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자동차업계 지원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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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위원장, 은행권에 협력업체 지원 당부… 은행권은 부실화 우려하며 고민

“신용등급이 낮고 부실징후가 있는 업체에 대출을 늘리다 보면 은행의 대출회수율은 떨어지게 돼 있다. 경기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은행의 부실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시중은행 관계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2월 6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2019년 예산안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2월 6일 오전 열린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2019년 예산안 관련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조선·자동차 등 협력업체 지원’ 압박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비판을 의식해 협력업체 지원에 동참하고 있으나, 당장 연체율 등 리스크 관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의 ‘지원 압박’은 올해 내내 이어졌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조선업이 힘겨운 ‘보릿고개’를 넘어설 수 있도록 (은행권이) 적극적으로 금융지원을 해달라. 정책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시중은행과 자본시장 등 민간 금융권이 동참해야 그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다”고 했다. 경남 고성군의 중소형 선박엔진 제조업체인 이케이중공업을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시중은행, 대출 연장·수수료 감면 등 화답

그는 한 달 전 경기 화성의 현대·기아차 1차 협력업체를 방문해 개최한 간담회에서는 “시중은행이 특정 산업의 리스크를 이유로 해당 산업의 대출을 일괄 회수할 게 아니라, 경쟁력 있는 기업을 선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담회에는 국책은행장들을 비롯해 금융기관장들이 대거 참석했다. 한국GM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러웠던 지난 4월에는 시중은행장들을 만나 “‘품앗이’하는 마음으로 한국GM 협력업체를 지원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들 업체의 경영상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자동차 협력업체는 완성차업체의 수출부진과 내수위축 등으로, 조선 협력업체는 신용도 하락과 대출한도 초과 등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 단체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한 ‘자금수요 조사 결과’를 보면, 부품업체들은 경영난을 해소하기 위해 은행권 대출 상환 연장과 시설투자, 연구개발(R&D) 등에 약 3조1000억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은행들이 자동차업계를 ‘고위험 업종’으로 분류해 신규대출을 기피하거나 대출 만기 연장을 잘 해주지 않아 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조선·자동차업계 지원해야 하나?

은행권도 적극 화답하는 모양새다. 신한은행은 유동성 위기를 겪는 자동차·조선업 부품 관련 협력업체에 총 2200억원 규모로 금융지원을 하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신한 두드림 자동차·조선 상생 대출’을 통해 보증료 연 0.5%포인트를 3년간 지원하고, 보증기관 보증료 우대 0.3%포인트 추가시 관련 업체들에 최대 연 0.8%포인트 보증료를 우대키로 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3월부터 경남 통영과 전북 군산지역 조선업 및 한국GM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 수수료 감면과 만기도래 대출 만기 연장, 상환유예 등을 지원하고 있다. 성동조선 협력업체 250개사, 한국GM 군산공장 협력업체 145개사 등 중소기업, 통영·군산지역 소상공인 관련 기업, 휴직자, 퇴직자 등이 대상이다. 경영안정 특별자금 1000억원 지원, 만기가 도래한 여신의 무상환 연장, 수출환어음 부도처리기간 유예 연장, 대출금리 최대 1.3% 우대, 각종 수수료 감면 등이다.

하나은행은 지난 9월 한국해양진흥공사와 국내 선박금융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하나금융은 경남 거제시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은행권 지원이 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상 업체들의 부실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여신 회수를 할 수도 없어 속앓이만 하는 분위기다.

“노동구조 개선 등 정부 차원 대책 나와야”

금융감독원이 최근 은행들이 돈을 빌려준 2952개 기업을 대상으로 정기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한 결과, 190개 업체가 하위 등급인 C등급과 D등급에 포함됐다. 이 중에는 경영난에 직면한 조선업과 자동차 등 협력업체들도 대거 포함됐다. 업종별로 금속가공 22개사, 기계 20개사, 도매·상품중개 18개사, 부동산 14개사, 자동차부품 14개사 등이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됐다. 철강(13개사)과 조선(10개사) 업종도 지난해에 비해 늘었다. 이들 기업이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등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금융권에 미칠 파장도 상당할 전망이다.

최근 중소기업대출을 중심으로 한 기업대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금감원이 최근 내놓은 ‘10월 국내 은행들의 원화대출 연체율’을 보면, 10월에만 신규 연체가 1조5000억원가량 발생해 연체채권 잔액이 8조6000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연체율이 상승했다. 특히 대기업 대출은 1.72%로 전월 말보다 0.06%포인트 하락했지만, 중소기업 대출은 0.64%로 0.08%포인트 상승했다. 개인사업자 대출도 0.38%로 0.04%포인트 올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눈에 뻔히 보이는 손실을 감수하면서 신용도가 낮고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 업체에 추가 여신 등을 지원하는 이유는 당국의 지속적인 지원 압박 때문”이라며 “경영상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업체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한편으로 여신의 부실화 우려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노동구조 개선 등 중소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 원자재 가격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노동비용 증가 등 대내외 요인으로 중소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부실위험이 커지는 상황에서 은행 측에 무작정 지원하라고만 할 게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통한 중소업체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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