 남한에는 북·미관계를 풀 열쇠가 없었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의 ‘상수’인 평화체제를 구체화했다. 여기에 철도라는 남북경협의 디딤돌이 놓였다. 저마다의 이유로 대북사업 재개가 필요했던 기업에는 모처럼 들려온 낭보다.

포스코는 남북경협의 수혜자를 자처하는 기업이다. 지난 7월 취임한 최정우 회장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북사업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 회장은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포스코는 경제협력에서 가장 큰 실수요자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한 달 만에 최 회장은 그룹 내 대북사업 TF팀을 만들었다.

최 회장 대북사업 구상의 핵심은 북한의 광물자원이다. 마그네사이트, 천연흑연 따위의 북한산 광물을 수입해 제품을 만들 요량이다. 이미 지난 2005년 포스코는 북한의 대진지역 무연탄을 수입한 경험이 있다. 특히 제철소의 내화벽돌 원료로 쓰이는 마그네사이트는 주요 자원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마그네사이트 매장량 세계 2위 국가로 2007년 포스코 켐텍은 북한으로부터 마그네사이트 수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포스코켐텍 경영진은 마그네사이트 매장량 조사 등 대북사업을 하기 위해 직접 방북했다. 이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전략혁신기획단장은 보고서에서 “경의선 철도 현대화를 통해 북한산 철강과 아연, 무연탄 등 광물자원을 들여올 경우 30년 동안 61조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사무실에서 직원이 벽시계를 고쳐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서울 마포구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사무실에서 직원이 벽시계를 고쳐 걸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남·북·러 물류 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도 포스코와 인연이 깊다. 2007년부터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나진·선봉지대 개발의 대표적 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된 하산~두만강 철도 54㎞를 개선하고 북한 나진항을 개발해 러시아산 석탄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사업이다. 포스코는 2013년 코레일 및 현대상선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 참여를 모색해왔다. 2016년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따른 대북제재 강화로 사업이 중단되기 전까지 세 차례 시범운송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다. 러시아산 유연탄이 나진항을 거쳐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로 들어온 것이다.

포스코에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광물 거래사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나진·하산을 연결하는 철길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대륙으로 나갈 수 있는 관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린 신경제지도 구상 속 철도망 확장사업 중에서도 핵심이 될 수 있는 위치다. 문 정부가 신경제지도 구상에서 분류한 H벨트(서해안 벨트, 동해안 벨트, 접경지역 벨트) 가운데 동해안 벨트에 속해 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경우 신남북경협의 중심에 설 수 있다. 무엇보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의 요구로 유엔의 제재 대상에서 벗어난 상태다.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면 재개될 수 있는 사업이라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재개될 경우 사업성 여부를 떠나 포스코의 참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포스코는 민영기업이지만 여전히 정권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며 “최 회장이 이전 최고경영자와는 다른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남북경협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10년 결실 기다리는 현대그룹

현대그룹은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현대아산을 재정비하고 본격적인 대북사업 재개를 타진하고 있다. 2008년 7월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박왕자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뒤 현대아산의 대북관광사업은 10년째 멈춘 상태다. 그럼에도 현대그룹은 대북사업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남북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담담한 마음으로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년 동안 남북관계가 훈풍을 타면서 현 회장의 뜻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1월 단행된 현대아산의 인사도 대북사업에 초점이 맞춰졌다. 현대그룹은 현대아산 신임 대표이사로 배국환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62)을 영입했다. 배 대표는 참여정부 기획예산처 국장 시절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남북경협 전문가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기획예산처 예산총괄과장을 지내며 대북예산을 총괄한 경험이 있다.

금강산사업소장과 개성사업소장을 역임했던 현대아산 창립멤버 김영현 전 전무는 관광경협사업 총괄부문장 자리로 복귀했고, 김한수(관광사업본부)와 백천호(남북경협본부) 이사의 직급은 각각 상무보로 올랐다. 대북사업 재개를 앞두고 남북경협 전문가들에게 힘을 실은 것이다.

금강산 관광·경협사업과 개성공단 개발사업이 중단되면서 현대아산은 고난의 시간을 겪었다. 2007년 1070명에 달했던 직원 수는 142명으로 줄었고 2555억원에 달했던 매출액은 1267억원으로 감소했다. 현대아산은 사실상 명맥만 이어가는 회사가 됐다. 이 같은 현실에서 남북경협은 현대그룹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법이다.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관계자들이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공동취재단

12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 관계자들이 ‘서울-평양’ 표지판 제막식을 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공동취재단

예컨대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토대로 대북사업의 길이 열리게 되면 북한의 7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그룹은 단숨에 신남북경협의 선봉장 자리에 오를 수 있다. 한국교통연구원 자료를 보면 경의선이 경유하는 개성·평양·신의주·묘향산 등 주변 4개 지역 예상 관광객은 30년간 6841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228만명으로 이들 4개 지역을 강원도와 비교해 관광객 만족도로 추정한 편익은 20조6000억원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대북제재 완화 수준에 따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이 가능하도록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통사들도 경협사업 ‘만지작’

KT는 지난 5월 남북협력사업개발TF를 구성해 대북사업을 추진해 왔다. 통신망은 남북경협이 본격화될 경우 가장 먼저 마련돼야 할 인프라로 꼽힌다. 그동안 북한과 관련된 통신사업은 KT의 몫이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의 통신지원을 맡았고, 2005년 개성공단에 통신서비스를 제공한 것도 KT였다. 남북협력사업개발TF 단장인 구현모 경영기획부문 사장은 임명 당시 “KT뿐 아니라 그룹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북협력시대가 본격화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상태에 들어서면서 대북사업은 KT에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가동에 필요한 통신서비스 제공을 시작으로 각종 인프라 구축에 들어간 기업을 위한 ‘통신 인프라’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특히 KT는 이미 개성공단 내 남북 간 광케이블 등 통신 인프라와 함께 북한 당국으로부터 50년간 임차한 1만㎡ 규모의 통신국사 부지를 확보하고 있다. KT 계열사 KT SAT는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지역 방송·통신사업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등도 남북경협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 7월 남북협력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무선통신을 중심으로 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기에 LG유플러스도 관련 사업 검토에 나서면서 경협과 관련된 통신사업은 이동통신 3사의 각축장이 됐다. 삼성과 GS, 한화그룹과 롯데그룹 등도 주요 계열사에 대북사업 TF를 꾸린 상태다. 이들 기업은 TF를 통해 경협이 본격화될 경우 가능한 사업 모델을 발굴한 뒤 향후 대외 여건에 따라 구체적인 사업 구상을 공개할 방침이다.

기업들의 경협 참여 과정에 있어 최대 변수는 대북제재 등 대외여건이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근 출입기자단 송년 인터뷰에서 “우리가 대북사업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차분하게 분석하고 접근해야 한다”며 아직 기업들이 경협에 선뜻 합류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대외변수는 있지만 전문가들은 정상회담에서 철도 연결로 이어지는 일련의 변화들이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 구상 흐름에 잘 맞아들어가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도 연결 과정에서 미국으로부터 대북제재 면제를 이끌어 낸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남북경협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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