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통과와 국보법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편집실에서]예산안 통과와 국보법

정의당을 비롯한 야3당이 내년 예산안 통과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연계하면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12월 7일 예산안 처리를 잠정 합의했다. 선거제도와 연계를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매년 국회 예산안을 처리할 때면 여러 법안의 연계 이슈가 등장한다. 2004년 12월 31일이 떠오른다. 국회의 예산안 통과가 법정 시한인 12월 2일을 넘겼다는 것 때문이다. 정치선진화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국회에서 예산안 통과는 거의 연례행사처럼 12월 31일 이루어졌다. 여야 간 줄다리기 싸움은 12월 31일 밤도 모자라 대개 자정을 넘겨 끝이 났다. 지금의 12월 2일이 예전에는 12월 31일이었던 셈이다.

2004년 말 당시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놓고 여야 간 뜨거운 씨름이 벌어졌다. 그해 마지막 날 하루 종일 현장에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해 4월 총선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민주세력이 처음으로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면서 개혁입법에 대한 열망이 불타올랐다. 당시 4대 개혁입법(국보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진상규명법, 언론관계법)이라 불렀다. 그 중 가장 뜨거운 현안이 국보법 폐지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국보법 개정 정도로 여론을 잠재우려고 했고, 열린우리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폐지를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시민세력들은 열린우리당 출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무릅쓰더라도 국보법을 폐지해줄 것을 기대했다. 12월 30일 여야의 첫 합의안 주요 내용은 국보법 대체입법이었다. 하지만 첫 합의안은 국보법 폐지를 주장한 열린우리당의 소장파 의원들이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합의는 깨졌다. 12월 31일의 두 번째 절충 합의안은 한나라당이 반대했다. 결국 의장의 중재안으로 예산안은 통과됐지만 현안인 국보법은 그대로 넘어갔다. 다음해를 기약했지만, 이후 국보법 대체입법이나 개정은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손 안에 잡힐 듯했던 국보법 손질은 그렇게 ‘하룻밤의 꿈’처럼 지나갔다.

국보법 손질 실패를 아주 단순하게 보자면 그 당시 몇 걸음의 전진을 꿈꾸었던 것보다 반 걸음만 현실적으로 앞으로 내딛는 것이 더 나았던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 당시 복잡한 사정을 본다면 폐지할 수 있을 때 폐지하는 것이 더 나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이다.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정치에도 소확행이 있다면 어떠할까? 그때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대체입법이라도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랬으면 우리 사회가 현실적으로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을 거라고 볼 수 있다. 국보법에서 문구 하나 뜯어고치지 못한 지금 현실을 보면 그렇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국보법의 독소조항을 조금이라도 개정해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제도 개혁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던진 표가 아무 의미없이 사라지는 문제점을 고치고,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정치권의 소확행을 기대해본다.

<윤호우 편집장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