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는 정말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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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발표 후 되레 집값 ‘껑충’… “공공임대로 전량 공급해야”

지난 12월 19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박남춘 인천시장은 물론 조광한 남양주시장, 김상호 하남시장, 김종천 과천시장, 박형우 인천 계양구청장 등을 대동하고 서울정부청사 브리핑장에 들어섰다. 정부가 9·13 부동산대책 때 공언했던 ‘3기 신도시’를 발표한 날로, 관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수도권 주택공급계획을 밝히는 자리인 만큼 지자체가 함께한 것이라지만, 신도시 지정 이후 지자체 반발을 사전 차단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도권 3기 신도시 입지와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2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수도권 3기 신도시 입지와 2기 신도시 광역교통개선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정부의 이 같은 행보는 최근 집값이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신도시 발표를 뒤로 미루지 않겠느냐는 시장의 예상을 뒤집은 것이기도 하다. 이번 주택공급 확대는 안정세를 찾아가는 부동산시장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풀이된다.

“서울 수요 분산효과 보기 어렵다”

‘신도시 카드’는 정부가 급등한 집값을 잡기 위해 내놓는 대표적인 공급대책이다. 치솟는 집값에도 ‘지금이 아니면 집을 살 수 없다’며 달라붙는 추격매수를 진정시켜 당분간 임대차시장에 머무르게 하겠다는 의도다. 1989년 노태우 정권이 경기 성남 분당, 고양 일산,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등을 ‘1기 신도시’로 지정할 때도 그랬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각종 수요억제책에도 좀처럼 집값이 잡히지 않자 경기 김포 한강, 화성 동탄, 평택 고덕, 수원 광교, 성남 판교, 송파 위례, 양주 옥정, 파주 운정, 인천 검단 등을 ‘2기 신도시’로 지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신도시는 집값 안정에 기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뜻과는 정반대 양상을 보여왔다. KB국민은행 통계를 보면 1기 신도시를 지정한 1989년 전국 집값은 전년 대비 14.59% 올랐다. 그 다음해에도 집값은 21.04% 치솟았다. 서울 아파트값 추이도 비슷했다. 2기 신도시가 발표된 2003년에는 전국과 서울 집값이 각각 5.74%, 6.93%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2004년 이후 2기 신도시의 집값 변화를 살펴본 자료를 봐도 신도시는 집값 안정보다 오히려 집값 상승의 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공급량 증가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평택 고덕을 제외한 신도시 모두에서 정책 발표 이후 ‘급등→2010년 침체→다시 상승’ 흐름을 보였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과거 신도시 정책들은 집값 안정은커녕 투기와 개발 열풍으로 주변 집값을 상승시켜 왔다”며 “저렴한 공공주택보다는 비싼 민영주택 공급으로 건설사들과 수분양자들만 시세차익을 얻어간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오르면 어김없이 공급부족론이 고개를 든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한다는 논리다. 특히 서울에서는 새 아파트 등 살고 싶은 주택이 부족하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각종 통계를 보면 부동산 과열양상은 공급 부족이 아닌 투기수요의 영향이 더 크다. 2016년 기준 서울의 주택 보급률은 96.3%지만, 자가점유율(자기 소유 주택에 사는 비율)은 42.1%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주택을 가진 절반 이상이 투자나 투기 목적으로 집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집값이 비싼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등의 자가점유율은 34.1%, 40.5%로 20년 전인 1995년보다 각각 14.2%포인트, 8.9%포인트 하락했다. 거주보다 투자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는 645채를 가진 60대 다주택자도 있다.

이번에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곳은 경기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과천,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 등 네 곳이다. 서울은 없고 모두 수도권이다. 정부는 서울과의 접근성이 용이하고 수도권 광역교통망을 이용하면 서울 도심까지 30분 내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강남의 한 공인중개사는 “서울 집값 안정세 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며 “과천을 빼고는 대부분 강남을 대체할 만한 입지가 아니어서 서울 수요 분산효과를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3기 신도시’는 정말 필요했을까

“임대료 올려 중산층도 살 수 있게”

‘중심지 이론’이 더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서울 주택이 부족하다면서 주변에 공급을 하면 중심지인 서울의 땅값과 집값은 계속 올라간다”며 “신도시가 들어서면 인구가 밀집되는 데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으로 접근성을 높여 서울로의 흡수요인이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3기 신도시 발표 직후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서울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의 줄임말로 무력감을 드러내는 의미)이 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3기 신도시가 발표된 이후 부동산시장도 다시 술렁이고 있다. 인천 굴현동·동양동·박촌동·병방동·상야동 일원인 계양 테크노밸리지구(335만㎡)는 투자문의가 쏟아지면서 매물 걷어들이기가 빈번해지고 있다. 하남 교산지구(649만㎡)도 개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남양주 진접·진건읍과 양정동 일대인 왕숙지구(1134만㎡)에서는 토지 강제수용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과천지구(155만㎡)도 신도시 지정을 못마땅해 하는 현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주택공급이 늘면 기존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데다, 이미 교통난이 심각해 더 이상의 개발이 반갑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천은 강남 접근성이 좋아 3기 신도시 중 최고 입지로 평가받고 있다. 투기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3기 신도시를 ‘제2의 판교’처럼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판교의 자족기능은 판교 테크노밸리라는 대규모 기업 밀집지역의 공이 큰데, 포털사이트 네이버 본사가 이전하면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속속 입주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3기 신도시에 전부 공공임대아파트를 공급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신도시 조성은 지구로 지정된 지역의 토지를 시세보다 저렴한 수준에서 강제수용해 택지로 조성한 뒤 민간 건설사에 매각하는 수순으로 진행된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지만 특정 소수만 혜택받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태경 부소장은 “정부가 부동산정책 방향을 틀어 3기 신도시는 분양이 아닌 공공임대 방식의 토지임대부로 공급해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정부는 토지를 계속 소유하면서 시장에 집값 안정에 대한 매우 의미있는 신호를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소장은 “공공임대가 많아질 경우 슬럼화 등을 우려하지만, 중산층이 살 수 있도록 아파트를 제대로 잘 짓고 적절한 임대료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성희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ong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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