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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불평등 해소 방법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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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 정책과 소득이 감소되지 않는 대책 병행해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아이를 안은 어머니가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주일은 168시간이다. 이 가운데 노동시간이 52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강제한 법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남은 116시간 중 자신만을 위해 여가에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5년 단위로 작성하는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통계를 보면 2014년 기준 수면·식사 등 개인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시간과 직장 등으로 이동하는 시간만 주 89시간 정도다. 남은 27시간 안에서 가족을 돌보고 집안일을 처리한 뒤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다. 주말까지 포함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빡빡한 수준이다.

소득을 위해 그동안 장시간 노동 감내
이 생활시간 통계가 10세 이상 국민 모두의 생활시간 평균이기 때문에 연령이나 계층에 따라 차이는 커진다. 보통 시간 빈곤을 더욱 심각하게 겪는 집단은 가사와 돌봄노동에 쏟는 시간이 많은 여성, 그 가운데서도 어린 자녀가 있거나 가구소득이 낮은 경우였다. 특히 홀로 자녀를 돌봐야 하는 한부모가구가 소득은 물론 시간까지도 빈곤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성년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 6700곳을 조사해 분석한 서지원 방송통신대 교수(생활과학)의 연구를 보면 이들 가정의 남성 중 20.7%, 여성 중 29.0%가 시간 빈곤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 불평등이 시간 빈곤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는 점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현 정부의 대책이 불평등 해소에 도움을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보다 시간 빈곤이 심각한 저소득층에서는 그동안 소득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시간 단축으로 늘어나는 여가산업 시장의 노동자들에게서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여가에 쏟는 소비가 늘어나더라도 이 소비액수가 여가를 즐기는 노동자의 임금을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를 고려하면 여가산업 노동자의 임금은 일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동우 강남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자신의 여가를 소비하는 대신 타인의 여가 소비를 위한 노동자가 되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여가를 통해 자신의 노동을 재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노동시간을 줄이는 노력에 더해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막는 노력까지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저임금 인상을 넘어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소득 대체방안이 제시되는 것도 시간 빈곤과 소득 빈곤이 얽힌 복잡한 문제 때문이다. 한 교수는 “노동시간 감소는 필연적으로 임금 감소로 이어지지만 늘어난 여가를 통해 복원되는 생산력이 임금상실분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실질적 자유를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들로는 충분한 수준의 기본소득 지급과 함께 재화를 공유하는 범위를 다양하게 넓히는 등의 정책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똑같이 주어지지만 개인이 자신을 위해 그 시간을 온전히 쓸 수 있으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에서 나온 해법이 기본소득인 셈이다. 일정한 소득이 더해지면 그만큼 자신의 시간을 덜 팔아도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돈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 대신 실제 시간을 모두에게 재분배하는 구상도 가능하다. 자녀 보육을 공공영역에서 일정 부분 대신해 시간 빈곤에 가장 취약한 저소득·아동양육 계층의 시간을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노혜진 KC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우리 사회도 소득의 재분배만큼이나 시간의 재분배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때가 됐다”며 “자녀 보육만이 아니라 늙고 병든 가족을 돌보는 등의 돌봄노동 시간을 공공이 재분배하면 또 다른 시간 빈곤에 시달리는 실직자나 청년층의 일자리 문제까지 함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득의 재분배와 시간의 재분배 필요
한편으로 이미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식 및 여가시간을 늘리는 제도가 만들어져 있어도 현실에서 취지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하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년간 80% 이상 출근하면 15일의 유급휴가를 쓸 수 있게 규정하고 있다. 3년 이상 일할 경우 2년마다 하루씩 유급휴가가 늘어나 최대 25일까지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연차를 모두 쓰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 자료를 보면 30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한 전체 사업장에서 유급휴가 발생일수는 연간 평균 14.7일이지만 실제 사용일수는 8.5일로 57.8%에 그쳤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서비스 직종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전체 평균 연차 소진율은 64.7%였다. 보장된 휴가를 다 쓰지 못하는 만큼 부족한 시간이 시간 빈곤 내역에 포함되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연구위원은 “조사대상 사업장의 대다수가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었음에도 연차휴가 사용이 매우 미흡했다”며 “특히 무노조 사업장인 유통·서비스 판매직에선 연차휴가 보유 및 사용일이 0%로 조사된 것으로 볼 때 사실상 연차휴가가 대규모 유노조 사업장에서나 가능할 뿐 중소영세·무노조 사업장에선 거의 무의미한 휴가제도인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의 시간대에 걸쳐 이뤄지는 1일 8시간 노동에서 점심시간 1시간이 무급 휴게시간을 활용해 이뤄지는 현실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업무에 필요한 식사시간 1시간을 유급으로 보장하는 방식의 변화로 주당 최소 5시간만큼의 시간 빈곤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직장에서 발생하는 시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은 결국 ‘시간의 정치’를 통해 노동시간이 어떤 식으로 구성돼야 하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고전적이면서도 쉽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직장인의 휴게시간과 휴가 사용 개선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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