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부탄, 인도·중국 사이에서 고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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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을 중심으로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인도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2008년 치러진 부탄의 총선 투표에서 주민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2008년 치러진 부탄의 총선 투표에서 주민들이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히말라야 산맥에 자리한 80만 인구의 소국. ‘행복의 나라’ 부탄이 오는 18일(현지시간) 사상 세 번째 총선의 결선투표를 치른다. 이 가운데 부탄과 이웃한 두 강대국 인도와 중국이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수십 년 넘게 부탄 내정에 깊이 관여해온 인도와 부탄 내 영향력 강화를 노리는 중국이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도입 10년을 맞은 지금, 경제활성화 등 과제에 직면하면서 부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인도는 지난 수십 년간 부탄의 ‘빅 브라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1949년 인도와 부탄이 우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부탄은 사실상 인도의 보호국이 됐다. 특히 안보분야에서 전적으로 인도에 기대 왔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강제 병합하는 것을 목격한 뒤로는 인도에 더 밀착했다. 현재 인도군 약 400명이 부탄에 주둔하며 부탄 왕립군을 훈련시키고 국경을 지키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밀접하다. 부탄의 최대 무역 상대국은 인도다. 부탄 전체 수출의 약 80%를 인도가 차지한다. 대부분 수력발전을 통해 생산한 전력을 인도에 팔아 번 돈이다. 수입 중 인도가 차지하는 비율도 비슷한 수준이다. 인도는 부탄의 최대 대외원조국이기도 하다. 지난 5년간 부탄의 경제개발 명목으로 총 8억 달러(약 8960억원)를 지원했다.

‘빅 브라더’ 인도와 거리 좁혀오는 중국
인도는 2007년 양국 간 우호조약이 개정되기 전까지 부탄의 외교관계도 좌지우지했다. 개정안에는 부탄이 외교활동시 인도의 조언을 받는다는 조항이 삭제됐다.

부탄 파로 시내의 요젤링학교 학생들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부탄 파로 시내의 요젤링학교 학생들이 쉬는시간을 이용해 운동장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인도의 간섭 없이 자유로운 외교활동이 가능해지자 부탄은 다른 국가들과 관계맺기에 나섰다. 중국도 그 중 하나였다. 지그메 틴레이 초대 민선 총리는 2012년부터 중국과 여러 차례 회담을 열고 국경문제를 논의하는 등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중국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역점사업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에 부탄의 참여를 촉구하는 등 구애를 이어가고 있다. 관광업 의존도가 높은 부탄에 중국인 관광객이 안기는 수입도 상당하다.

홍콩의 아시아 전문매체 <아시아타임스>는 최근 양국관계를 전하며 “지금까지 (중국과) 접촉은 주로 국경문제에 대한 양자회담으로 이뤄졌지만, 완전한 외교관계가 성립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부탄은 중국이 아직 공식 수교를 맺지 않은 유일한 남아시아 국가다.

오랜 세월 부탄 내 영향력을 유지해 온 인도에 부탄과 중국의 관계 변화는 눈엣가시가 됐다.

인도는 2013년 총선을 앞두고 돌연 부탄에 대한 에너지 지원금을 삭감했다. 결국 철회하기는 했지만 이를 두고 “중국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신호”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조금씩 고조돼온 양국 간 긴장은 지난해 6~8월 최고조에 달했다. 인도와 중국, 부탄 3국의 국경이 만나는 히말라야 산악지대 도클람에서 중국 인민해방군과 인도군 수천 명이 무장 대치한 것이다. 중국군이 이 지역에 도로 건설을 시작하자 중국 영토가 아니라며 인도가 항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 73일 후 양국군이 철수에 합의하며 사태는 일단락됐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는 벗어났지만 부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아시아 내 패권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도클람 사태 당시 국제적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도 별다른 논평 없이 침묵한 것도 결국 이런 배경 때문이다.

여론은 달라지고 있다. 인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경제 노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최근 이런 움직임에 기름을 붓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 7월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부탄을 공식 방문해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국왕과 톱게 총리를 만났다. 도클람 사태 이후 첫 고위급 인사 방문이었다. 회담 종료 후 중국은 성명을 내고 “중국은 부탄의 ‘독립적 외교정책’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결국 충돌한 중국·인도, 부탄의 민심은
인도는 발끈했다. 부탄 외교에 개입해 온 인도에 대한 겨냥으로 받아들이고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자 부탄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더 부타니즈>의 편집장 텐징 람상은 당시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인도 언론과 평론가, 싱크탱크, 정치인에게 조언하고 싶다. 당신들의 과도한 피해망상과 어림짐작 때문에 부탄은 짜증나고 때로 숨이 막힌다. 당신들이 우리를 가장 친한 친구라 생각한다면 최소한 우리를 신뢰하고 여유를 달라.’

젊은층을 중심으로는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커지고 있다. 인도보다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수년째 8%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108%에 이르고 청년실업률은 10%에 가깝다.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로매트>는 “결선투표에서 어느 당이 이기든 인도·중국과의 외교는 부탄 차기 정부가 다뤄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9월 15일 총선 1차 투표가 실시됐다. 개표 결과 야당 부탄평화번영당(DPT)과 브루그니암럽초그파(DNT)가 득표율 1, 2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체링 톱게 총리가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당(PDP)은 3위를 기록, 정권교체가 확정됐다. 부탄 총선은 결선투표제로 치러진다. 1차 투표에서 결선 진출 정당 2개를 추리고 결선에서 하원의원 47명을 뽑는다.

의외의 결과였다. 선거 전 전문가들은 경제성장을 이끈 집권 PDP가 무난히 경선을 통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톱게 총리는 친인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인도 정부는 집권 PDP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선택이 중국으로의 노선 변경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 온라인매체 <더프린트>는 “1차 투표 캠페인 당시 ‘인도’나 ‘중국’과 같은 단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면서도 “중국과 인도의 73일간의 대치(도클람 사태)는 부탄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민지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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