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민주당의 미세한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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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선과 비교, 평균 10%포인트 지지 늘어

블루 웨이브(민주당 바람)는 존재했지만 쓰나미까지는 아니었다. 지난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는 민주당이 하원을,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는 ‘의회 분점’으로 막을 내렸다. 민주당은 8년 만에 하원 다수당 지위를 얻었지만, 상원과 주지사 선거를 압도하는 ‘대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4석을 추가로 확보하며 다수당 지위를 굳혔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 다음 날인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 다음 날인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는 대통령 집권 2년차에 치러진다. 4년 임기 정가운데 있어 대통령 신임 투표가 될 수밖에 없다. 남북전쟁 이후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패한 경우는 세 번(1934년, 1998년, 2002년)뿐이다.

트럼프 신임 투표 이번 선거는 ‘대통령 중간평가’ 성격이 유독 강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투표용지에 내 이름은 없지만 이번 선거는 나에 대한 투표”라고 했다. 출생시민권제도 폐지, 멕시코 국경 군인 파견 등 대선공약을 연상케 하는 정책도 쏟아져나왔다. 6일 CBS 출구조사에서는 유권자의 65%가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투표했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첫 중간선거 때보다 5% 더 많다.

8일 오전 5시를 기준으로 하원 435석 중 민주당은 과반인 223석을 확보했다. 공화당은 197석을 얻었다. 최종 성적은 229석 대 206석으로 예측됐다. 공화당은 상원에서 의석을 늘렸다. 최종 성적은 47석 대 53석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과만 보면 승패가 명확하지 않다. 민주당은 2016년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견인했던 러스트벨트 지역을 상당 부분 되찾았다. 미시간주와 일리노이주 주지사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 후보를 꺾은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표 경합지역인 플로리다와 텍사스 상원 선거, 오하이오와 조지아주 주지사 선거에서는 공화당에 패했다.

다만 미 언론들은 민주당에 ‘판정승’을 고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 대선과 비교해 하원 선거구 317곳에서 민주당 지지가 늘었고, 전체적으론 평균 10%포인트 민주당 지지가 늘었다고 밝혔다. 상원에서 지기는 했지만, 민주당이 뺏을 수 있는 곳은 공화당 집권주인 9곳에 불과했다. 상원에서 2석 정도 잃었지만 이탈이 적었고, 하원에서는 과반 의석에 필요한 23석보다 5석 이상 추가 확보하며 더 큰 패배를 줄였다는 분석이다.

여성의 해 미국 언론들이 이번 선거에서 주목해야 할 점으로 빼놓지 않는 것이 바로 ‘우먼스 웨이브(여성후보 약진현상)’다. NPR 등에 따르면 8일 오전 현재 상원의원 22명, 하원의원 98명 등 총 120명의 여성이 연방의회 입성을 확정지었다. 여성 하원의원이 사상 최초로 100명을 돌파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존에는 상·하원 각각 23명, 84명으로 전체 535명 중 107명인 현재 기록이 최다였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한 지난 6일(현지시간)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왼쪽)가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을 탈환한 지난 6일(현지시간)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왼쪽)가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여성 정치의 질적 변화도 두드러졌다. 최초의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 의원, 최초의 무슬림 여성 의원이 탄생하는 등 다양한 배경의 소수자 후보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선거 홍보영상에서 모유 수유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한 후보자도 있었다. ‘여성’이나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부각하지 않았던 과거와는 달라진 흐름이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한 것은 8년 만에 하원 탈환을 목표로 한 민주당이다. 럿거스대학교 미국여성정치센터(CAWP)에 따르면 이번 연방 상·하원, 주지사 선거에 후보등록을 한 여성의 70%가 민주당 소속이었을 정도로 민주당은 여성 후보 배출에 적극적이었다. 건강보험이나 세제 공약도 ‘여성 맞춤형’으로 제시했다. 취임 후 줄곧 여성 비하 발언과 성추문으로 구설에 올라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여성 표심 공략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CNN 출구조사에 따르면 여성은 전체 투표자 중 52%를 차지했고, 그 중 59%가 민주당에 투표했다고 답했다. 공화당에 투표했다는 여성(40%)보다 20%가 많았다. 압도적이었던 여성 표심과 달리 남성 표심은 공화당(51%)이 민주당(47%)을 근소하게 앞섰다. 미국 언론들은 교외지역에 거주하는 대졸 여성이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 역할을 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더 진보적인 민주당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은 버니 샌더스의 패배로 끝났지만, 이번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샌더스 키즈’들의 의회 입성이 본격화된 것도 눈여겨볼 점이다. 민주당 차기 대선주자로 꼽히던 10선 의원 조 크롤리를 경선에서 제치고,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29)가 그 선봉격에 서 있다. 무슬림 여성 최초로 하원의원으로 당선돼 주목을 받은 라시다 틀레입(미시간주)과 일한 오마르(미네소타주)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최저임금 15달러, 모두를 위한 메디케어와 같이 민주당 기존 노선에 비해 진보적인 정책을 지지한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유권자들과 일대 일로 만나는 ‘풀뿌리 선거전략’도 이들의 특징으로 꼽힌다. 인지도와 자원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기업 후원금에 의존해 온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염증을 해소하는 역할도 했다.

다만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차기 정치인으로 꼽혔던 진보성향 출마자 대다수가 선거에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제2의 오바마’로 기대를 모은 앤드루 길럼 플로리다 주지사 후보,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를 노렸던 스테이시 에이브람스 조지아 주지사 후보 등이 의회 입성에 실패했다. 그러나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진보적인 정치 신인들의 약진현상이 두드러졌고, 이번 중간선거에서도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예상 외의 선전을 거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들의 등장이 민주당에 미칠 영향력은 작지 않아 보인다.

<심윤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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