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네트워크 보안’은 안전한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미국의 화웨이 통신장비 사용 금지 계기로 우리도 인식 전환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요 동맹국들에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지 마라”고 요구하면서 5G 이동통신의 상용화를 앞두고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글로벌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과는 자국의 첩보와 도·감청 정보까지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파이브 아이즈(다섯 개의 눈)’에 속하는 영국, 캐나다 등도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를 천명했다. 국내에서는 LG유플러스가 4G에 이어 5G에서도 화웨이 장비 도입을 선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 ‘CES 아시아’에 설치된 화웨이 부스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 상하이 | 로이터연합뉴스

2016년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가전전시회 ‘CES 아시아’에 설치된 화웨이 부스 앞으로 한 여성이 지나가고 있다. / 상하이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앞장서서 화웨이를 배척하는 배경으로는 미·중 무역분쟁이나 양국 간 패권경쟁 문제가 언급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네트워크 보안 문제가 단지 미국과 중국의 다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미국 역시 중국만큼이나 다른 국가를 감시할 가능성과 역량이 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뒤떨어진 국내 통신장비 검수능력을 개선하는 등 네트워크 보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중국을 불신하는 미국

화웨이는 5G기술 구현을 위한 전세계 필수특허의 10%, 5G 표준기술 특허의 23%를 각각 소유한 IT기업이다. 적어도 5G에서는 세계적인 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게다가 장비의 가격도 경쟁사들에 비해 저렴하다. 통신망 관리에 필요한 각종 소프트웨어나 서비스 지원 수준도 우수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상식적으로만 생각하면 화웨이의 5G 장비를 쓰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화웨이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화웨이뿐만이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 8월 미국의 2019년 국방수권법안에 중국 업체의 통신장비나 서비스를 쓰지 못하도록 명시했다. 이들 중국 기업이 수집한 정보가 중국 정부에 넘어간다고 보고 있는 트럼프다. 여기에는 화웨이 말고도 ZTE 등과 같은 중국의 다른 IT기업들이 모두 포함된다.

화웨이를 넘어 중국을 불신하는 트럼프의 태도가 트럼프 개인의 성향 문제나 일시적인 양국 간 무역분쟁에서 비롯됐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미국이 통신장비 보안 문제에서 공개적으로 화웨이를 언급하기 시작한 건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의회는 당시 보고서를 통해 화웨이 통신장비가 자국의 보안 및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이 보고서를 경청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당시는 4G LTE 서비스가 막 상용화되는 시점이었는데, 업계에서 ‘미국이 화웨이 장비 사용을 못하도록 한국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트럼프보다 화웨이에 대한 경계심을 입밖에 덜 냈을 뿐이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가인 피터 W 싱어가 2015년 출간한 소설 <유령함대>는 미국과 중국의 세계대전을 그리고 있다. 중국의 사이버 공격에 미국의 최신무기가 무력화된다는 게 책의 주된 흐름 중 하나다. 저자는 평소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밝혀왔다. 트럼프와 관계없이 미국과 미국 국민들은 중국산 통신장비가 불러올 수 있는 여러 안보위협이 실체적이라고 본다는 뜻이다. 중국에 보다 강경한 미 정치인들은 “중국산 스마트폰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화웨이가 실제로 중국 정부의 스파이 노릇을 했는지, 화웨이의 장비에 스파이 기기나 소프트웨어가 들어 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자료나 정보가 공개된 적도 없다. 화웨이가 억울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화웨이 스스로 이 같은 의심을 자초한 측면 역시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화웨이 창립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중국 인민군 장교 출신이고, 화웨이는 회사의 지배·소유구조나 이사회 구성 및 운영 등 회사 경영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철저하게 감추고 있다”며 “중국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아 성장한 화웨이를 중국 정부와 동일하게 놓고 보는 게 무리가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미국은 화웨이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12월 4일 미국의 요청으로 벤쿠버에 머물던 화웨이의 멍완저우 글로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체포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멍완저우 CFO는 화웨이 런정페이 창업주의 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신화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신화연합뉴스

‘빅브라더’ 원조는 미국

‘빅브라더’는 정보 권력을 쥔 거대한 감시자를 뜻하는 말이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중국의 ‘글로벌 빅브라더화’를 막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원조 빅브라더는 바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 국가안보국(NAS)의 내부고발자였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2013년부터 미국의 글로벌 감시체계로 의심되는 ‘프리즘 프로젝트’를 비롯해 미 정부의 다양한 첩보활동 실태를 폭로하면서 입증됐다.

스노든의 폭로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 구글도 포함됐다. 스노든은 구글,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글로벌 IT기업이 NAS의 관리 하에 있으며, 구글은 수집한 전세계의 가입자 개인정보를 NAS 요청에 따라 미 정부에 넘기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글로벌 온라인 검색 시장을 장악한 구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장을 장악한 페이스북이 전세계 수십억 명의 사용자로부터 수집하는 정보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스노든의 폭로에 따르면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의 기업들이야말로 미국 정부의 스파이인 셈이다.

구글과 미국은 펄쩍 뛰었지만 국내 사례만 봐도 의혹을 갖기엔 충분하다. 구글은 2013년 사용자들의 개인 위치정보를 무단 수집한 사실이 드러나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페이스북은 가입자들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하고, 이 정보들이 해킹되거나 이용되는 걸 방치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처럼 미국의 통신장비 역시 온전히 믿기 어렵다는 견해도 많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예컨대 국내에서 유통되는 스마트폰 대부분에 미국 A사의 칩셋이 쓰인다”며 “이 칩셋이 보안상 안전한지, 정보 수집의 우려는 없는지 등 역시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빅브라더 우려만 봤을 때는 중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화웨이 논란을 계기로 낙후된 국내 ‘공급망 보안’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네트워크망부터 관련 통신장비나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보안 수준을 점검하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LG유플러스의 경우 5G에서 화웨이 장비를 채택키로 한 뒤 논란이 일자 “외국의 전문업체에 장비의 신뢰도 검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국내에는 장비 검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관이나 업체가 없다는 뜻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부터 이미 공급망 보안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국가 차원에서 검증과 방어 능력을 키워왔다”며 “국내 기술 수준은 출발도 늦었을뿐더러 정부 차원의 지원이나 투자도 많지 않아 큰 발전을 못이루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