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배의 눈

떼창의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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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배의 눈]떼창의 민족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화제다. ‘보헤미안 랩소디 싱어롱’이라 지칭되는 떼창도 큰 화제다. 영화 속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는 록 그룹 퀸의 명곡들을 관객들이 일제히 따라 부르며 객석에서 일어나 박수치고 발을 구르며 열광한다. 공연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영화관에서 연출된다. 이것은 파격이다. 원래 영화관에서 가장 중요한 에티켓은 타인의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정숙을 지키는 것이었다. 이런 전통적인 규범이 깨졌다. 모두가 흥에 겨워 떼창을 하는데 혼자 영화에만 몰입하겠다며 조용히 앉아 있으면 오히려 주변 관객의 흥을 깨는 민폐로 간주된다. 영화관 떼창은 전혀 새로운 문화현상이다.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된 영화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떼창 관람이 열풍이라 하니 이는 지극히 한국적인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인의 떼창 문화는 이미 곳곳에 널리 퍼져 있다. 외국의 유명 팝 아티스트들이 내한 공연을 할 때면 관객들의 우렁찬 떼창에 깜짝 놀란다. 프로야구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관중들의 떼창 응원가도 다른 나라 경기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화다. 도심 집회에 모인 시위대들의 움직임도 늘 떼창으로 시작해서 떼창으로 마무리된다. 비좁은 노래방에 모여 앉아 여흥을 즐길 때도 마지막 노래만큼은 떼창으로 끝내야 제대로 논 것 같아 마음이 후련하다. 이쯤 되면 한국인은 가히 떼창의 민족이라 부를 만하다.

영화관 떼창 문화를 몰고 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바로 그 제목을 가진 노래는 정작 퀸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80년대에 한국에서는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자유롭게 들을 수 없었다. 노래 가사에 살인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유로운 표현을 억압하고 획일화된 문화를 강요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노래 역시 정치적 희생양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시절 젊은이들은 떼창은 꿈도 못 꾼 채, 남몰래 복제 음반을 구해 숨어서 이 노래를 들어야만 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떼창 문화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떼창은 위험시되고 불온한 것으로까지 간주됐다. 그래서 지금 영화관 떼창 문화가 하필이면 ‘보헤미안 랩소디’로 점화됐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떼창은 문화적으로는 흥미롭고 유쾌한 놀이지만 정치적 영역으로 넘어오면 문제가 달라진다. 특정 지도자나 이념에 대한 맹목적 추종과 무조건적인 집단적 일체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떼창의 민족답게 이미 정치 현안 곳곳에서 이런 움직임을 수없이 경험하고 있다. 영화관 떼창과 달리 정치적 떼창의 대열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혼자 오롯이 자기만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사람이 앉아 있을 자리는 별로 없다. 숨어서 금지곡을 듣는 사람은 사라졌지만 떼창으로 노래되지 않는 곡을 홀로 숨어서 불러야 하는 사람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지금 떼창의 민족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이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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