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알렉스 코라 감독, 데뷔 첫해 ‘큰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코라 감독은 2018시즌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데뷔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1988년 LA 다저스에서 빅리거 생활을 시작했다. 14시즌 동안 통산 타율 2할4푼3리. 뛰어난 타자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내야수였다.

지난 10월 27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보스턴과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3차전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명승부였다. 팽팽한 승부가 무려 18회까지 이어졌다. 경기시간은 7시간 20분이나 걸렸다.

미 프로야구 보스턴 알렉스 코라 감독이 10월 23일(현지시간) 월드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 프로야구 보스턴 알렉스 코라 감독이 10월 23일(현지시간) 월드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저스는 선발 워커 뷸러의 7이닝 2안타 무실점 호투 속에 승리가 눈앞까지 다가왔다. 마무리 투수 켄리 잰슨이 2이닝 마무리를 하기 위해 8회 마운드에 올랐다가 사달이 났다. 선두타자 재키 브래들리 주니어에게 동점 홈런을 얻어맞았다.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2차전 류현진의 이른 교체에 이어 이날도 마운드 운영에 실패했다. 이후 연장 승부가 길어졌다.

메이저리그 감독 중 최저 연봉

승부가 조금 더 일찍 갈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13회에 나왔다. 보스턴은 에두아르도 누네스의 투수앞 내야안타 때 다저스 투수 스캇 알렉산더의 송구가 빗나가면서 2루주자 브록 홀트가 홈까지 들어왔다. 13회말을 막으면 끝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보스턴 2루수 이안 킨슬러의 송구 실책이 나왔다. 2루 주자 맥스 먼시가 홈을 밟았다. 장군 멍군 승부 속에 18회말이 돼서야 경기가 끝났다. 13회말 동점 득점을 만든 먼시가 이번에는 타구를 다저스타디움 오른쪽 담장 너머로 날렸다. 7시간20분, 18회 승부 모두 역대 월드시리즈 최장·최다 기록이었다.

홈에서 2경기를 모두 따낸 보스턴이었지만 사실상 2경기에 해당하는 연장 18회 끝 패배는 충격이 적지 않았다. 2승1패 중이었지만 마치 1승2패를 당한 분위기였다. 보스턴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라커룸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때 보스턴 알렉스 코라 감독(43)이 라커룸으로 들어왔다.

코라 감독은 2018시즌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데뷔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1988년 LA 다저스에서 빅리거 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다저스 감독 데이브 로버츠와 팀 동료였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는 보스턴의 내야수로 활약했다. 14시즌 동안 통산 타율 2할4푼3리. 뛰어난 타자는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내야수였다. 2루수, 유격수, 3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었다.

알렉스 코라는 2011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타격은 조금 떨어졌지만 야구 공부를 열심히 했던 선수였다. 은퇴 뒤 1년 쉬고 곧 ESPN의 해설자가 됐다. 2016시즌에는 방송국을 떠나 휴스턴의 벤치코치가 됐다. 해설자 시절 보여준 야구기록, 통계에 대한 박식함이 휴스턴의 마음을 샀다. 송곳은 어디 있어도 튀어나오게 마련이다. 2017년 휴스턴이 월드시리즈를 시작하기도 전에 보스턴이 구애에 나섰다. 월드시리즈가 남아있지만 보스턴은 휴스턴의 허락을 얻어 알렉스 코라 감독 영입 사실을 발표했다. 감독 내정 상태에서 벤치코치로 월드시리즈를 치렀고, 휴스턴의 창단 첫 우승에 힘을 보탰다. 코라는 이어 보스턴 레드삭스의 감독이 됐다.

메이저리그 초보 감독에게 주어지는 연봉은 많지 않다. 알렉스 코라 감독은 코치 경험도 두 시즌이 전부였다. 백전노장 스타 감독들이 500만~700만 달러(약 56억∼78억원) 연봉을 받는 데 비해 코라 감독의 연봉은 겨우 80만 달러(약 8억9400만원)였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감독 연봉 중 가장 적은 수준이었다. 코라 감독은 연봉에 욕심을 내지 않는 대신, 감독 계약조건 협상 때 보스턴 구단에 딱 한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의 고향 푸에르토리코에 ‘비행기 한 대분의 구호물자를 보내줄 것’이 전부였다.

코라 감독이 계약하기 직전이었던 2017년 9월, 푸에르토리코는 허리케인 마리아가 할퀴고 가는 바람에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피해규모 자체가 제대로 집계되지 않을 정도였다.

코라는 보스턴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메이저리그의 스프링캠프는 2월 중순 시작된다. 선수들을 스프링캠프에서 만나기에 앞서 코라는 12월부터 미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직접 선수들의 동네로 찾아가서 인사를 했고,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치밀한 경기운영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게 아니라 선수들로 하여금 같은 곳을 보고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다. 직접 집으로, 동네로 찾아온 새 감독을 향해 보스턴 선수들의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팀은 이미 하나로 뭉치는 듯 보였다.

정규리그 108승 거두며 최고 승률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마무리 투수 크레이그 킴브럴에게 고난이 닥쳤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 리디아가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야구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킴브럴은 스프링캠프를 떠나 딸의 곁을 지켰다. 마무리 투수가 시범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했지만 보직에 대한 변화는 없었다. 코라 감독도 선수들도 모두 마무리 투수 자리를 비워두고 기다렸다. 단지 자리를 남겨둔 것만이 아니다. 보스턴 선수들은 스프링캠프 동안 유니폼 안에 ‘힘내라 리디아’라고 적인 티셔츠를 입고 뛰었다. 킴브럴이 돌아왔고 라커룸에서 축하파티가 열렸을 때 킴브럴이 말했다. “너희들이 8회까지만 이겨주면, 내가 9회는 무조건 책임질게.”

선발투수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는 정규시즌 개막 이틀 전 ‘57번’ 축하파티를 열었다. 팀 3루 코치 카를로스 페블스가 등번호 57번을 로드리게스에게 흔쾌히 양보한 것에 대한 감사 파티다. 선수, 코치, 프런트 등 무려 56명이 파티에 참가했다. 코라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우리가 똘똘 뭉쳐 있다는 걸 보여준 장면”이라고 말했다. 이 파티에서 연봉 3000만 달러를 받는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너희들과 함께여서 너무 좋다. 이번에야말로 내가 누구인지 보여주겠어. 우리 다 같이 월드시리즈 가자. 내가 MVP 꼭 탈 거야”라고 외쳤다.

똘똘 뭉친 보스턴은 정규시즌 승승장구했다. 무려 108승을 거두며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 가을야구도 거침이 없었다. 큰소리 뻥뻥쳤던 프라이스는 과거 가을야구에서 9번 선발등판해 0승이었다. 이번에는 선발로만 3승을 거뒀고, 불펜 등판도 가리지 않았다. 단단함과 끈끈함으로 라이벌 뉴욕 양키스를 꺾었고, 지난해 우승팀 휴스턴도 물리쳤다. 월드시리즈 상대는 다저스였다.

연장 18회 끝 패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수들에게 알렉스 코라 감독이 말했다. “우리가 연장 끝에 힘이 모자라서, 부족해서 진 게 아니다. 상대가 우리를 이기려면 무려 18이닝이나 싸워야 한다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그만큼 강하고, 아직 2승1패로 앞서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선수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 다음부터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 보스턴은 4차전 0-4로 뒤지던 경기를 뒤집어 이겼고, 5차전도 승리하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코라 감독은 우승 며칠 뒤 구단 고위 관계자들과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고향 푸에르토리코로 날아갔다. 여전히 허리케인의 상처가 남아있는 그곳에 코라가 들고간 우승 트로피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코라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첫 월드시리즈 우승감독이 됐다.

<이용균 스포츠경향 기자 noda@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