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인정 0%’ 한국 사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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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난민을 공공의 적으로 형상화하는 목소리에 백기 들어

1994년 이후 시작된 한국의 난민에 관한 담론은 2018년 4월 이후 시작된 ‘제주 피난 예멘 난민’ 사건 이후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을 수 없게 됐다. 2017년 말 기준 약 7000만명에 달하는 ‘보호가 필요한’ 난민들이 세계 각처에 존재한다. 대한민국에 찾아온 500여명의 난민들은 매년 한국 정부에 보호를 구하는 9000여명의 난민신청자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 수 자체도 지중해를 건넜던 수많은 난민선 중 몇 대에 지나지 않을 정도임에도 예멘 난민들이 주는 ‘낯섦’은 우리 사회에 물음을 던졌다.

제주 예멘 난민의 모습. / 정지윤 기자

제주 예멘 난민의 모습. / 정지윤 기자

사회적·정책적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난민이 이제 ‘보이는 존재’로 처음 공론의 장에 강제로 부각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 ‘가짜난민’, ‘잠재적 범죄자’ 등 사회가 호명하는 대로 불렸다. ‘낯섬’에 대한 몸의 반응은 국제정치의 맥락에선 극우에 포진한 ‘난민 반대’의 목소리로 휩쓸리거나, ‘불안한 시선’으로 다양하게 우리 사회에 등장했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불완전한 결정

종전의 ‘난민 인정절차의 유지 및 소극적 억제’로 일관하는 등 단선적 정책밖에 없었던 정부는 지금 방향도, 자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국제사회에 자랑해온 난민법과 관련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되기 힘든 공백을 여실히 드러냈다. 난민들에 대한 정책도, 난민들과 공존해야 할 시민들에 대한 정책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의 이런 난민정책에 관한 빈자리는 ‘난민집단’을 공공의 적으로 형상화하는 목소리가 대신 채웠다. 그러한 목소리는 ‘난민과 연대할 수 없는’ 일부 시민이 마치 헌법 제정 권력인 ‘국민’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직접민주주의의 실험장으로 여겨졌던 청와대 국민청원의 최다청원이 극우에 가까운 목소리로 이용된 것, 이것은 난민문제가 더 이상 정책의 문제만으로 한계 지을 수 없음을 뜻한다.

여기서 묻고 싶다. 과연 난민들을 강제송환 금지원칙에 반해서 다시 전쟁터로 내보낼 경우 지금 이들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제기하는 ‘예상문제’가 정말 다 해결되는 것일까. 내부의 갈등과 문제를 은폐한 채 특정한 타자 집단을 기존 사회의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위험한 사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근거를 잃었음에도 강력한 혐오와 차별의 목소리로 한국에서 다시 등장했다. 결국 한국 사회의 존재적 불안이 난민에게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날선 각자의 목소리가 오가며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지난 10월 17일 법무부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은 올해 제주도에서 난민신청을 한 예멘인 중 심사를 마친 373명 가운데 339명에 대해서 난민법에 따른 인도적 체류를 허가하고 일부는 불인정한다는 내용의 2차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난민인권네트워크와 제주 난민 인권을 위한 범도민 위원회가 심사 결과 발표 직후 발표한 입장문에 담겨있듯 이번 결정은 매우 이해하기 어렵다. 373명 중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인정자가 1명도 없는 난민인정률 0%의 결과. 거기에 34명에 대해서는 인도적 체류도 허가하지 않은 단순불인정 결정을 내려 이들을 추방의 위험 앞에 놓아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처분이다. 339명에 대한 인도적 체류허가도 결코 예멘 난민들을 한국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답이 될 수 없는 불완전한 결정이다.

전쟁의 위협에서 탈출해온 난민들에게 놓여진 ‘난민인정 0%’라는 것은 법무부가 난민 반대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해 난민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청취하지 않고 조사하지도 않은, 정말 말 그대로 ‘정무적 결과’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정부에서 ‘준난민’이라고 일컫는, 그래서 국제사회를 상대로 난민보호통계에 포함시키고 있는 ‘인도적 체류지위’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난민으로 인정해야 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인도적으로 체류를 허가한다’는 식의 이름 붙이기를 해본들 난민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3개월마다 연장되었던 난민신청자 비자가 1년에 한 번씩 연장되는 것과 종전처럼 취업허가를 얻어 취업을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전부다. 대다수의 사회보험혜택에서 제외돼 정착을 기대하기 어렵고, 예멘의 전쟁상황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송환대상이 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다. 거주지를 제주도로 제한했던 것을 풀어 원할 경우 육지로 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은 특별히 어떤 권리를 부여한 것이 아니고 당연히 보장돼야 할 삶의 자격을 회복해준 것에 불과하다.

제주 피난 예멘 난민들 다시 추방 위기

불인정자들은 어떠한가. 전쟁의 위협과 공포가 한국 정부의 결정에 따라 인도적 체류지위를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을 갈라서 다가오는 건가? 기근과 폭격의 위협이 난민지위불인정자에게는 다가오지 않을 공포라고 누가 확신하는가. 단 한 명의 난민인정자가 없는 것, 박해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아닌 사정들을 들어 불인정 결정을 내린 것은 그저 막연히 불안해 하는 일부 국민들에게 “엄정한 심사를 할테니 걱정 말라”고 공언한 것이 실제였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나 되묻고 싶다.

또한 개별적인 사정을 일일이 들어보지 못해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에도 인도적 체류 처분만 받은 사람이나 단순불인정 결정을 받은 사람들은 난민위원회에 이의신청을 내거나 법원에 자신들의 정당한 지위를 확인받고 추방을 면키 위해 지루한 소송절차를 이어나갈 수도 있다. 불안정한 지위는 결국 계속된다. 단기간의 정무적인 고려로 난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안정 또는 불확실한 상태로 만들어 놓은 정부의 결정은 난민들에게는 물론이고 정부에도, 난민인정시스템 자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난민이란 주제는 2018년을 지나며 단지 ‘난민의 인권’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의 ‘인권의 주체’를 묻는 문제로, 나아가 민주주의의 문제로 전화되었다. 영구적이고 부차적이지 않은 사회 구성원인 난민의 존재성에 대한 질문은 한국 사회의 미래가 자민족끼리의 평화 기치하에 ‘엄격한 제한적 통제로 사회 내 외국인을 2등 국민으로 만들 것인지’, ‘다양한 문화, 국적, 인종이 존중받는 이민국가로 갈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던지게 된 계기가 됐다.

난민문제는 이제 전지구적인 문제이자 항구적인 문제가 됐다. 평화운동과의 연대 모색 측면에서 난민 정착국가에서의 ‘반이민·반난민’이라는 정치이념의 지분 확보와 정치적 우향우가 예전에 없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제는 지구적 연대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현재의 이 엄정한 상황에서 평화를 찾아 한국으로 온 난민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은 이제는 적당히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정답은 나와 있다. ‘적법하고 정당한 난민 보호’로 이들에게 다시 답해야 한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APIL) 상근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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