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투호 3개월, 한국축구가 달라졌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벤투 감독은 용병술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확고한 주전과 탄탄한 백업 멤버를 모두 구축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호주 원정을 마치고 귀항한 벤투호는 훈풍에 휩싸였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이 11월 15일 호주 브리즈번 페리공원에서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다. / 브리즈번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축구대표팀 감독(왼쪽)이 11월 15일 호주 브리즈번 페리공원에서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며 미소짓고 있다. / 브리즈번 | 연합뉴스

파울루 벤투 감독(49)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올해 마지막 A매치인 11월 20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4-0으로 대승해 6경기 연속 무패(3승3무)로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사실 벤투 감독이 지난 8월 대표팀을 맡을 때만 해도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이었다. 벤투 감독도 201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조국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끈 명장이지만,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과 키케 플로레스 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 등 다른 지도자들이 한국행을 거부해 기회를 잡았다는 인식이 컸다.

그러나 벤투 감독이 1997년 한국 축구에 전임 감독제가 시행된 이래 감독 데뷔 최다 무패 기록인 6경기 무패를 질주하면서 호평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사령탑이 부임하면 선수들이 각성한다는 ‘새 감독 효과’는 감안해야겠지만 첫출발이 순조로운 것은 분명하다.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더 나은 수준으로 이끌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하나둘 지켜가고 있다.

점유율 높여 세밀하고 지배하는 축구

벤투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것은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축구철학을 녹여냈다는 점이다. 벤투 감독은 높은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쉴 새 없이 공격을 펼치는 ‘지배축구’를 추구한다. 단순히 공을 오래 소유하는 것을 넘어 후방 빌드업으로 짜임새 있는 공격을 구사해 경기 흐름을 주도하는 게 목표다. A매치 기간만 선수들을 소집할 수 있는 대표팀 특성상 훈련시간이 많지 않지만 분 단위로 쪼갤 정도로 세밀한 부분에 공을 들여 선수들에게 자신의 축구철학을 전파했다. 또 교체로 투입되는 선수에게는 명확한 지시를 내려 제몫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미드필더 기성용(29·뉴캐슬)이 “볼을 소유할 때나 공격할 때 모두 세밀한 부분까지 주문한다”고 놀라움을 내비칠 정도다.

성과는 기록에 모두 드러나 있다. 벤투 감독이 지휘한 A매치 6경기 기록을 살펴보면 볼 점유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경기는 남미 강호 칠레전(39.4%) 한 경기뿐이다. 나머지 경기에선 대부분 60% 안팎의 볼 점유율로 상대를 압도했다. 벤투 감독이 상대한 팀들이 아시아 국가가 아닌 칠레와 우루과이(55.2%), 코스타리카(67.6%) 등 남미와 북중미 국가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했기에 더욱 놀랍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벤투호가 세밀한 축구를 구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축구의 고질적 약점인 수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다. 6경기에서 단 4실점. 무실점 경기(코스타리카 2-0 승·칠레 0-0 무·우즈베키스탄 4-0 승)도 3경기나 된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부활한 수비수 김영권(28·광저우 에버그란데)을 중심으로 짠물 수비를 완성했다. 또 다른 수비의 축 장현수(27·도쿄)가 병역특례에 따른 체육봉사활동을 조작해 국가대표 자격을 영구 박탈당하는 변수가 있었지만 김민재(22·전북)라는 젊은 수비수를 발굴해 극복했다. 특히 11월 17일 호주전에선 상대에게 무려 22개의 슈팅을 내주고도 단 1실점만 기록하는 철옹성을 뽐냈다.

59년 만에 아시안컵 우승 도전

벤투 감독은 용병술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확고한 주전과 탄탄한 백업 멤버를 모두 구축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평가다. 손흥민(26·토트넘)과 기성용 등 러시아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주전을 꿰찬 상태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기존 선수들이 빠진 11월 호주 원정에서 백업들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누가 뛰어도 상관없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최전방 골잡이 황의조(26·감바 오사카)만 벤투호에서 3골을 터뜨려 눈도장을 받아냈을 따름이다. 그는 올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득점왕(9골)에 올라 금메달까지 안기면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성인무대에서도 탁월한 골감각을 자랑하고 있다. 황의조는 최근 26경기에서 25골을 넣으면서 이회택(72)과 차범근(65), 최순호(56), 황선홍(50), 이동국(39) 등 특급 골잡이의 계보를 잇는 선수로 불리고 있다.

반면 나머지 포지션은 그야말로 예측불허다. 황의조를 지원하는 2선 공격진이 가장 치열하다. 손흥민과 황희찬(22·함부르크), 이재성(26·홀슈타인 킬) 등 유럽파 3인이 버티는 가운데 이청용(30·보쿰)이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러시아월드컵 본선 무대에 부름을 받지 못했던 이청용은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보쿰으로 이적한 뒤 꾸준히 경기에 나서면서 제 기량을 되찾았다. 호주 원정에선 호주와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모두 선발 출전해 무르익은 기량과 경험으로 가치를 입증했다. 또 우즈베키스탄전에서 UFO골을 터뜨린 문선민(26·인천)도 조커로 경쟁력을 충분히 뽐냈다. 부상으로 이탈한 선수들까지 감안하면 누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 참가할지도 예측하기 쉽지 않다.

2022년 카타르월드컵을 겨냥해 꾸준히 발굴 중인 어린 유망주들의 가세도 경쟁에 힘을 불어넣는 요인이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황인범(22·대전)과 나상호(22·광주), 김민재, 이진현(21·포항), 김정민(19·오스트리아 리퍼링) 등이 그라운드를 밟았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 황인범은 “(기)성용형이 걱정없이 은퇴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정도로 주요 전력으로 성장했다.

김대길 경향신문 해설위원은 “벤투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공격과 수비 모두 전술의 완성도가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선수층도 넓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이젠 한 선수의 공백이 생기더라도 걱정이 없다”고 칭찬했다.

벤투 감독은 지난 3개월간 고르고 고른 선수들을 바탕으로 아시안컵 우승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것은 2회인 1960년이 마지막이다. 59년 만의 우승 도전을 위해 조기 소집까지 고려하고 있다. 벤투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에 규정보다 일주일가량 앞당겨 울산에 전지훈련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울산에서 부족한 중앙수비수의 실험과 세트피스의 완성도 등을 높인 뒤 결전지인 UAE로 넘어가 내년 1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와 평가전을 치르는 로드맵이다. 이후 1월 7일 필리핀을 상대로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면서 우승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이라는 목표를 향해 잘 준비하고 있다”며 “최선의 방법으로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황민국 스포츠경향 기자 stylelimo@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