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코바르-유명 앵커 연인이 본 전설의 마약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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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 다분히 정략적이었다. 서로가 그것을 잘 알았다. 영화에서는 언뜻언뜻 언급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연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전기 작가라는 계약관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 에스코바르

원제 Loving Pablo

원작 Loving Pablo, Hating Escobar

감독·각본 페르난도 레온 데 아라노아

출연 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 피터 사스가드

상영시간 122분

등급 15세 관람가

국내 개봉 2018년 11월 15일

렌엔터테인먼트

렌엔터테인먼트

콜롬비아 만세! 빈민촌 인근 집 지붕에 숨어 있던 저격병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 만세를 불렀다. 지붕 위에 쓰러진 거구의 남자. 파블로 에스코바르. 세기의 마약왕이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그가 결국 걸려든 것은 도청되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자신의 아들에게 ‘진실’을 불러주다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그 진실이란 자신의 가족을 독일로 보내는 조건으로 자신은 자수하기로 정부와 약속이 되어 있었고,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과 짜고 그 약속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아마 그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그가 사살된 게 1993년이니 아직 채 30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는 21세기 내내 반추되는 전설로 남을 것이다.

영화 <에스코바르>는 그의 연인이었던 유명 앵커 바르히니아의 회고에 기초해 만들어진 영화다. 회고록의 제목은 <사랑하는 파블로, 증오하는 에스코바르(Loving Pablo, Hating Escobar)>다. 양가적 감정이다. 주위 사람들이 흔히 불렀던 애칭인 ‘파블로’는 사랑했지만, 냉혈한 마약사업가 에스코바르는 미워했다? 참고로 영화의 원제는 <사랑하는 파블로(Loving Pablo)>였지만, 유명세를 얻은 이름 때문인지 개봉 제목은 <에스코바르>다.

전설로 남을 마약왕

영화는 에스코바르와 바르히니아의 만남 장면부터 시작한다. 바르히니아의 회고조 멘트에 따르면 이날이 카르텔 시작 일이었다. 메데인 카르텔. 세계 최대의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은 전성기 때 북미대륙, 정확히는 미국 전체 마약 공급량의 80%를 차지했다. 그만큼 돈을 갈퀴로 모았다. 악당이 전설이 된 데는 그가 일말의 의협심도 갖고 있었던 때문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벌어들이는 돈 중 일부를 빈민가에 투자했다. 집도 짓고 병원도 지었다. 카르텔의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정치를 적극 이용했다. 뇌물만 먹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출마도 하고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까지 했다. 꽃길은 거기까지. 법무부 장관이 그가 과거에 연루된 살인사건 자료를 폭로하자 그는 ‘시카리오(흔히 쫄따구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들을 시켜 법무부 장관을 백주대로에서 암살한다. 숨어 지내다 자수한 그는 정부와 타협해 감옥에 갇히는데, 그 감옥이 또 화제를 모았다. 직접 수십만 평의 땅을 매입해 대궐 같은 집을 짓고, 그 안에 스스로 들어앉은 것이다. 주중에는 그의 부하들과 면회를 빙자해 회합하며 마약 판매조직을 관리했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보냈다.

바르히니아가 사랑한 것은 에스코바르의 어떤 면이었을까. 두 사람의 관계는 사실 다분히 정략적이었다. 서로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민가 출신의 이 마약왕은 어떤 진정성이 있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는 언뜻언뜻 언급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부터 연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전기 작가라는 계약관계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유명 언론인인 바르히니아에게 그는 자신의 시시콜콜한 모든 것을 털어놨고, 그녀는 남들이 모르는 내밀한 핵심 정보를 갖고 있었다.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 세퍼드가 그녀에게 접근한 것도 그녀가 단순하게 에스코바르의 연인이어서가 아니라 그녀만 알고 있는 특급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영화는 바르히니아의 회고록에 근거하지만 냉소적으로 접근한다. 바르히니아의 시각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은 채 카메라는 그녀의 선택과 처신을 때때로 조롱한다. 원래의 회고록도 그럴까.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부적절한 선택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은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본다.

영화가 묘사한 내밀한 이야기들

에스코바르가 사살되었을 때 국내 언론들도 세계면 단신으로 그의 죽음을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읽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리뷰를 쓰면서 찾아보니 의외로 국내외 대중문화, 특히 만화에서 이 희대의 악당을 자주 인용했다. 고르고 13에서 박봉성 만화까지. 에스코바르 역은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았다. 우리에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인상적인 산소통 캐틀건을 들고 다니던 안톤 시거 역의 그 남자다. 바르히니아 역의 페넬로페 크루즈는 실제 그의 부인이다. 그러니까 실제 부부가 악당과 정부(情婦) 역을 맡은 것이다. 두 사람 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연기파 배우다. 영화 이야기의 완급을 풀어가는 방식도 수준급이다. 보지는 못했지만 최근 넷플릭스에서 이번에는 에스코바르의 아들 시점에서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가 방영된 모양이다. 정작 건축사가 된 아들은 “그 드라마에서 나의 아버지가 너무 미화되었다”고 주장하며 비판했다고 한다. 영화는 그의 인간적인 면을 묘사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둔다. 회고의 주인공인 바르히니아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다. 묘한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영화가 다루지 않은 에스코바르의 일생

1991년 6월 19일, 콜롬비아 당국에 자수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 경향자료사진

1991년 6월 19일, 콜롬비아 당국에 자수한 파블로 에스코바르. | 경향자료사진

영화가 다루는 시점은 앞에서 거론한 것처럼 메데인 카르텔의 결성 이후다. 이때 에스코바르는 콜롬비아 최고의 신흥갑부가 되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 부자가 되었다. 에스코바르는 1949년생이다. 그러니까 바르히니아와 만나고 외도를 한 시점인 1980년대 초반은 그의 나이 30대였을 때다. 콜롬비아 리오네그로의 농부와 초등학교 선생님 부부 사이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부터 그는 소소한 범죄를 저질렀다. 처음 저지른 범죄는 대리석 묘비를 훔쳐 파는 것이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밀수담배, 위조복권 판매에서 시작한 그의 범죄는 그의 나이 20대인 1970년대에 이르면 코카인 제조와 유통사업으로 커진다. 그의 사업수완에서 터닝포인트는 북미대륙의 광활한 마약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 직접 경비행기를 몰고 마약을 날랐다는 풍문이 있지만 실제 그 자신은 인근의 파나마를 제외하면 콜롬비아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 시기의 남미를 다룬 영화, 하면 떠오르는 것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1986) 같은 영화들인데, 실제 쿠바혁명 이후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회주의 계열의 반미 무장게릴라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점이었다. 그렇다면 ‘마약왕’은 어떤 입장이었을까? 기록을 살펴보면 메데인 카르텔의 결성은 두 단계를 거치는데, 영화의 중반부에 묘사된 ‘미국 시장 나눠먹기’는 뒤의 일이고, 처음 카르텔의 결성은 마약조직을 털어 활동자금을 마련하는 이 좌파 게릴라들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스코바르 역시 미국에 대한 감정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건 DEA뿐만 아니라 CIA 역시 콜롬비아 정부를 배후조종하면서 자신을 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에스코바르는 국회의원이 될 때 자유당 후보로 출마한다. 그 전까지는 그는 마약을 팔아 번 돈을 좌우파를 막론하고 고루 상납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그가 콜롬비아 정치의 감추고 싶은 ‘흑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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