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고의 분식, 이제부터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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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선위 ‘고의성 있다’ 결론… 이재용 경영권 관련 파장 일파만파

분식회계란 회사의 실적을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 회사의 장부를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 없는데 실제로 일어난 매출처럼 기록하거나 비용을 적게 적거나 누락시키는 일 등이 해당된다. 사상 최대 분식회계 금액이라고 했던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만큼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다. 분식금액은 그보다 적은 4조5000억원이지만 그 자체가 함의하는 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과 맞닿은 문제라 파장이 더 크다. 바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다.

증선위가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에 대한 결론을 낼 전망인 가운데, 13일 인천광역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송도=김기남 기자

증선위가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에 대한 결론을 낼 전망인 가운데, 13일 인천광역시 송도에 위치한 삼성바이오로직스 공장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송도=김기남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논란이 지난 14일 일단락을 지었다.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겠지만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차원에서는 ‘고의 분식’으로 결론이 났다.

2016년 11월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코스피 상장 문제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등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지위를 2015년 말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바꾸면서 회사 가치가 부풀려졌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회계기준을 바꾸면 회사 가치를 평가할 때 적용되는 기준이 취득가액에서 시장가액으로 바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취득가액에서 시장가액으로 바꿔 평가하면서 회사의 가치가 4621억원에서 4조8085억원으로 부풀려졌다. 모회사인 삼성바이오는 지난 4년간 적자였다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가 올라가자 덩달아 2015년 말 당기순이익 규모가 1조9049억원인 흑자기업으로 돌아섰다. 회사의 가치는 변함이 없었고, 회계기준 하나 달리 적용했을 뿐인데 갑자기 수치가 팍팍 올라간 셈이다.

회계기준 바꾸자 적자에서 흑자로

금감원은 지난해 3월부터 특별감리에 착수했고 올해 5월 중징계 입장을 정했다. 이때부터 논란이 거세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곧장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다. 삼성바이오는 2015년 당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유럽 판매 승인 등을 받아 기업 가치가 올라갔고,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콜옵션(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을 가지고 있는 미국 바이오젠사가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요청해오면서 회사의 지위가 종속(단독 지배)→관계회사(공동 지배)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바이오 측은 ‘고의 분식’이라고 증선위 결론이 나온 14일 이후에도 “전혀 문제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회계업계에서는 국제회계기준이 원칙을 지킨다면 경영자의 재량권을 충분히 보장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문제삼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았다. 일각에서는 이처럼 경영자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회계제도를 도입해놓고 규제 차원에서 접근하면 안 된다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징계를 요청한 금감원으로서는 ‘결정적 증거’가 절실했다. 금감원은 지난 5~7월 사이 증선위 심의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바이오에피스와 바이오젠사와의 합작계약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증선위는 지난 14일 최종 발표에서 중요한 재무결정에는 바이오젠사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합작계약서를 근거로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바이오젠사와 처음부터 ‘공동 지배’하는 회사라고 판단했다.

삼바 고의 분식, 이제부터가 문제

그러나 합작계약서만으로는 부족했다. 2015년 당시 회계기준 변경이 자의적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자료가 필요했다. 금감원은 지난 10월 30일 2차 증선위에서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2015년 8월부터 11월 사이에 작성한 20여쪽 분량의 문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은 이날 “내부문건은 매우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이번 심의에 정통한 관계자도 “내부문건이 없었다면 고의 분식으로 결론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내부문건은 삼성바이오가 왜 회계기준을 바꿔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문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슈와도 연관된다는 점도 드러낸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불똥 튈 듯

2015년 11월 10일 문건에는 ‘회계법인은 물산 합병 시 바이오사업 가치 평가와 관련하여 바이오젠사의 콜옵션에 대해 부채 및 손실 반영을 로직스에 요구’ ‘콜옵션 행사 가능성 확대로 1.8조의 부채 및 평가손실 반영으로 로직스는 자본잠식 예상’ ‘자본잠식 시 기존 차입금 상환 및 신규차입, 상장 불가’라고 적혀 있다.

이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시 삼성바이오 사업부문을 이미 6조9000억원으로 ‘고평가’해놨으니, 바이오젠사가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렇게 되면 재무제표에 콜옵션을 부채로 반영해야 한다는 말이다. 콜옵션 1조8000억원을 부채로 반영하면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고 상장할 수 없다는 말로 이어진다. 그래서 삼성 측은 내부문건에서 세 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고, 그 중 하나인 자회사 지위를 바꾼 것이다. 애초에 자회사 지위를 바꿔야만 할 ‘이유와 의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고의 분식회계에 가장 중요한 건 ‘의도성’이다. 의도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내야 하는 과정인데, 이번 사건에서는 ‘내부문건’이 그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삼성은 왜 바이오사업을 ‘6조9000억원’으로 고평가해놨을까. 이 수치는 타당한 건가.

이재용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최대주주였다. 그러나 삼성물산 주식은 없었다. 제일모직의 가치가 올라가야 합병할 때 이 부회장의 지분율도 올라가는 구조였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 주식을 46% 가지고 있었다.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올라갈수록 제일모직의 가치가 올라가고, 덩달아 이 부회장도 유리했던 것이다.

증선위는 그러나 어떻게 6조9000억원이 산출됐는지까지는 다루지 않았다. 이는 삼성바이오가 회계법인에 의뢰한 내부 참고용 수치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도 감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참여연대는 증선위 발표 직후 논평을 내고 “통합 삼성물산은 합병 시 제일모직 주가의 적정성 확보를 위해 삼성바이오의 가치를 목표수준인 6조9000억원에 맞췄다”며 “그러한 평가결과를 목표로 했던 이유는 통합 전 삼성물산을 헐값에 합병했다는 흔적을 적절히 숨기고 싶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감리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도 재조명될 수밖에 없다.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결론을 두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가 문제”(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임지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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