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리벤지 포르노와 그루밍, 사랑의 증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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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표’가 있어서 사랑하고, 없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관계는 이미 사랑의 관계는 아닐 것이다. ‘사랑의 증표’라는 이유를 들어 성관계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은 변태적 성욕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걸그룹 멤버 구하라씨를 상대로 한 폭행 및 상해사건이 보복 동영상(일명 ‘리벤지 포르노’) 논란으로 번졌다. 비슷한 시기 남편 왕진진씨와 이혼소송 중인 방송인 낸시랭도 남편으로부터 보복 동영상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유명인사들의 잇단 폭로로 청와대 국민청원은 18일 현재 23만8000여명이 동의를 한 상태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리벤지 포르노’라는 말 자체에서 연상되듯 해당 영상물은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의 ‘성관계’ 장면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연인들이 촬영 당시에는 ‘사랑의 증표’ 또는 ‘사랑의 기록’으로 촬영했다는 전제를 가진다. 반면 여기에는 대다수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사안과 개념에 대한 매우 큰 오해와 범죄적 동기가 상존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리벤지 포르노’라는 영상물 촬영의 대부분이 남성에 의해 제안되고 여성이 이를 수동적으로 수락해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당연히 해당 남성은 촬영 당시에는 “혼자만 간직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이런 약속은 무의미해진다. 디지털 자료라는 특성과 사이버 공간의 무제한 확산이라는 특성상 헤어진 사람이 무서운 협박은 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평생 지고 가야 할 엄청난 부담으로 돌변한다.

남성 주도의 성관계 동영상… 범죄로 돌변

사안을 정확히 보자. 진정 사랑하는 사이라면 물리적인 ‘사랑의 증표’가 왜 필요하겠는가.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증표’가 물리적으로 필요한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증표’가 있어서 사랑하고, 없어서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런 관계는 이미 사랑의 관계는 아닐 것이다. 평생 한 사람만을 연인으로 삼아 결혼하더라도 이혼할 가능성 역시 높은 게 현대사회다. ‘사랑의 증표’라는 이유를 들어 성관계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은 변태적 성욕자가 아니고 무엇인가.

리벤지 포르노를 찍자고 연인에게 제안해 그 촬영물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주로 남성이지만)들은 문제가 될 경우 거의 대부분 ‘합의’에 의해 촬영되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 성범죄 사건이나 다수의 위력에 의한 성범죄 재판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물론 사법부는 아직도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성인을 대상으로 한 그루밍(Grooming) 성범죄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루밍 상태에서의 합의는 정상적인 합의가 아니다. 미필적 고의나 범죄적인 고의성을 가지고 유도된 합의는 정상적인 합의라고 할 수 없다. 전자는 ‘이것을 찍어두면 나한테서 도망가지 못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찍자고 유도하는 상황이다. 범죄적 고의성이 있다고 명확히 확증할 수는 없지만 그 영상물이 확실한 담보물이 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것은 미필적 고의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촬영을 제안하는 적지 않은 남성들의 마음속에는 이런 상황이 떠오를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양극화와 그로 인한 사회성 빈곤화에 의해 (주로) 남성들이 가지는 ‘쪼그라든 성성(sexuality·남성성)’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지기 때문이다. 무시당하지 않고 즉, 여성에게 차이지 않기 위해 하는 행위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낮은 자존감과 빈곤한 사회성으로 인한 분리불안과도 연결된다.

아울러 리벤지 포르노와 관련한 심각한 오해는 해당 동영상에서 보여지는 여성들의 행동양태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심리적 상태인데, 강요된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밝게 웃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적인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영상 속 상황은 위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 아니며 결과적으로 합의에 의한 촬영이라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명백히 문자나 목소리로 동의를 표시했다고 해도 위력은 상황적이고 맥락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몰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던 중 여성에 의해 발각이 되거나 혹은 촬영 중에 남성이 촬영 중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그 상황에서 여성은 어떤 행동과 말을 어떻게 할까? 남성에게 화를 내고 싸울까? 대부분이 예상하듯이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어설프고 가증스러운 남성의 변명을 믿으려 할 것이고 그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일부는 어색한 분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게 합의인가? 아니다. 합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지표행동)이 (잠재적)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은 아닐 것이다. 반대로 촬영을 제안한 사람의 숨겨진 의도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만 그루밍 성범죄나 위력에 의한 성범죄 등에서 익히 보아왔듯이 수사기관과 기소기관, 사법부는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동영상 속 위력 존재 간과해서는 안돼

리벤지 포르노 사안을 볼 때 조직범죄적인 측면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발생한 리벤지 포르노 관련 사건을 보면 ▲사귄 지 6개월 미만(대부분 2개월 이내)인 ▲연인(이라는 합의가 된) 사이에서 조직범죄가 의심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의 피해자들은 연인이었던 사람이 복수심으로 올린 동영상 자체가 협박이고, 주변에 알려지거나 온라인에 유포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리벤지 포르노의 실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이 자체가 하나의 사업으로 운영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피해여성이 연인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이 사실은 범죄조직의 하수인이거나 혹은 범죄의 목적(동영상을 판매할 목적)을 가지고 여성에게 접근해 일정시간(2개월 정도)이 지난 후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뒤 이별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식의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때 거래되는 금액은 수만 원에서 수십만 원 사이다. 금액은 동영상의 내용(일반인들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도)과 화질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목적지는 같다. 음란물 사이트나 웹하드, 파일공유사이트(P2P) 등이다. 해당 동영상들은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헤비업로더의 손에 넘어가 공유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수익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이런 촬영물들을 미끼로 인터넷 광고(불법 도박 사이트, 성매매업소, 성인용품 등의 광고)를 유치해 막대한 광고비 수익까지 얻어낸다. 소라넷의 경우 최소 100억원대의 범죄수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한다. 사랑으로 포장된 ‘보복 동영상’은 그 자체로 범죄다. 그리고 그 동영상을 향유하는 많은 사람들은 리벤지 포르노 동영상이 여전히 활개치고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공범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범죄도시 연재를 마칩니다.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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