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MB 1심 판결 ‘네버엔딩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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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드러난 사실과 앞으로 밝혀져야 할 사실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는 많다. 국가를, 또는 공적 자산을 개인 수익모델로 삼았던 MB의 ‘비리’ 또는 ‘횡령’ 이야기. 네버엔딩 스토리다.

다스 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다스 자금 횡령과 삼성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9월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6월, 그동안 언론에 드러나지 않았던 다스 전 직원의 법정 증언이 있었다. 김해권씨다. 그는 다스의 전직 사장들이 한 달에 한 번씩 MB에게 보고할 ‘다스 인원 현황’ 등 경영보고서를 작성한 당사자다. “MB는 다스 법인자금으로 구입한 좋은 소나무를 가져간 적이 있다. 그때 가져간 소나무는 자신의 집이나 별장 정원에 심었다고 들었다.” “MB의 딸은 다스에 근무한 적이 없었다. 딸이 대학 졸업 후 미국 비자를 발급받으려고 해서 허위 재직증명서를 사장 지시로 만들어준 적이 있다.” “사장은 내게 전직 국회의원 빈소에 가서 조의금을 내라고 지시한 적도 있었다. 내가 빈소 방명록에 ‘국회의원 이명박’이라고 대필한 뒤 회삿돈으로 챙겨간 조의금을 낸 적도 있다.”

“떡이니까 맛있게 드세요”

이번 1심 판결문(10월 5일)도 마찬가지다. 읽다보면 여러 의구심이 떠오른다. 일반국민들은 몰랐던 그들의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은 정말 이 정도로 ‘후안무치’했을까.

“떡이니까 맛있게 드세요.”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의 운전기사는 김 전 의원이 승용차 뒷좌석에서 창문을 열고 검은 비닐봉투에 싼 돈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건넬 때 그걸 ‘떡’이라고 표현했다고 증언했다. 판결문에 적시된 내용이다. 비례대표 공천 대가다. 김백준 전 비서관은 “김소남이 매우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안면몰수하고 피고인(MB)이나 김윤옥(여사)에게 접근했고, 나를 ‘오빠’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에서 입을 연 김 전 의원은 “선거기간 동안 유세장을 다 따라다니며 앞줄에서 박수치고 했더니 어느 날 유세장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와 악수하면서 ‘김 회장, 이렇게 유세장을 따라다니면 내 선거운동은 언제 하노?’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진술했다. MB는 그에게 ‘사랑해요, ○○(딸 이름) 엄마’라는 친필사인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국회의원 비례 7번을 받는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재완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처음 듣는 인물이라 좀 의아하기는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께서 직접 확인하고 결정하신 인물이라 다른 생각은 못했다”고 답했다.

재판 전 미국에서 다스 소송이 진행될 때 MB는 소송을 대리했던 미국 김석한 변호사에게 “잔금을 가져오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는 것이 보도됐다. 자기가 낸 돈도 아니고 삼성이 대납한 것인데 왜 적반하장의 반응을 보였는지 의아해 할 일이다. 판결문에는 그 의문을 풀 단초도 적혀 있다. “김석한은 저에게 ‘이학수가 해외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캐시를 지급하고 싶은데 대통령 재임 중에 바로 국내에서 지급할 경우 위험이 있으니 안전하게 대통령 퇴임시까지 미국에서 잘 쌓아두고 관리·운영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한 사실이 있다.” 김백준 전 비서관의 말이다. 삼성은 내부적으로 이것을 ‘project M’이라고 불렀다. 풀이하자면 MB 케어 프로젝트다. 2007년 대통령선거 전부터 가동한 프로젝트였다. 김석한 변호사에게 매달 꼬박꼬박 12만5000달러씩 돈을 부치는 일은 2011년 3월 29일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었다. 전후 진행된 다스 관련 소송을 보면 그해 2월 1일, 스위스은행은 김경준씨의 알렉산드리아 계좌 압류를 해제하고 140억원을 강제이체한다. 이틀 뒤에 그 돈은 외환은행 계좌로 이체된다. 2월 24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입국하고, 다음날 가택연금에서 풀린 에리카 김이 한국으로 들어와 검찰 조사를 받는다. 다스 돈을 돌려받으니 프로젝트는 종료되었고, MB는 삼성으로부터 받기로 약정돼 있는 ‘내 돈’ 잔금을 토해내라고 김 변호사에게 종용한 것이다.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이 2008년 3월이나 4월 청와대에 들어간 기록은 없다. 하지만 김희중 전 부속실장 등의 목격담은 남아있다. “최순실처럼 보안손님으로 청와대에 들어갔을 것”으로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대부분의 범죄사실에 대해 MB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으며, 측근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죗값이 두려워 MB에게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에이, 후보가 몰랐다면 누가 돈을 냅니까. 후보 몰래 측근들에게 돈 줄 사람이 누가 있다고.” 현재는 MB 곁을 떠난, 2007년 선거 당시 안국포럼 핵심인사의 말이다. 이 인사에게 ‘MB의 생각 또는 속내’에 대해 물었다. 정말 MB는 자신이 벌인 일이 불법이 아니며, 현재의 재판은 정치재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박근혜도 그렇지 않습니까.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지만 역사상 모든 독재자, 예컨대 히틀러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일정 정도 자기 확신 내지는 자기 최면이 없다면 그 정도로 사건을 벌이겠습니까.” 불법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MB를 보세요. 현대건설에만 30~40년 있었는데 엄청난 불법을 했을 거 아닙니까. 불법인지 과연 몰랐을까요. 돈으로 막고, 인맥으로 막고, 힘으로 막으면 얼마든지 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정치권으로 와서 권력도 가졌습니다. 아마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죠. 그 생각도 거의 틀린 생각은 아니었을 겁니다. 탄핵이 아니었다면 MB 문제가 세상에 나왔을까요. 탄핵이 역사상으로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그분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 계산을 한 거죠.”

MB가 유별난 걸까. 아니면 일반국민들은 모르는 ‘그쪽’에선 만연한 문제? “정치권은 원래 이래요. 우리 자유한국당만 하더라도 ‘저 ○○(비속어) 돈 엄청나게 해먹었다’고 소문 도는 사람 중에 걸린 사람 얼마나 있어요. 아시다시피 ○○○(전 유력 당직자) 같은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안 드러나잖아. 그러다가 누가 100만원 받았는데 써버렸다, 그러면 구속되고.” 이 인사에 따르면 통상 ‘사고’가 벌어지는 건 세 가지 경우 중 하나다. 첫째, 이권 약속이 틀어지는 경우, 둘째 돈 준 쪽에서 술 마시다가 과장해 떠벌려 새나가는 경우, 셋째 다른 건으로 검찰이 돈 준 사람 수첩을 뒤졌는데 이름이 나와 별건수사로 진행될 때.

김경준 돈 뺏자 종료된 ‘삼성 M 프로젝트’

그는 이번 MB재판에서 반면교사로 국민이 얻어야 할 교훈은 ‘미디어 적폐’라고 덧붙였다. “왜 MB를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 있었잖아요. <영웅시대> 말고 그 전에 <야망의 세월>이라고 유인촌 전 장관이 MB 역할을 한. 그 드라마에서 MB를 기업을 일으킨 샐러리맨으로,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 묘사했잖습니까. 그걸 국민들이 믿은 거죠. 그거 하나로 국회의원 되고 서울시장 되고 대통령으로 이어졌으니….”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온 것은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추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숨겨온 차명재산의 전모를 밝혀내고 범죄로 축적한 재산임이 확인되면 환수도 추진해야 한다.” MB 1심 선고에 대한 참여연대 논평이다. 하지만 간단치 않아 보인다. “다스가 MB 것으로 밝혀졌다고 바로 MB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의 말이다. “실제는 이명박 소유인데 모두 다 차명이었잖아요. 법대로 하면 증여된 것을 다시 가져오게 된다면 주식 명의인들의 이름으로 증여세를 내야 합니다. 지금 형사사건 1심에서 일단 이명박 소유라는 것이 밝혀진 것인데, 민사나 세법 상으로 보면 조금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추징금은 집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벌금은 자기가 내면 다행이지만 안 내면 노역형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그는 “횡령이 공적인 범죄행위에 해당해 추징금으로 해도 될 듯한데 횡령금은 추징금에 안 넣었다”며 “그런 경우 다스의 주주들이 횡령당한 것을 민사로 진행해야 하는데, 다수 주주가 현재는 이명박 측으로 되어 있어 안 움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런 경우 19.9%의 다스 주식을 가지고 있는 기획재정부·자산관리공사가 이론적으로 나설 수는 있지만 역시 안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가 주도했던 다스 주식 3% 매입운동인 ‘플랜다스의 계’는 운동방향을 두고 내홍을 거친 후 현재 35억원 정도가 다시 모인 수준에서 멈춰 있다. “재산 환수 여론은 있는데 추진할 동력은 없는 상태”(안원구)라는 진단이다. 자산관리공사 경매사이트 온비드에 올라와 있는 기재부 다스 주식은 현재 매각 제한 상태다. 자산관리공사 측은 <주간경향>의 질의에 대한 회신공문을 통해 “사실상 또는 소송상 분쟁이 진행 중이거나 예상되는 사유로 매각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재산을 규정한 국유재산법 48조와 시행령 52조에 따라 지난 4월 26일 열린 기획재정부 증권분과위원회 의결에 따라 매각이 제한되었다”고 밝혔다.

1심 판결문을 보면 결과가 의아한 대목이 없진 않다. 최등규 대보건설 회장 5억, 손병문 ABC상사 회장 2억, 이정섭 능인선원 3억 대선자금 뇌물 제공은 “대가성 등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를 받았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부분은 법관에게 유죄의 예단이 생기게 하는 다른 범죄사실을 나열해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는 MB 측 의견을 받아들여 기각되었다.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는 것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 재판 등 최근 국정농단 피고 측에서 단골로 이용하는 논리다. “그걸로 판사에게 무슨 편견을 심어준다는 건지 황당하다.”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대통령기록물 유출혐의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적용된 적이 있다. 전 소장은 “그 당시 논란이 되었던 것은 사본 유출이었는데 이번 경우는 아예 원본을 빼돌린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횡령비리와 더불어 중하게 처벌해야 할 사안인데 그냥 넘어갔다”고 비판했다.

MB “절취문서 증거능력 없다” 법원 기각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최초 제보자들은 어떤 생각일까. 다스 경리팀장을 역임한 채동영씨는 선고 결과와 관련,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다스와 청와대 사이에 오간 협의문서 등 ‘결정적 자료’를 폭로한 전 다스 총무팀 직원이자 이상은 회장 운전기사 김종백씨는 “사건은 다스와 거래관계가 끊어진 것에 불만을 품은 고철업체 대표 동생 김동혁씨가 나를 찾아온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녹취를 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번 1심 판결문을 보면 여러 군데에서 김종백씨의 이름이 언급된다. 팩스로 보내고 폐기하라는 문서를 보관했다가 언론에 제공했다. MB 측은 그 문서들은 ‘절취’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파쇄되었다면 증거인멸 행위가 될 수도 있었다”며 MB 측의 주장을 기각했다. 김씨는 <주간경향>에 MB 1심 재판 하루 전에 열린 이동형 현 다스 부사장의 배임수재 재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와 통화를 마친 후 그는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얼마나 급하면 뇌물혐의로 재판을 받는 사람을 부사장으로 올렸을까.”

삼성그룹 이학수 전 부회장과 다르게 91차례 청와대에 드나든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이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MB의 처남이자 재산관리인인 김재정씨가 쓰러진 후인 2009년 1월, 청계재단 5층에 있던 김재정씨의 비밀금고 앞에 MB의 가신그룹 이영배 전 금강 사장, 이병모·정수명씨가 모였다. 자리에는 김인종 당시 청와대 경호처장이 보낸 김재정의 경호인도 입회했다. 이날 금고에서 나온 돈과 예금증서 등은 정리되었지만, 상속인인 김재정의 부인 권영미는 “그런 금고의 존재도 몰랐고, 내용물도 받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비자금 관리로 감옥까지 갔다 온 마당에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느냐.” 10월 10일, <주간경향>과 통화한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의 말이다. 청계재단은 여전히 ‘영포빌딩 503호’에 있다. “풀려난 이씨는 여전히 재단 사무국장을 맡고 있으며 서초동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재단 관계자는 밝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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