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뉴올리언스 심장이 된 쿼터백 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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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단순한 쿼터백이 아니다.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는 뉴올리언스를 연고로 하고 있는 모든 스포츠팀을 통틀어 최고의 선수이며,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선수다.

배구는 세터 놀음이라고 한다. 그리고 야구는 투수 놀음, 농구는 센터 놀음이라고도 한다. 그만큼 해당 스포츠에서 이 포지션들이 주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뜻이다. 같은 선상에서 미식축구는 ‘쿼터백 놀음’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필드 위의 야전사령관이라고도 불리는 쿼터백은 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쿼터백이 뿌리는 패스 하나에 팀 승패가 오간다. A급 쿼터백 한 명이 팀을 우승으로 이끌 수 있다는 말도 결코 허언은 아니다.

2010년 NFL 제44회 슈퍼볼에서 MVP로 뽑힌 뉴올리언스의 쿼터백 드류 브리스가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다. / AP연합뉴스

2010년 NFL 제44회 슈퍼볼에서 MVP로 뽑힌 뉴올리언스의 쿼터백 드류 브리스가 트로피를 들고 웃고 있다. / AP연합뉴스

미국 4대 프로스포츠 중 하나로 가장 인기가 많다는 미식축구리그인 미국프로풋볼(NFL)에는 많은 명쿼터백이 있다. 은퇴한 페이튼 매닝부터 시작해 톰 브래디(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애런 로저스(그린베이 패커스), 러셀 윌슨(시애틀 시호크스) 등은 모두 팀을 NFL 챔피언 결정전인 ‘슈퍼볼’ 우승으로 이끈 전력이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지금부터 소개할 드류 브리스(39·뉴올리언스 세인츠) 역시 NFL 역사를 아로새기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쿼터백 중 하나다.

가깝고 멀고를 가리지 않는 패스

브리스의 신장은 183㎝다. 일반인 기준에서 결코 작은 신장은 아니지만 이게 미식축구, 그것도 쿼터백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쿼터백에게 있어 신장은 굉장히 중요하다. 쿼터백 바로 앞에서 쿼터백을 보호하는 자기팀 라인맨과 반대로 쿼터백을 노리는 상대팀 라인맨들이 모두 덩치가 큰 선수들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키가 작으면 패스 시야가 가려져 방해가 될 뿐 아니라, 공을 던지는 타점도 낮아지기 때문에 쉽게 인터셉트 당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브래디나 로저스는 190㎝를 넘거나 그에 가까운 신장을 자랑한다. 180㎝를 간신히 넘는 윌슨 같은 경우도 있지만, 윌슨은 브래디나 로저스와는 다른 ‘듀얼 스렛(패스와 러닝이 모두 가능한 쿼터백)’형 쿼터백이라 특별한 케이스다. 브래디와 로저스처럼 리시버에게 정확한 패스 전달을 주임무로 하는 ‘포켓 패서’형 쿼터백인 브리스는 분명 특이한 존재다.

그럼에도 브리스의 패스 전달능력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다. 그의 패스는 거리가 가깝고 멀고를 따지지 않고 정확히 날아가 리시버에게 안착한다. 그의 패스는 목표물을 정확히 쫓아가 타격하는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이다.

심지어 리시버가 누구인지도 상관없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예전같지는 않지만, 전성기 시절 브리스는 정상급 리시버들과 호흡을 맞춰본 적이 그다지 없었음에도 매 시즌 4000야드 이상의 패싱야드를 기록하며 자신의 능력을 뽐냈다. 지금까지 NFL 역사에 한 시즌 5000 패싱야드가 나온 것은 겨우 9번. 그리고 그 중 절반이 넘는 5번을 브리스 혼자 만들어냈다.

그의 미식축구 시작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와 농구, 미식축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으로 진학해 야구선수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설인 테드 윌리엄스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때문에 윌리엄스의 등번호인 9번을 자신의 등번호로 쓰고 있다.

당시만 해도 그의 키는 지금과 같은 183㎝였지만, 몸무게가 고작 77㎏밖에 나가지 않았다. 미식축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체구였다. 체중을 늘리려고 갖은 노력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여기에 고등학교 11학년 때 미식축구 경기 도중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수술 후 재활을 하는 과정에서 그는 고통을 감내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토록 늘지 않던 체중도 90㎏ 가까이까지 늘었다. 여전히 쿼터백을 하기에는 작은 체구였지만, 브리스는 부상을 훌륭하게 이겨내면서 자신에게 그토록 큰 고통을 주고 또 인내라는 덕목을 알려준 미식축구에 도전하기로 했다.

뉴올리언스 위해 자선재단 만들어

고등학교 때 팀을 우승으로 이끈 그에게 당연히 많은 대학에서 제안이 들어올 줄 알았으나, 고작 퍼듀대학과 켄터키대학 두 곳만이 그에게 제안을 보냈다. 부상 경력까지 있고, 또 왜소한 체구의 그를 향한 의구심은 여전했다. 그는 고민 끝에 퍼듀대학을 선택했고, 사람들의 의구심이 기우였음을 입증했다. 그는 대학시절 무수한 대학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름을 날렸고, 팀을 빅 텐 콘퍼런스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런 화려한 성적을 가지고 2001년 NFL 드래프트에 나선 브리스는 결국 2라운드 1순위로 샌디에이고 차저스의 차지가 됐다. 샌디에이고에서 브리스는 주전 쿼터백으로 꾸준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샌디에이고는 계속해서 그를 향한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특히 2005~2006시즌 브리스가 오른쪽 어깨 회전근이 끊어지는, 쿼터백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부상을 당하자 마침내 그를 포기했다. 샌디에이고는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그에게 5년 5000만 달러 계약을 제시했는데, 기본급 200만 달러에 대부분은 인센티브로 채워져 있는 형편없는 계약이었다. 샌디에이고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몰라도, 브리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결국 그는 샌디에이고를 떠나 지금의 소속팀인 뉴올리언스로 이적했다. 뉴올리언스 역사상 최고의 영입이었다.

그는 단순한 쿼터백이 아니다. 뉴올리언스라는 도시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는 뉴올리언스를 연고로 하고 있는 모든 스포츠팀을 통틀어 최고의 선수이며,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선수다.

브리스가 뉴올리언스로 온 것은 2006년이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뉴올리언스가 쑥대밭이 된 이듬해이기도 했다. 카트리나의 피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시민들은 절망과 분노에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브리스는 쑥대밭이 된 뉴올리언스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시작으로, 도시 복구작업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 있는 뉴올리언스 시민들에게 반드시 빈스 롬바르디 트로피(슈퍼볼 우승 트로피)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브리스는 2009년 슈퍼볼에서 매닝의 인디애나폴리스 콜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그 약속을 지켰다. 지금도 그는 자선재단을 만들어 뉴올리언스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다.

브리스는 지난달 8일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가진 홈 경기에서 매닝을 넘어 NFL 통산 패싱야드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경기 후 “나는 이 도시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주어를 뒤집어도 마찬가지다. 뉴올리언스 역시 브리스를 사랑한다.

<윤은용 경향신문 스포츠부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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