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영과 시코르가 뜨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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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곳에서 여러 브랜드를 골라 담는 재미… 헬스&뷰티숍 급성장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한때 인기를 끌었던 광고 문구다. 이 광고의 주인공 ‘스킨푸드’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2015년 상장 당시 8300억원이었던 ‘토니모리’의 시가총액은 최근 1900억원대로 급감했다.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의 2016년 영업이익은 227억9700만원에서 지난해 76억6100만원으로 줄었다. 올 상반기 65억700만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시코르 서울 강남역점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피고 있다. / 신세계백화점 제공

시코르 서울 강남역점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살피고 있다. / 신세계백화점 제공

2000년대 급성장했던 화장품 브랜드숍이 역사의 뒤안길에 섰다. 브랜드숍은 한 브랜드만 파는 곳이다. 미샤, 토니모리, 스킨푸드, 네이처리퍼블릭 등 중소 화장품업체만이 아니다. 대기업의 브랜드숍도 마찬가지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에뛰드하우스’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2.8% 줄어 75억원의 영업손실을, ‘에스쁘아’도 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상반기 매출은 전년 대비 13% 줄었다.

중소 화장품 기업과 공생관계

브랜드숍이 저무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겉으로 눈에 띄는 건 2016년 중국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다. 화장품 구매의 ‘큰손’이었던 중국 소비자가 사라진 계기였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화장품 내수시장은 2010년을 전후로 줄고 있다. 다만 그간 중국 소비자들의 구매로 시장의 축소가 눈에 띄지 않다가 사드 보복 이후 뚜렷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시장이 줄어든 게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뜻이다.

이 상황에서 브랜드숍은 헬스&뷰티숍(H&B)에 밀렸다. 헬스&뷰티숍은 여러 브랜드의 화장품과 식음료, 건강용품 등을 한 번에 살 수 있는 곳이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 매장 수는 2011년 152곳에서 2015년 552곳, 현재는 1050여개로 늘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랄라블라(구 왓슨스)’는 2013년 87곳이었지만 지금은 190곳이다. 롯데쇼핑의 ‘롭스’는 2013년 10곳에서 현재 111곳이 됐다. 브랜드숍 위주 판매정책을 고수하던 로레알의 ‘더바디샵’도 지난해 브라질 기업에 매각됐다. 그렇다. 한곳에서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유통망이 대세가 됐다.

헬스&뷰티숍이 뜬 이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골라 담는 재미’로 요약할 수 있다. 브랜드숍에서 파는 중저가 화장품은 충성도가 높지 않다. 유행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20·30세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소문난 제품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골라 본다. 오프라인 매장이 일종의 ‘놀이공간’인 셈이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고객이 매장에서 ‘노는 것’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취한다. SNS와 연계한 상품의 폭을 넓힌다. 또 직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고객이 혼자 쇼핑할 수 있도록 한다. 고객들은 상품 바코드를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찍으면 상품정보를 얻을 수 있다. 굳이 직원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다양한 제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통망은 중소 화장품 기업과 공생관계다. 중소업체는 탄탄한 판로를, 헬스&뷰티숍은 다양한 상품을 얻기 때문이다. 마스크팩 메디힐로 유명한 엘앤피코스메틱이나 파파레서피로 유명한 코스토리의 급성장은 편집숍이 없다면 불가능했다. 해브앤비(닥터자르트), 에이피알(에이프릴 스킨), 난다(스타일난다 및 3CE) 등의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화장품 브랜드숍은 역사의 뒤안길로

이쯤 되니 기존 업체들도 ‘한 번에 여러 브랜드를 살 수 있는’ 유통망으로 뛰어든다.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한율 등 아모레퍼시픽 제품만 취급했던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은 메디힐, 더툴랩, 스틸라, 한아조 등 신규 브랜드 59개를 추가했다. LG생활건강의 자사 브랜드 편집숍 ‘네이처컬렉션’도 타사 브랜드를 입점시킨다.

하지만 매장을 늘리는 방식은 정답이 못된다. 이미 매장 수는 커질 만큼 커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헬스&뷰티숍의 매장수가 1200개면 이미 ‘있을 만한 곳’에는 다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헬스&뷰티숍이 들어서기 위한 면적은 적어도 132㎡(40평)는 돼야 한다”며 “편의점만큼 오밀조밀하게 세우지 못하는 특성상 양적 성장은 이미 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내실을 다지는 전략을 취한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올리브영은 ‘젊은 40대’를 새로운 타깃으로 정했다. 올리브영에서 40대의 매출은 2012년 6.8%에 그쳤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20.7%로 3배가량 뛰었다. CJ올리브네트웍스는 40대 소비자가 자주 찾는 매장에 안티에이징 크림과 헤어염색제, 샴푸·바디용품, 건강기능식품을 전면 배치한다. 이 제품들은 40대에게 인기상품이다.

한 번에 여러 브랜드를 살 수 있는 유통망은 고가 화장품 시장에서도 대세로 떠오른다. 신세계백화점의 ‘시코르’는 랑콤, 슈에무라, 어반디케이 등 백화점 럭셔리 화장품부터 제스젭, 클라뷰, 포니이펙트, 루나, 아임미미 등 K뷰티까지 60여개의 브랜드를 모았다.

신세계백화점은 2016년 12월 ‘시코르’ 1호점을 낸 이후 현재까지 16개 점포를 냈다. 올해 연 매장만 10개다. 연내에 20개, 내년에는 40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중저가 화장품 시장과 달리 공격적인 확장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코르는 경기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에도 매장을 두고 있다. 패션업체가 아울렛을 통해 재고상품을 판매하듯 재고상품의 판매처도 확보한 것이다.

롯데백화점은 기존 화장품 편집매장 ‘라코스메티크’를 리브랜딩한 ‘라코(LACO)’를 운영한다. 라코를 연 뒤 한 달간 매출은 기존에 비해 47% 올랐다. 명품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계열의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도 국내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헬스&뷰티숍과 편집숍이라는 유통망으로 업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골라 담는 재미를 주는 유통형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그러나 결국 유행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브랜드 경쟁력을 가진 업체가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희양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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