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전담판사, 그들은 누구인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근무평정 ‘무난하다’ 평가 필수요소… 승진 보장 자리인가, 고뇌의 자리인가

지난 7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모두 기각되자 ‘임민성’과 ‘명재권’ 두 이름이 포털을 장악했다.

언론들은 각종 분석기사와 함께 ‘박병대 전 대법관 영장 기각… 임민성 판사는 누구?’, ‘고영한 전 대법관 영장 기각… 명재권 판사는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양승태사법농단대응을위한시국회의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월 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양승태사법농단대응을위한시국회의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12월 7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월과 9월 형사 단독 재판부 한 곳과 민사 단독 재판부 한 곳을 각각 줄였다. 그 자리에는 영장전담 재판부가 증설됐다. 박범석·이언학·허경호 영장전담판사 3인 체제에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51·연수원 27기)와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47·28기)가 합류해 총 5명의 영장전담 재판부가 생겨났다.

두 전직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앞두고 여론은 명 부장판사와 임 부장판사가 각각 어떤 전력이 있고, 어떤 판단을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는 갖가지 예측을 내놓았다.

발령나면 “축하한다, 1년만 고생하시라”

임 부장판사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당사자이고, 명 부장판사는 그동안 ‘막혀 있던’ 검찰의 강제수사(압수수색 등) 영장을 발부해준 인물이라는 것이 판단의 기준이었다. 명 부장판사는 검사 출신 판사라는 전력도 검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더해졌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구속영장이 발부돼도, 고영한 전 대법관은 기각될 수 있지 않느냐는 갖가지 셈법도 등장했다.

그러나 검찰조차 기대하며 열어본 결과지는 ‘전부 기각’이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수사로 가는 길이 이번 기각으로 막혔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법원의 결정 직후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反)헌법적 중범죄의 규명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이 기각과 발부를 결정지었는지는 검찰도, 언론도 모른다. 기소를 앞둔 피의자들도 알 수 없다. 영장전담판사는 구체적인 결정 이유를 외부에 밝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영장전담판사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1년만 근무하면 승진이 보장되는 자리였다. 중앙지법의 경우 한 명의 영장전담판사가 1년에 맡는 사건이 1000건이 넘은 지 오래다. 영장전담 재판부로 발령이 나면 주변에서는 “축하한다. 1년만 고생하시라”는 덕담이 오갔을 정도였다. 때문에 지금은 폐지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존재하기 전까지 ‘영장전담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 내정’이라는 암묵적 룰이 존재했다.

‘좋은 집안’ ‘좋은 연수원 성적’ ‘10년차 판사 근무 상위 평점’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갈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던 법원행정처 출신이 영장전담판사가 됐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고생에 대한 포상이 사라진 지금, 영장전담판사는 더 이상 선망의 대상이 아니다.

“모 부장판사가 영장전담으로 발령이 났는데 다들 관행적으로 ‘○ 부장님 축하드립니다’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 부장판사가 ‘그게 무슨 좋은 자리라고… 고생만 죽어라 하다 끝날텐데…’라며 힘든 내색을 보였다. 영장전담판사는 ‘엘리트’나 ‘승진 보장 자리’라는 수식어를 떼더라도 법원 내에서 근무평정이 무난하게 좋은 사람만 갈 수 있는 자리라 개인에게는 영광인데도 더 이상 선호되는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A 판사)

실제 ‘법원행정처 출신의 상위그룹 판사’에게만 영장전담재판 업무를 맡기는 관행은 점점 옅어지고 있는 중이다. 법원행정처 출신을 배제하려는 목적은 행정처 출신 판사가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형사수석 부장판사→법원장→법원행정처’, 또는 곧바로 행정처로 보고하는 폐단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형태의 ‘정보보고’가 과거에 관행적으로 운영되고, 행정처가 이 정보를 대외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영장전담판사에게 ‘침묵’은 불문율

다만 2006년까지는 대법원 재판예규(1084호·중요 사건의 접수와 종국 보고)로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사건이나 정치인, 장관, 판·검사, 지방자치단체장에 대한 구속영장 및 압수수색영장 발부 여부, 재판 진행상황을 대법원에 곧바로 보고하도록 돼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했었다. 2006년 12월 론스타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영장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시위가담자 구속영장이 잇따라 기각된 직후 대검 중앙수사부를 중심으로 예규 폐지 주장이 불거졌고, 8개월 만에 대법원은 예규를 고치는 선에서 논란을 마무리지었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지금도 영장전담이 결정을 내린 후 결정문을 법원 실무관이 사본을 만들어 둔 뒤 검찰에 자료를 돌려주기 때문에 이후 형사수석이나 법원장이 볼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형사수석판사는 대법원에 보고의무가 있으니 정보가 전달될 수도 있다. 그 자체가 불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특정 출신’을 배제하더라도 운영상의 문제는 없다는 입장이다. 법원행정처 출신 10%, 재판연구관 출신 20% 정도를 제외하더라도 영장전담재판을 맡을 수 있는 ‘무난한’ 판사들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기준은 있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우선 형사재판 업무를 일정 기간 이상 해본 사람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민사나 행정, 가사사건을 오래한 판사라면 영장업무를 맡을 수가 없다. 유무죄 여부에 대한 판단이나 유죄판단이 내려졌을 경우 예측가능한 양형판단이 익숙해야 하기 때문이다.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될 경우 중형이 예상된다면 구속영장 발부 사유가 된다.

근무평정에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아야 하는 점도 필수적 고려요소다. 너무 튀는 판결을 했었거나, 판결기준이 일관적이지 못한 경우, 기준은 일관적인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판결을 했던 판사들은 영장업무 배제대상이다. 일부 판사들 사이에서는 영장업무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이상한 판결을 내린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12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청사 내로 들어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병대 전 대법관이 12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청사 내로 들어서고 있다. / 이준헌 기자

기존 영장전담판사 3인 외에 새롭게 들어온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를 ‘검찰의 구원투수’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게 법원 내부의 말이다. “어차피 판사들은 너무 한쪽으로 벗어나든, 치우치든 대부분 하나의 틀 안에 들어오도록 훈련이 돼 있다. 판사마다 판결이 오락가락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같다. 검사 출신 판사든, 법원행정처를 거친 경험이 없든 어차피 하나의 박스권 안에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B 판사)

영장전담판사들에게 불문율처럼 따라오는 것은 ‘침묵’이다. 검찰이 어떤 압수수색 영장, 인신구속 영장 등을 청구했는지가 외부로 알려질 경우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중앙지법을 제외한 지방법원 영장전담판사들은 그래도 비교적 자유롭게 외부활동도 하고, 다른 재판부 동료들과 식사자리도 만드는데, 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은 외부활동을 많이 자제한다. 중요하고 민감한 사건들이 중앙지법에 몰리기 때문이다. 영장전담판사들이 외부활동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게 중요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갈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영장전담판사들은 식사도 자기들끼리만 모여 하는 경우도 많다.”(C 판사)

“영장전담판사로 발령을 받으면 우스갯소리로 ‘봄에 다시 보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변호사와는) 연락을 하기 어렵지 않겠나. 1년간 사실상 ‘법원’에 갇혀서 죽어라 영장만 들여다보고 살아야 하는 게 영장전담판사의 일이니까.”(전 판사·D 변호사)

실제 현재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수사와 관련된 각종 영장을 관여하고 있는 5명의 영장전담판사들 역시 외부와의 접촉을 자제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영장전담판사님들은 정말 하나로 똘똘 뭉쳐 다닌다”고 말했다. 이어 “영장전담판사들은 큰 사무실 하나를 함께 쓴다. 다섯 명이 한 방을 쓰다보니 친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지금도 점심, 저녁 식사시간에 보면 다섯 분이 몰려다니며 구내식당에서 같이 식사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그날 맡은 영장업무를 끝내도 다른 판사가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퇴근을 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지만 영장전담판사는 판결문으로 결정이유를 내보일 수도 없다. 우리 형사소송법 제201조는 구속의 사유로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구속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공익적 목적이 구속으로 인한 피의자의 불이익을 능가하는 필요성이 있어야 한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표현의 절제’

우리가 통상적으로 접하는 ‘도망의 우려가 없고, 증거인멸 우려가 없고…’ 등의 문구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영장전담재판 업무를 했었던 판사들은 “단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더 많은 판단의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판단의 근거가 된 이유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영장을 청구한 검찰과 1심 재판을 맡게 될 재판부의 관계를 고려한 판단이라는 설명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간혹 구속영장을 발부했는데 정작 재판에서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을 때가 있다. 반대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검찰이 추후 증거들을 보강해 재판에서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되도록 공소유지를 잘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영장이 바보되는 거다.”(B 판사)

어차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제도 자체가 검찰의 기소 전 인신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일 뿐 유무죄를 다퉈서 판결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을 절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영장전담판사들이 기각사유를 다양화하면서 검찰과 법원 간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피의자의 소명 내용이 다툼의 여지가 있음’이다. 이번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법원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기각 사유 중 하나로 들었다.

“좋은 말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 검찰이 제출한 증거가 구속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돌려서 한 것이다. 검찰은 당연히 싫어한다. 영장전담판사가 혐의의 불분명을 판단기준으로 꺼내자 검찰은 ‘너네가 뭔데 자꾸 혐의를 판단하려 하냐’고 한다. 그런데 다툴 여지가 있을 경우 피의자가 구속상태인 것과 불구속상태인 것은 천지차이다.”(C 판사)

그러나 영장전담판사가 언급한 그 ‘다툼의 여지’가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혐의 중 어떤 부분이 미비해서 나온 판단인지는 추측만 가능할 뿐 누구도 명확하게 알 수 없다. 일각의 주장처럼 사법부를 보호하기 위해 무리하게 영장을 기각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검찰도 단 몇 줄의 판단 이유만 받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숨겨진 긴 이유는 영장전담판사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영장전담판사들끼리 한 가지 사안을 놓고 토론도 하고 상의도 하지만 최종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 사건을 맡은 판사 한 명이다. 영장 발부 여부가 재판부가 아닌 판사 한 명의 이름으로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 검찰의 일방적 주장이 아닌 피의자 측의 항변을 들은 사람은 영장전담판사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D 변호사)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