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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 미투’ 학생이라 만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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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교는 폭로 이전과 큰 차이 없고 가해자의 사과도 건성

지난 9월 7일 충북여중 학생이 남긴 트윗이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교내의 고질적인 성희롱과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이 트위터는 68개 학교의 ‘스쿨 미투’로 이어졌다. 11월 3일 이들이 첫 집단행동에 나선다. 집단행동 이름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다. 스쿨 미투 당사자들을 만나 자세한 경위를 들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교를 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연합뉴스

영어시간이 다가오자 몇몇 학생이 짜증을 냈다. “오늘 또 이상한 소리 하는 거 아니야?” 50대 남성 교사는 여학생들을 향해 성희롱과 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 “여자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대답을 잘해야 한다”는 발언은 예사였고 “너희는 내 앞에서 자면 안 된다. 나는 남자고 여자가 남자 앞에서 자는 건 잡아먹으라는 이야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도 트위터 만들까?”

학생 몇몇이 위클래스(교내 상담센터)를 찾았다. “그 선생님에게 도저히 수업을 못 듣겠다”고 울면서 호소한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위클래스 교사는 가해교사에게 ‘주의’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고, 심지어 몇 학년 몇 반 학생이 위클래스를 찾아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해교사는 해당 학급을 찾아가 “너희가 신고했느냐”며 “나는 학교 관둬도 연금 받으면서 살면 된다”고 말했다.

청주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인씨(가명·18)는 “상당수 학생이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고 괜히 나섰다가 졸업 후 취업하는 데 지장이 생길까봐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 와중에 충북여중 미투가 터졌다. “어? 우리 학교가 더 심한데? 우리도 트위터 만들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제보가 쏟아졌고 계정을 만든 지 5일 만에 ‘#청주여상_미투’ 트윗은 95만4000건을 기록했다. 사건이 커지자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교장은 “이런 일이 있는 걸 몰랐다”고 유감을 표하면서도 “100%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자꾸 올리면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인씨는 “무서웠다”고 말했다.

학교는 전교생을 강당으로 소집했다. 교감선생님이 나서 사과를 한 다음 “추가 피해사실이 있으면 손을 들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누구도 선뜻 손을 들지 못했다. 그때 1학년 한 학생이 손을 들고 추가 피해를 말했다. 이후 봇물 터지듯 문제가 제기됐다. 여러 명의 교사가 추가 가해자로 지목됐다.

학교는 영어교사와 음악교사를 직위해제했다. 정인씨는 “그 외에도 네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성희롱·성차별 발언을 했는데 단체 사과 이후에 유야무야됐다”고 말했다. 미투 직후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전원이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교사들이 눈물을 보이며 사과하자 “선생님이 불쌍하다. 이 정도만 하자”는 분위기가 됐다는 것이다.

현재 학교는 미투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교사 2명이 직위해제됐지만 학생에게 “선물받은 속옷을 보여달라” “우리 와이프 속옷이랑 같다”고 말한 교사는 여전히 수업을 하고 있다. 미투를 농담처럼 언급하는 교사도 있다. “아, 이런 말 하면 미투지?”라는 식이다. 정인씨는 “우리가 어른이어도 이랬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우리가 어른이어도 이랬을까요?

서울 광진구 광남중학교에서 미투를 시작한 이희진씨(가명·17)도 스쿨미투는 여러 위계가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위계, 교사와 학생이라는 지위 위계, 그리고 성인과 미성년이라는 위계다.

희진씨는 “미성년은 잘 모를 것이니까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희진씨는 광남중 재학생이 아닌 졸업생이다. 졸업생인 희진씨가 광남중 미투 트위터 계정을 만든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들에게 3년 내내 성폭력을 가했던 교사가 후배들에게 똑같이 성희롱·성추행을 일삼고 있어서다. 희진씨는 지금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폭력 가해자는 도덕과목을 가르치는 남성 교사였다. 희진씨와 다수 제보에 따르면 해당 교사는 “남자는 몸매 좋은 여자를 보면 몸의 뭔가가 반응한다” “(여학생들에게) 섹시하다고 하는 건 칭찬 아니냐” “여자는 아테네처럼 강하고 헤라처럼 질투 많은 건 별로다. 아프로디테처럼 예쁘고 쭉쭉빵빵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

성추행도 있었다. 해당 교사는 상습적으로 여학생들의 팔을 만졌고 이에 학생들이 거부감을 보이면 “예뻐서 그런 거다”라는 말로 넘어갔다. 수행평가를 앞두고는 “예쁜 여학생이 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 “내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으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는 발언을 했다.

9월 11일 서울 광남중 교내에 붙은 미투 포스트잇. / 광남중학교 #Metoo 트위터

9월 11일 서울 광남중 교내에 붙은 미투 포스트잇. / 광남중학교 #Metoo 트위터

중학교 1학년이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다. 성희롱이 뭔지 성추행은 뭔지, 성폭력과 성폭행은 비슷한 단어 같은데 차이는 뭔지 배운 적이 없다. 그래서 기분이 나빴음에도 “예뻐서 그런 거다”라며 팔을 만지는 선생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중학교 3학년 즈음이 되어서야 문제를 인식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광남중은 광진구에서 학구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희진씨는 “공부를 되게 열심히 하는 학교다. 외국어고등학교나 자립형사립학교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 이런 친구들은 중학교 생활기록부가 중요하다”며 “그래서인지 담임교사나 부모님께 말씀 드려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스쿨미투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희진씨가 트위터를 통해 제안한 ‘포스트잇 운동’은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9월 11일 광남중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등교시간, 점심시간, 하교시간에 진행됐다. 모든 반 창문과 학교 입구에 ‘진심으로 사과해 주세요’ ‘성적인 발언 하지 말아 주세요’ 등이 적힌 포스트잇이 가득 붙었다.

광남중 미투 참가자들이 더 분노한 일은 그다음에 시작됐다. 가해자로 지목됐던 교사가 각 학급을 돌며 “누가 말했냐”고 물으며 “예쁘게 봐달라”는 말로 웃으며 사과를 한 것이다. 희진씨는 “이게 반성하고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냐”며 “이건 사과가 아니라 2차 가해이자 동시에 학생들을 조롱하고 협박한 것이다. 우리가 어른이어도 이랬을까?”라고 말했다.

성폭력 교사, 같은 재단의 다른 학교로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 내 성폭력과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먼저 성폭력 예방교육이다. 희진씨는 “중학교 내내 성희롱을 당했지만 그게 성희롱인 줄도 몰랐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일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교사운동본부 관계자도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은 임신과 출산, 그리고 원치 않는 성관계 이후의 대응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일상적인 성차별·성희롱에 대한 교육이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필요하다. 시대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4050대 교사들은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성희롱·성추행을 인지했다면 이를 알릴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 현재 학생들이 성폭력과 관련해 상담이나 신고할 수 있는 창구는 위클래스와 보건선생님 등으로 제한적이다. 문제는 학생들이 이 창구를 믿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담교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거나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나마 위클래스가 있는 학교도 59%에 불과하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문 상담교사 배치율은 44.6%에 불과하다”며 “일선학교에 위클래스 확충 및 전문 상담교사의 충원이 시급하다. 교육청에 설치된 위센터도 추가로 신설해 보다 전문적인 상담과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현직 교사는 학교가 아니라 학생과 교육청을 직접적으로 연결해주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에 소속된 상담사가 학교에 상주하거나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교장 등 학교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신고 다음은 징계다. 징계는 학생들이 가장 회의감을 느끼는 부분이다. 신고를 하고 공론화를 해봤자 어차피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불신이다. 사립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흐지부지될 게 뻔해서 굳이 말하지 않는다”며 “작년에 문제를 일으킨 교사가 같은 재단의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더라. 그게 무슨 징계냐”고 비판했다.

사립학교는 교육청에서 가해교사에 대한 징계를 권고해도 재단이사회가 수용하지 않으면 끝이다. 이에 대해 김해영 의원은 “현재 교육부에서 사립학교 교원의 성범죄 징계수준을 국·공립 교원 기준으로 준용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교육위로 상정한 상황이다”라며 “이번 기회에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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