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에 폭행까지, 휴게소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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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삼립이 운영하는 전남 순천시 황전면 순천~완주고속도로에 위치한 황전휴게소. /제보자 제공

SPC삼립이 운영하는 전남 순천시 황전면 순천~완주고속도로에 위치한 황전휴게소. /제보자 제공

김경희씨(58·가명)는 2015년부터 순천-완주 고속도로 황전휴게소(전남 순천 소재)에서 청소일을 하다 현재 일을 쉬고 있는 상태다. 작업장에서 각종 욕설과 성희롱을 당하고, 지난 8월 휴게소 노점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해 응급실에 실려갔다. 지금도 김씨는 폭행의 후유증으로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다. 정신과 진료도 받고 있다. 김씨는 “피해사실보다 방관하는 회사가 더 나쁘다”고 호소하고 있다.

황전휴게소는 SPC삼립이 운영하는 휴게소다. 김씨는 3년 전 이 휴게소에서 청소일을 시작했다. 생활에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들에게 손 벌리기 싫었고 하루라도 젊을 때 일하자는 마음이 컸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휴게소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김씨는 파견업체 소속이었지만 지난해 9월 SPC삼립 소속이 됐다.

‘XX년’ ‘X구녕’ 동료들의 폭언과 음담패설
김씨가 일하는 환경팀은 총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여성은 김씨 한 명이다. 같은 팀 동료 A씨는 수시로 김씨에게 욕설을 했다.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사용해 욕을 하는 A씨에게 김씨가 “그만하라”고 반발하자 A씨는 “내가 너 죽이고 감방 간다”고 했다. 사다리를 들어 김씨에게 넘어뜨릴 것처럼 위협하기도 했다.

B씨는 음담패설을 일삼았다. 올해 3월 휴게장소인 창고에서 “돈 만원만 주면 노래방 도우미 가슴과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비속어)를 다 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수치심을 느낀 김씨가 “그만하라”고 했지만 B씨는 계속해서 음담패설을 이어갔다. 이후에도 제주도 성 박물관에 갔던 경험을 언급하며 전시작품을 묘사했다.

환경팀 반장인 C씨도 가해자다. C씨는 지난 8월 김씨에게 “상행(방향 휴게소)으로 가서 밑바닥부터 고생하라”고 지시한 뒤, 김씨가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자 곧바로 XX년, X 같은 년 등 욕설을 퍼부었다. ‘반장’이라는 직책은 업무 편의를 위해 있는 직급일 뿐 각 팀원에 대한 업무지시 권한은 없다. C씨는 김씨의 문제제기로 열린 면담 자리에서도 김씨가 “말 조심하라”고 하자 ‘씨X’, ‘아XX’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김씨는 문제를 제기하면 회사가 제대로 처리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A씨는 징계도 받지 않고 조용히 회사를 관뒀다. B씨 역시 ‘자진 퇴사’ 처리됐다. B씨가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김씨와 B씨의 분리조치는 없었다. 관리자인 휴게소장은 C씨의 폭언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C씨는 맞은편 휴게소로 근무 장소를 옮겼을 뿐이다.

견디다 못한 김씨는 본사에 문제제기를 했다. 그러나 본사 측은 그동안 벌어진 성희롱 및 폭언은 물론이고 휴게소 안에서 벌어진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폭행은 지난 8월 13일 발생한 것으로, 휴게소 주차장에서 파스를 판매하는 D씨가 “파스가 없어진 것 같다”며 조퇴하던 김씨를 불러서 때린 사건이다. D씨는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김씨는 인근 종합병원으로 실려갔다.

병원에서 김씨는 ▲외력으로 인한 하악관절 손상 ▲두개 내 상처가 없는 뇌진탕 등의 진단을 받고 3주간 입원했다. 정신과에서는 급성스트레스 반응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았다. 정신과에서는 6개월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김씨는 일터에서 업무시간에 벌어진 폭행이며 또 회사 관계자 동행하에 병원으로 후송된 뒤 입원했다는 점에서 회사의 적절한 조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본사 인사팀은 김씨가 입원한 병원으로 찾아와 ▲폭행 이후 출근하지 않고 있으므로 무단결근 처리할 것이며 ▲제3자 폭행이기 때문에 회사는 책임이 없고 ▲C씨의 폭언과 성희롱은 아직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김씨는 이 과정에서 본사 인사팀이 자신의 아들에게 ‘일종의 협박’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근무 중 맞았는데 왜 회사는…”
4일 <주간경향>이 입수한 녹음파일에 따르면 아들이 회사의 책임을 묻자 인사팀장은 “○○○씨, ○○ 다니죠? 제가 인사팀에 전화 한 번 해보려고요”라고 말했다. 아들이 “저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가요?”라고 묻자 인사팀장은 “(해당 회사 인사팀에) 여쭤보려고요”라고 답했다. 김씨 아들은 “마치 회사에 연락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처럼 들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본사 인사팀장은 “제 3자인 김씨의 아들이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을 요구해서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다”며 “협박 의도는커녕 면담 자리에서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SPC의 이 같은 대응은 남녀고용평등법과 산업안전보건법에 위반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고은선 노무사는 “동료에 의한 폭행이든 제3자 폭행이든 일터에서 업무시간에 일어난 폭행이면 산업재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특히 사업주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넘기려 했다면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경석 노무사도 “노동자가 사업장 내에서 폭행을 당했다면 무단결근을 통보하는 것보다는 휴직을 신청하라고 권하는 게 상식적인 태도다”라고 말했다.

이경석 노무사는 성희롱 부분과 관련해 “피해자가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하지 않고 가해자·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은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5월 29일부터 시행된 개정법에 따르면 사업자는 성희롱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없이 조사를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피해자에 대한 유급휴가 등을 지급해야 한다.

일련의 상황에 대해 SPC 관계자는 “과거 발생한 성희롱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최근 발생한 폭언과 성희롱 발언은 김씨가 회사에 복귀하는 대로 C씨와 김씨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단호하게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SPC삼립 취업규칙에 따르면 사건과 관련한 당사자 모두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어야 한다.

이 관계자는 다만 노점상에 의한 폭행사건에 대해서는 “당사자는 업무상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폭행 피해자와 가해자의 말이 엇갈리는 만큼 회사는 업무상 인과관계가 아닌 개인 간의 폭행으로 보고 있다”며 “업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산업재해를 신청하면 된다. 산재 신청 안내까지 했다”고 해명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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