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원가 공개, 집값 정상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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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계 불투명한 관행 개선 효과… 주택시장 근본대책 될 수 있는지는 논란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12단지 주민 ㄱ씨를 비롯한 마곡 2차 아파트 주민 56명은 지난 7월 SH공사를 상대로 부당이익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분양 당시 SH공사가 합당한 이유 없이 과도한 분양가를 책정했고 이를 통해 부당하게 챙긴 이익금 일부를 돌려달라는 취지다. 주민들은 소송을 통해 세대당 6000만~8000만원을 돌려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ㄱ씨는 “분양 당시 책정된 분양가가 너무 높았다”며 “바로 옆 민간아파트보다 분양가가 비쌌는데 어떤 이유로 그 가격이 나온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업체에 아파트 시세표가 붙어 있다./김영민 기자

서울 송파구의 한 부동산 업체에 아파트 시세표가 붙어 있다./김영민 기자

불투명한 분양가가 소송 원인

ㄱ씨를 비롯한 입주민들의 소송 취지는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SH로부터 받은 ‘마곡지구 분양 현황’ 자료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ㄱ씨가 입주한 마곡 12단지를 포함한 4개 단지 분양가는 2년 전 분양한 마곡 1차 아파트보다 1억원가량 비싼 4억~4억1000만원(전용면적 59㎡ 기준)에 책정됐다. 전용면적 84㎡의 분양가도 5억2000만~5억6000만원으로 1차와 비교해 1억원 이상 비쌌다. ㄱ씨의 말대로 인근에 공급된 민간아파트 ‘마곡 힐스테이트 마스터’보다 3000만원 이상 높은 분양가다.

SH는 마곡지구 개발과정에서 해당 부지를 3.3㎡당 352만원에 강제수용한 뒤 택지 조성공사를 거쳐 3.3㎡당 1544만원에 팔았다. 마곡지구의 3.3㎡당 평균 조성원가는 1053만원으로 SH는 3.3㎡당 491만원의 개발이익을 거뒀다. 분양세대 기준 가구당 741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시 책정된 건축비도 시세에 비해 너무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2013년 마곡 1차 일반아파트 분양 당시 책정된 건축비는 3.3㎡당 567만원으로 서울 강남·서초 보금자리아파트 평균 건축비 550만원보다 높게 책정됐다. 2차 분양 건축비는 3.3㎡당 658만원으로 1차 분양보다 100만원(3.3㎡) 이상 높았다. 불과 2년 사이에 건축비가 뛰어오른 것이다. 당시 고분양가 논란에 대해 SH는 “마곡지구 내 토지가치 증가와 1차 분양 아파트의 시세 상승을 반영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주변 아파트 시세를 고려해 책정한 적정 분양가였다는 얘기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SH가 분양원가 미공개를 악용해 서민을 상대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고 보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에 분양가 부풀리기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감시팀 부장은 “분양원가를 공개하지 않은 단지에서 건축비와 분양가가 높게 책정됐다”며 “사실상 분양가를 올려놓고 건축비를 끼워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아파트 분양가 거품 ‘4400만원’

분양가에 낀 ‘거품’은 최근 분양원가 내역을 공개한 경기도에서도 확인됐다. 경실련은 지난 9월부터 경기도시공사가 공개한 아파트(다산신도시 3개 블록, 고덕신도시 1개 블록, 동탄2신도시 1개 블록) 분양원가를 분석한 결과 평균 4400만원의 건축비가 부풀려졌다고 밝혔다. 해당 아파트의 실제 건축비가 소비자에게 분양하면서 책정한 건축비에 비해 3.3㎡당 26% 덜 들어간 것이다.

경기도를 시작으로 아파트 분양가에 부풀려진 금액이 확인되면서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국토교통부 관행혁신위원회가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도 분양원가 공개를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지난 16일 국토교통부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공공택지 내 공공·민간주택을 대상으로 분양가 공시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늘리는 내용의 주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아파트 분양가에 투명성이 확보되면 분양가가 떨어져 적정가격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정부 개정안대로 분양원가 공개항목이 확대되면 건축비·토목비 항목처럼 두루뭉술하게 공개되던 공사비 항목이 도배공사와 정화조공사 등 세세한 내역으로 나눠 공개된다.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14단지 아파트의 모습./경향신문 DB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14단지 아파트의 모습./경향신문 DB

당장 건설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원가 공개는 시장 논리에 맞지 않을뿐더러 분양원가 공개를 해봐야 건설사 이윤만 줄어들 뿐 주택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장경제 하에서 공사 원가를 밝히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규제”라며 “기술·브랜드 개발에 들인 비용은 어떻게 계산하라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언론 역시 ‘분양원가 공개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며 분양원가 공개제도 도입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12년 전으로 가보자.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분양원가 공개 논란이 있었다. 2006년 11월 전경련과 건설협회 등 6개 단체는 ‘민간택지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철회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에 대한 의견’을 내고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분양원가 공개가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인하에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오히려 건설업계는 “분양원가 공개로 주택공급량이 줄어들어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건설업계의 우려는 빗나갔다. 2008년 분양원가 공개법이 시행된 이후 서울과 전국의 아파트 분양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2008년 3.3㎡당 1085만원이던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09년 3.3㎡당 1075만원으로 하락했다. 2008년부터 분양가는 줄곧 하락해 2012년 3.3㎡당 840만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분양원가 공개항목이 축소됐고 2013년 분양가는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적어도 2008년부터 분양원가 공개항목이 축소된 시기까지 신규 분양물량에 한해서는 분양가 절감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분양원가 공개를 하면 분양가를 올릴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든다”며 “분양가를 낮춰 안정시키는 효과는 분명히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보유세 강화 없이는 집값 ‘도돌이표’

그렇다면 분양원가 공개가 폭주하는 아파트값을 안정시킬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섣불리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다. 분양원가 공개는 분양가 절감효과가 입증돤 제도이지만 주택시장 정상화를 이끌 근본대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이뤄진 분양가 인하가 주택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2004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분양원가 공개 도입에 반대의 뜻을 밝히면서 “분양원가 공개는 (부동산)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발언이다. 분양원가 공개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근본대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 당시 참여정부의 판단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도 다르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에 열린 대선주자 초청 간담회에서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원가 공개가 아니었다. 분양원가 공개가 제대로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폭등하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58개 항목의 세부 분양원가를 공개한 마곡 인근 발산지구 분양가는 3.3㎡당 792만원, 84㎡ 기준 분양가가 2억5000만원으로 책정돼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후 가격이 폭등해 현재 8억5000만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분양원가 공개만으로는 부동산 폭등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태경 헨리조지포럼 사무처장은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 적폐 척결에 유효한 정책”이라며 “분양원가 공개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해 부동산 투기를 막을 해법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11월 8일 보유세강화시민행동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위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11월 8일 보유세강화시민행동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동산 보유세 강화를 위한 대통령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강윤중 기자

시민사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분양원가 공개와 더불어 부동산대책의 근간이 되는 보유세 강화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하고 있다. 부동산 불평등 해소를 위한 보유세강화시민행동은 지난 8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투기수요를 소멸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최적의 정책수단이 바로 보유세”라며 “최근 서울의 집값 급등세가 진정된 데 안도해 보유세 개혁 의지를 포기할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분양원가 공개처럼 부수적인 정책으로는 부동산 폭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더 늦기 전에 보유세 강화를 포함한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후분양제 도입 필요성도 거론된다. 현행법상 선분양과 후분양은 구분해 강제하고 있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분양과 동시에 착공에 들어가는 선분양이 이뤄진다. 후분양제가 도입되면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해온 분양권 전매가 사라진다. 분양권 거래 근절만으로도 투기세력들로 인해 과열된 부동산시장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서순탁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지금 이뤄지는 선분양은 바로잡아야 될 첫 번째 잘못된 제도”라며 “후분양제는 부동산시장 안정화뿐만 아니라 소비자 권익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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