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대리점 “뭉쳐야 산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이통 3사 대리점협의회 각각 출범, 20여년 공생관계에 균열 조짐

이동통신사들과 이동통신 대리점 간 이어져온 20여년간의 공생관계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16일 서울 세종대로 오펠리스에서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 창립식’이 열렸다. 주최 측은 당초 150~200명의 참석자를 예상했지만 이를 훌쩍 웃도는 300여명의 SK텔레콤 대리점주들이 찾아왔다. 주최 측 관계자는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2015년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유리창에 붙은 광고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대리점 앞을 지나는 행인들이 유리창에 붙은 광고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선 6월에는 LG유플러스 대리점협의회가, 8월에는 전국KT대리점협의회가 각각 출범했다. 이동통신 3사의 대리점들이 각 사별로 모두 뭉친 셈이다. 이통사들과 정식 계약을 맺고 개통과 판매업무를 대행하는 대리점들이 이렇게 집단행동에 나선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동통신사들과의 불공정 계약 관행을 개선하겠다”고 주장 중이다. 여기에 단말기 완전자급제 문제까지 겹치면서 이동통신 유통시장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대리점들 “불공정 관행 조사”

오프라인 이동통신 유통망은 크게 대리점과 판매점을 통해 구축된다. 판매점은 이동통신 가입자를 전문적으로 모집하는 업체다. 대부분 소속을 두지 않고 이통 3사의 판매를 모두 취급한다. 대리점은 각 이통사들이 지정한 이른바 ‘공식 대리점’을 뜻한다. 해당 이통사의 서비스 가입 및 변경, 해지 등 본사를 대신해 가입자들에게 각종 편의와 통신업무를 제공한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대리점은 고객들이 이통사와 만나는 최접점에 있는 곳이라 곧 해당 이통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통사가 모든 대리점을 직접 운영하는 건 아니다. 직영보다는 개인사업자와의 위탁계약을 통해 운영하는 대리점이 훨씬 많다. SK텔레콤의 경우 3600여개 대리점 중 개인이 운영하는 일반 대리점 비중이 70%에 달한다. 대리점들은 가입자 모집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KT경제경영연구소의 2016년 분석자료를 보면 대리점은 통상 이동통신서비스 판매의 40%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이통사와 대리점은 지난 20여년간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왔다. 2000년대 들어 이동통신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할 때는 이통사 간 ‘대리점 쟁탈전’도 심심찮게 벌어졌다. 대리점이 많을수록 유통망도 넓고 판촉도 잘됐기 때문이다. 한 대리점 업주는 “한창 영업이 잘될 때는 경쟁사들이 웃돈을 주면서 계약을 하자고 제시하기도 했다”며 “본사 역시 명절 등에는 특별 격려금을 쥐어줘 가며 대리점들을 관리했다”고 회상했다.

대리점과 이통사의 동맹관계는 2014년 10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시행되면서 어긋나기 시작했다. 단통법으로 중고단말기나 자급제 단말기에 대한 요금할인율이 점진적으로 25%까지 올랐고, 이통사의 수익이 줄어든 만큼 대리점의 몫도 줄어들었다. 폐업하는 대리점도 속출하자 참다 못한 대리점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대리점주들이 뭉친 게 처음은 아니다. 박선오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장은 “1998년쯤에 대리점주들이 모여 단체를 결성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당시엔 이통사의 회유도 있었고, 대리점주들도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초기에만 잠깐 활동하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번엔 다르다는 게 대리점주들의 입장이다. 생존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간 눈감아 왔던 이통사와의 불공정거래 관행도 이참에 바로잡겠다고 나서고 있다. 박 회장은 “이통사와의 계약관계, 거래관계 등 분야별 불공정 관행에 대해 협의회 차원에서 조사를 벌이는 중”이라며 “사안별로 집단행동에 나서거나 쟁점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0월 16일 서울 세종대로 오펠리스에서 열린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 창립식’에서 박선오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10월 16일 서울 세종대로 오펠리스에서 열린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 창립식’에서 박선오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계약관계 문제의 경우 현재 이통사와의 위탁계약 내용이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대리점주들은 현재 “이통사가 일방적으로 내미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다”고 주장 중이다. 올 7월에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대리점법)’이 시행되면서 대리점 거래에 대한 세부 규정이 생겼다. 각 사별 대리점주협회는 위탁계약 내용이 이 법과 어긋나는 내용은 없는지부터 검토한 뒤 위법한 부분이 발견되면 이통사들에 개선을 요구한다는 방침이다.

이통사들은 관망 속 불안감 내비쳐

거래관계 문제에서는 각 이통사의 장려금 정책이 거론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관계자는 “이통사들이 각종 장려금 위주로 판매정책을 짜는 탓에 이를 채우지 못한 대리점들은 갈수록 수익이 줄어들고 있다”며 “대리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정책이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대리점법에서는 공급업자가 대리점에 판매목표를 강제하거나 구입을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대리점에 불이익을 주는 것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통사들은 일단 대리점주들의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대리점협의회에서 구체적인 협의나 요구사항을 보내오지 않았다”며 “협의회 측의 제안이 오는 대로 검토한 뒤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대리점주들의 집단행동에 대한 이통사들의 회유나 견제도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집단행동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게 통신업계의 분위기다. 대리점들은 계약관계에 있는 이통사들의 휴대전화 및 이통서비스 판매전략을 훤히 꿰고 있다. 이통사들이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불법 판촉행위에 관한 정보 역시 가장 먼저 도는 곳이 대리점들이다. 그동안은 공생을 이유로 눈감아온 사안들도 문제삼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문제제기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 이통사 관계자는 “통신사 입장에서는 대리점들이 집단으로 영업을 하지 않거나 회사를 옮기는 행동 등을 단행할 경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타고 있는 단말기 완전자급제 도입문제 역시 이통사와 대리점 간 분쟁에 도화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리점주들은 완전자급제가 실제 도입될 경우 줄어드는 이통사의 보조금이나 장려금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이통사에 요구 중이다. 이통사들은 “아직 완전자급제 골자가 마련되지 않았다”며 즉답을 회피할 뿐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통신업계는 대리점주들이 최근 넉 달간 잇달아 협회를 조직하고 나선 주요 배경에는 완전자급제 도입 논의에 따른 위기감이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통사들이 대리점의 요구를 외면할 경우 양측 간 갈등이 극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