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과잉 출점 급한 불은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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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들 자율규약 선포식… 업계 ‘기존 점포 모셔오기’ 경쟁 가열

‘편의점 옆 편의점’이라고 불리는 편의점 과잉 출점에 대한 ‘급한 불’은 일단 껐다. 편의점을 새로 여는 경우 기존 점포와 일정거리를 두게끔 한 업계의 자율규약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승인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업계에서는 ‘기존 점포 모셔오기’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업계가 합의한 거리제한 자율규약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승인한 4일 오후 서울시내의 편의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편의점업계가 합의한 거리제한 자율규약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상 처음으로 승인한 4일 오후 서울시내의 편의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 권도현 기자

편의점 브랜드인 CU, GS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씨스페이스, 이마트24 사업자들은 12월 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편의점업계 ‘근거리 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 선포식을 열었다. 자율규약에는 50~100m 거리 출점 제한, 위약금을 감경하는 ‘희망폐점’ 내용을 담고 있다. 지속적인 적자를 내는 점주를 보호하기 위해 오전 0~6시 심야시간 영업 강요도 금지된다.

공정위의 ‘고육지책’

선포식에 참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과잉 출점은 가맹점주의 수익성 악화와 ‘제 살 깎아먹기’ 식의 무모한 경쟁으로 편의점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면서 “자율규약으로 편의점 시장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합리적인 출점을 약속함에 따라 출점경쟁이 아닌 상품이나 서비스 차이로 승부하는 품질경쟁을 기대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가맹점주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는 성명서를 내고 “자율규약의 점포 간 거리 설정이 개별 점포의 영업권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라면서도 “추가적인 보완책이 마련되고 부실 점포가 자정된다면 점주들의 영업환경 개선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영 악화로 폐점할 경우 위약금을 면제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환영한다”고 밝혔다.

편의점 5사(CU·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미니스톱)의 가맹점 수는 2015년 2만9952개에서 올해 7월 4만950개로 2년 6개월 새 36% 증가했다. 출혈경쟁이 이어지면서 점포당 순이익은 줄어들고, 편의점 운영비용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까지 최저임금 인상으로 급등하면서 점주들은 생계보장을 요구해 왔다.

공정위는 그간 근접 출점 제한을 ‘부당한 공동행위’로 판단해 왔다. 편의점 업계는 1994년 자율규약을 제정해 시행했다가 2000년 공정위의 시정명령을 받고 중단했다. 그러다 지난 7월 편의점업계는 공정위에 ‘80m 이내 출점 제한’ 자율규약안을 신청했다.

과거였다면 공정위는 ‘부당한 공동행위 금지 위반’이라고 판단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거리를 특정할 경우 ‘담합’이지만, 거리를 특정하지 않으면 담합이 아니라고 해석했다. 공정위는 ‘담배소매점 간 거리 제한기준’ 등을 새 거리기준으로 제시했다. 점포 간 ‘50~100m’ 거리에 해당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가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은 편의점주가 내몰린 상황이 다급하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공정위가 제 몸을 상해가면서 방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점 과잉 출점 급한 불은 껐다

그간 편의점 가맹본부는 출점 위주의 ‘몸집 불리기’ 경쟁을 해왔다. 이 때문에 한국의 편의점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점포 1개당 인구수가 2017년 기준 2304명인 데 비해 한국은 1318명에 불과하다.

치킨집·커피전문점으로 확산 기대

가맹본부도 편의점이 과포화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과거처럼 ‘신규 출점’에 힘을 쏟지 않았다. 업계 1위인 BGF리테일의 CU편의점은 올해부터 예상매출과 점주의 기대수익 등 신규 출점 시 적용하는 기준을 지난해보다 15% 이상 높여 시행하고 있다. 출점 기준을 높여서 신규 매장 공급수를 줄인다는 이야기다.

이마트24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맹본부는 개별 편의점에서 매출이 높아질수록 가맹본부의 수익도 높아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신규 출점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기존 매장의 수익성을 높이는 게 가맹본부에도 유리하다.

신규 출점 경쟁이 완화되면서 앞으로 업체들 사이에서 기존 점포에 대한 ‘구애 경쟁’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5년 동안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편의점주들은 다른 편의점업체로 갈아탈 수 있다. 업체들은 이때 점주들에게 기존보다 나은 계약조건을 제시하는데, 이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다.

미니스톱 인수전에 참가한 롯데와 신세계의 경쟁도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세븐일레븐을 운영하는 롯데가 미니스톱(점포 2533개)을 인수하면 편의점업계 ‘넘버2’가 된다. 반면 이마트24를 운영하는 신세계가 인수하면 6000여 점포가 돼 안정적인 시장 지위를 누리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미니스톱 인수가격이 3000억~4000억원대로 예상되는데,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맹본부의 영업이익률이 높지 않다는 점에서 턱없이 비싼 값으로 인수했다가 ‘승자의 저주’에 걸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편 가맹점주들은 편의점의 자율규약이 치킨집이나 커피전문점 등 다른 프랜차이즈 업계로 확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편의점과 치킨 등은 근본적으로 상품의 특성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공정위는 지난 2012년 치킨집(800m)과 빵집·카페(500m) 등에도 신규점포 출점 거리제한 내용을 담은 모범거래기준을 마련했지만 2년 만에 거둬들였다.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편의점 출점 제한은 기존 편의점주의 기득권은 보호하지만, 반대로 편의점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취업기회에 있어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며 “공정위가 이를 자영업 전반으로 확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곽희양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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