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시대, 잃어버린 부시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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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추모의 물결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일회적인 현상 같지는 않다. 포퓰리즘이 득세할수록 부시와 같은 ‘온건하고 품위 있는’ 정치인을 그리워하는 정서도 커진다.

“2차 세계대전 때 부시는 18세 나이로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트럼프는 베트남전을 피하기 위해 5차례 징집을 미뤘다. 부시는 대통령 집무실 일에 누구보다 해박했지만, 트럼프는 지금도 정치를 모른다. 부시는 자기를 앞세우는 것을 혐오했다. 트럼프는 자기 외에 다른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8년 헨리 키신저상 수상 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조지 H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2008년 헨리 키신저상 수상 후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맥스 부트는 12월 1일(현지시간) 조지 H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조지 H W 부시, 안티 트럼프’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는 “부시와 트럼프는 상류층 집안에서 자랐고, 공화당 소속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겹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부시와 트럼프, 무엇이 다른가

부시 전 대통령이 11월 30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뜨거운 추모 열기 속에서 부시 전 대통령만큼이나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이다. 호전적인 언사와 일방주의, 자기 과시로 정의되는 트럼프의 시대에서 잃어버린 부시의 유산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시는 협력과 다자주의를 앞세웠다. 1991년 걸프전을 거론하며 그를 미국식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상징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반론 또한 차고 넘친다. 부시는 개전 직전까지 광범위한 외교전을 펼쳤다. 미국과 적대하던 시리아까지 다국적군에 끌어들였다. 이라크에 무력을 투입하기 전 유엔 결의부터 기다렸고, “바그다드로 진격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매파의 주장은 끝까지 거부했다.

부시는 훗날 기고에서 “바그다드를 점령했다면 미국은 극도로 적대적인 땅에서 아직도 점령세력으로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를 심겠다며 일방적으로 행동에 나섰던 아들 부시의 이라크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평가다. <마이애미헤럴드>는 그런 부시와 비교하며 “그러나 트럼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쓸모없는 기구라고 부르고, 유엔은 ‘돈 낭비, 시간 낭비’에 불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고 적었다.

부시의 태도는 국내 정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1990년 그는 민주당 의회와 협력해 증세안을 타결했다. “내 입술을 보라. 더 이상 새로운 세금은 없다”고 했던 대선공약을 뒤엎었다. 부시는 증세를 결정하며 보좌진에게 “내 재선 임기에는 사형선고가 되겠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옳은 일”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3760억 달러에 달하던 재정적자가 증세 결정 후 8년 만에 1130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런 미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지난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는 민주당 플로리다 주지사 후보 앤드루 길럼을 ‘도둑’이라고 비난했다. 애리조나 상원후보로 나선 스텐 시네마는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의 꼭두각시”라고 말했다. 민주당 최대 후원자 가운데 한 사람인 억만장자 톰 스타이어에게는 “발광하고 비틀거리는 미치광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지난 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을 방문해,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관에 경례하고 있다. / 워싱턴 | UPI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지난 3일(현지시간) 워싱턴 의사당을 방문해,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의 관에 경례하고 있다. / 워싱턴 | UPI연합뉴스

부시 이후 30년, 무슨 일이 벌어졌나

CNN은 “트럼프의 시대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이상은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자말 카슈끄지 사건을 거론하며 “도덕 가치를 무시하는 트럼프식 접근법의 최근 사례”라고 지적했다. 부시는 1989년 취임사에서 “고귀한 도덕 가치를 지키지 않는 미국은 결코 완전한 미국일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재임 4년 동안 그의 행보가 취임사에 얼마나 부합했는지는 평가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트럼프의 입에서 이와 같은 가치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부시는 1988년 공화당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수천 개의 불빛’이라는 말을 남겼다. 무수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처럼 나라 곳곳의 시민들이 각자 봉사하고 협력해 더 나은 나라를 만들자고 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한 연설에서 부시의 말을 이렇게 조롱했다. “수천 개의 불빛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이냐?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이해한다. ‘미국 우선’을 이해한다. 그런데 수천 개의 불빛이라니. 나는 도저히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공화당은 근 30년이 지나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선택했다. CNN은 “부시가 지금 시대에 활동했다면 공화당에서 어떤 직책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나. 부시 평전을 쓴 존 미첨은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그는 위대한 시대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고 적었다. 부시 재임기에 이미 미국 정치는 변화하고 있었다. 케이블 뉴스쇼 등 매스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정치는 일종의 프로레슬링 무대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로스 페로, 팻 뷰캐넌 같은 포퓰리스트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92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뷰캐넌은 “미국의 필요를 우선하는 ‘새로운 애국주의’”를 주창했다. 부트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에서 “1992년의 승자는 뷰캐넌이었다. 단지 표를 집계하는 데 24년이 걸렸을 뿐”이라고 적었다. 1992년 경선에서 패배한 뷰캐넌이 실상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예고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부시 추모의 물결은 앞으로도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일회적인 현상 같지는 않다. 포퓰리즘이 득세할수록 부시와 같은 ‘온건하고 품위 있는’ 정치인을 그리워하는 정서도 커진다. 그렇다면 이후 미국 정치에서 그와 같은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것도 기대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부트는 “지금 공화당이 우파 도그마보다 나라에 대한 충성을 우선하는 이를 다시 후보로 지명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고 적었다. 민주당에서도 중도파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전망하며 “모범생 스타일의 실용주의자”라는 측면에서 부시와 가장 닮은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그런 클린턴을 내세웠다가 엔터테이너 트럼프에게 패했다. 다음 선거에서는 다른 선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적처럼 “부시를 그리워하는 것과 그 비슷한 이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이다.

<심진용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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