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위, 출범 1년 만에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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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권한 없는 태생적 한계로 위상과 역할 기대치 못 미쳐

2017년 10월 11일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4차위 제공

2017년 10월 11일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4차위 제공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확보를 목표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위원회(4차위)’가 출범 1년을 맞았다. 1년 전 4차위는 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 겸 1차 회의를 열고 화려하게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축사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참석한 민간 위원들은 “대통령과 함께 허심탄회하게 회의를 했다. 예전과는 다르다”며 기대감을 보였다.

4차위는 1년 동안 7차례의 회의, 4차례의 규제·제도 혁신 해커톤(끝장 토론)을 열었다. 위원회 구성원 대부분이 생업이 따로 있는 민간 전문가들임에도 월 1회가량 꾸준히 위원회 활동이 이뤄진 셈이다. 하지만 위원회의 위상과 역할이 출범 당시의 기대치에 부응했는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4차위 하면 떠오를 만한 대표적인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4차위가 도입해 새로운 토론장으로 주목받았던 해커톤은 공유경제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4차위에 배정된 내년 예산도 올해보다 줄어드는 등 4차위의 위상도 사뭇 달라졌다.

공유경제 앞에서 무너진 해커톤
해커톤은 ‘해킹(hacking)’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로, 쉽게 풀이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벌이는 ‘끝장 토론’이다. 본래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대규모 개발자회의를 통칭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이 합리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적 방법으로 위원회에 해커톤을 제안했고, 이는 곧 4차위의 상징이 됐다.

4차위의 해커톤에는 개발자 대신 정부 관계자와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참여한다. 이들이 모두 모여 1박2일간 숙식을 함께하며 끊임없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해커톤이 진행된다. 그간 진행된 해커톤에서는 데이터 규제완화, 드론산업 활성화 등 여러 분야에서 일정 부분 참석자들 간 합의나 관련 법령 개정 결정 등 성과를 내왔다. 4차위의 민간 위원들도 해커톤을 대체로 높게 평가한다. 한 민간 위원은 “4차 산업혁명은 결국 기업과 민간이 실행하는 것이므로 해커톤 방식의 토론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앞으로 위원회에서 해커톤이 더 활성화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해커톤은 9월 6일에 열린 4차 행사에서 한계를 여실히 나타냈다. 이날 해커톤의 주제는 ‘공유경제’였다. 공유경제는 민간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기재부도 혁신성장의 한 축으로 꼽는 경제모델이다. ‘에어비앤비’ 등으로 대표되는 공유숙박 문제와 카풀 서비스로 대표되는 공유교통 문제가 4차 해커톤의 주요 의제였다.

두 의제 모두 국내에서는 합법과 불법 논란 속에서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분야다. 그만큼 이해관계자 간 의견도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다. 4차위의 해커톤 역시 결론적으로는 아무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 공유교통 문제의 경우 이해관계자 당사자인 택시업계가 아예 불참했다. 4차위가 지난해 말부터 해커톤에 택시업계를 참석시키려고 무척 애를 썼음에도 택시업계는 “정부가 사실상 카풀 등을 허용할 생각으로 우릴 부르고 있다”며 반발해 왔다. 택시업계가 빠진 공유교통 해커톤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한다.

공유숙박 문제도 민·관 합동 조사단을 만들어 추가로 논의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성과물을 내지 못했다. 이 문제 역시 기존 숙박업계의 반발이 큰 분야다. 해커톤에는 숙박업계도 참석했지만 공유숙박을 당장 허용하기보다는 불법숙박 영업문제 등 현 부조리부터 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해커톤의 결론도 부정 숙박업체 단속 등 당초 ‘규제·제도 혁신’이라는 해커톤의 취지와 맞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4차 행사에서 드러난 해커톤의 한계는 4차위의 ‘태생적 한계’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4차위는 정책을 최종 결정하고 집행하는 기구가 아니다. 정책을 심의해 조정해도 이를 강제할 권한 역시 없다. 이를 두고 4차위의 또 다른 민간 위원은 “4차위에서 논의를 해도 결국은 정부 부처가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4차위 내부에서는 4차위를 가리켜 “민간 자문단”이라고 부른 지 오래다. 여기에 5년이라는 시한부 활동기간, 1년으로 정해진 민간 위원들의 짧은 임기 문제 등을 감안하면 4차위의 향후 위상과 역할이 밝다고만은 보기 어렵다. 장병규 4차위원장은 9월 28일 열린 8차 회의에서 “새로운 산업의 불을 붙이면 좋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었다”며 “국민에게 뚜렷이 보이는 산업에 불을 붙이는 건 미흡했던 것 같다”고 지난 1년을 평가했다.

‘운영비 절감’ 예산도 줄어
4차위의 위상 저하 문제는 단적으로 예산 편성만 봐도 나타난다. 4차위는 예산 집행기관이 아닌 탓에 위원회 운영을 위한 운영비만 예산으로 배정받는다. 올해 4차위의 예산은 47억원이다. 임대료와 각종 인건비, 연구용역비, 홍보비 등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적지않은 예산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창조경제와 비교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창조경제의 핵심사업 중 하나였던 ‘창조경제타운’ 사업을 돌아보자. 창조경제타운은 “국민의 아이디어를 사업화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홈페이지였다. 아이디어를 올리면 전문 멘토들이 괜찮은 아이디어를 선별한 뒤 민·관 합동으로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지원하는 방식이었다. 창조경제타운은 대통령 직속기구도 아니었고,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운영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2013년 첫해 홈페이지 구축 등에만 19억원을 배정했다. 이듬해 홈페이지 운영비로 배정된 예산은 39억원이었다. 4차위 운영비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4차위의 민간 위원은 <주간경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4차위가 무엇을 하는지 아직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며 “다른 건 몰라도 홍보예산을 좀 늘렸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올해 4차위 운영비 43억원 중 홍보예산은 5억원이다. 내부적으로도 예산 확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4차위의 2019년도 예산은 늘기는커녕 줄었다. 4차위 관계자는 “운영비를 절감해야 한다는 정부 목표에 따라 내년도 예산은 43억~44억원 수준으로 올해보다 줄었다”며 “홍보예산은 5억원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산 문제는 4차위의 내실 있는 활동 여부와도 직결된다. 4차위는 24명의 위원 중 18명이 민간 위원이다. 민간 위원들이 4차위 활동으로 받는 ‘보수’는 회의 참석 때마다 주어지는 15만원뿐이다. 물론 민간 위원들이 이 회의수당으로 생계를 꾸리는 건 아니고, 수당을 바라고 4차위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민간위원들은 부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한꺼번에 많은 정책을 조정하고 심의하는 데 적잖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민간위원은 “생계를 위한 업무를 하면서 4차위 활동을 하다보니 업무의 연속성도 떨어지고 의욕도 저하된다”며 “위원 중 일부는 상근직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위원들을 일부라도 상근직으로 하려면 예산이 더 필요하다. 반면 4차위는 상근직 위원 위촉은 고려해본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4차위 관계자는 “현재 위원들에 대한 처우 등의 문제로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며 “상근직 위원 문제도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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