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의 특별한 힘, ‘위닝 컬처’ 팀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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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올 가을 팀 창단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린다. 그 ‘위닝 컬처’를 만든 것은 기본기와 자율경쟁, 보스 ‘비개입’의 조화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23일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기업위원회에 참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9월 23일 국회에서 산업통상자원중소기업벤처기업위원회에 참석해 위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추석 다음날인 지난 9월 25일. 프로야구 두산은 잠실에서 넥센과 경기를 치렀다. 방망이의 화력 대결에서는 넥센도 만만치 않았다. 넥센은 몰아치면서 빅이닝을 만드는 데 장기가 있는 팀이었다. 그러나 이날 경기 양상은 달랐다. 두산 선발 이용찬은 5이닝 2실점으로 버텨냈고, 경기 후반 두산의 타격이 폭발하면서 상대 넥센을 ‘그로기’로 몰고 갔다.

두산 1루수 오재일은 올 시즌 전반기 내내 극도로 부진했다. 전반기 타율은 겨우 2할1푼8리였다. 1루수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잦았다. 기대를 모았던 외국인 타자도 제 몫을 하지 못했다.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던 파레디스는 타율 1할3푼8리라는 초라한 기록을 남겨두고 방출됐다. 팀 타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2명이 부진하고도 두산의 성적은 떨어질 줄 몰랐다. 빈 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를 채우는 선수들이 나타났다. 1루 자리는 최주환, 오재원, 류지혁 등 다른 내야수들이 돌아가며 맡았다. 타선의 힘은 떨어지지 않았다.

2004년 이후 15번이나 가을야구 진출
전반기 부진했던 오재일은 후반기 원래의 오재일로 돌아왔다. 9월 이후 치른 24경기에서 타율 3할6푼9리, 홈런 9개를 때렸다. 오재일은 25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5-2로 앞선 7회말 쐐기 만루홈런을 날렸다. 결정적 한 방이었다. 두산은 이후 넥센을 더 두들겼고 결국 13-2로 이겼다.

조금 특별한 승리였다. 두산은 이날 승리로 86승46패가 됐고 남은 12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남은 경기를 모두 패하더라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두산의 정규시즌 우승은 단일리그제 기준 1995년과 2016년에 이어 이번이 통산 세 번째다. 앞서 두산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과 1995년, 2001년, 2015년, 2016년까지 5차례 우승했다.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두산 김태형 감독은 “감독은 한 게 없다”며 “선수들이 너무 수고가 많았다”고 칭찬했다. 김 감독은 장원준, 유희관 등이 흔들렸던 선발진을 떠올리며 “완전한 전력으로 시즌에 들어가지 못했다”면서도 “상황마다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말했다.

두산은 2000년대 들어 가장 안정적인 전력을 유지하는 팀이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15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2006년, 2011년, 2014년 등 겨우 세 번밖에 되지 않는다. 15년 중 12번이나 가을야구에 진출했고 이 중 절반이 넘는 7번이나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두산이 특별한 이유는 뉴욕 양키스처럼 아주 비싼 선수를 사 모으는 팀이 아니라는 점이다. 두산은 같은 기간 외부 자유계약선수(FA)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롯데로 떠났다가 돌아온 홍성흔을 빼면 2015년 영입한 장원준이 유일하다. 되레 팀을 떠난 FA들이 더 많다. 그럼에도 단단한 전력이 유지됐다. 불펜 투수들은 2~3년을 주기로 주축 선수들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강한 마운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화수분 야구’라 불린다. 빈 자리가 생기면 새 얼굴의 선수들이 그 자리를 빈틈없이 메웠다. 주축 선수들이 FA로 떠나도 새로운 젊은 선수가 주전으로 성장했다. 다른 팀도 좋은 선수를 뽑고, 성장을 위해 큰 공을 들이지만 제대로 성장해 1군 주전 자리를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두산을 강팀으로 만드는 것은 다른 팀과 조금 다른 ‘팀 분위기’다. 이른바 ‘위닝 컬처’라 불리는 특별한 무엇이다.

두산이라는 야구팀의 강점은 폭발적인 타선, 강력한 선발진, 확실한 불펜진 등 겉보기의 화려함이 아니라 이들을 묵묵히 받치는 ‘수비’에 있다. 두산은 좌중간을 가르는 깨끗한 안타, 힘찬 스윙, 아름다운 무지개를 그리면서 담장을 넘어가는 화려한 플레이 대신 묵묵한 기본기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아무리 뛰어난 타격능력을 갖췄더라도 수비실력이 쌓이지 않으면 1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두산 외야수 박건우는 리그 최고 수준의 선수로 평가받지만 1군에 올라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단 동기인 정수빈이 외야 수비능력을 인정받은 것과 달리 박건우는 타격실력에 비해 외야 수비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군에서 오랜 경험을 통해 외야 수비능력을 안정화시켰고, 1군에서 폭발적인 타격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중이다.

김태형 감독의 ‘단순 강렬한 메시지’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능력보다 팀을 위한 능력에 가치를 두는 분위기를 만든다. 안타와 홈런은 나를 빛나게 하지만 수비는 팀을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팀을 강조하는 문화 속에 나를 돋보이게 하는 노력도 존재한다. ‘12시의 야구’라 불리는 개인 간 경쟁의 문화다. 야구는 대개 오후 6시30분에 시작해서 10시 언저리에 끝난다. 선수들은 오후 1~2시쯤 경기장에 출근한다. 경기가 끝나면 정리를 하고 퇴근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두산은 조금 다르다. 어떤 선수들은 12시쯤 조기 출근하고, 또 많은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자율학습’을 한다. 12시에 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가 끝나고 불이 꺼져도 여기저기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날의 경기를 ‘복기’하는 선수들이 상당수다.

여기에 김태형 감독의 단순하고 강렬한 메시지 전달방식도 영향을 준다. 김 감독은 2015년 두산 감독으로 취임한 첫 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2년 연속 우승에 이어 올 시즌까지 팀을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켰다. 두산을 강팀으로 만든 것은 오랜 전통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최근 수년간 더욱 강한 팀으로 만든 것은 김태형 감독의 역할이 작지 않다. 두산 포수 양의지는 김 감독의 장점에 대해 “단순하지만 강렬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많은 감독, 코치들이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집중한다. 실제 선수들의 부족한 점을 짚어주고 가르쳐주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디테일한 설명일수록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김태형 감독의 스타일은 조금 다르다. 2015년 한국시리즈 때 팀 공격이 잘 풀리지 않을 때였다. 어떤 공을 노려라, 어떤 코스를 노려라는 식의 주문을 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타자들에게 “괜찮아, 뭐 있어. 그냥 들어가서 까”라고 말했다.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인 공격을 하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였다. 세세한 지시를 통해 선수들을 복잡하게 만들기보다는 단순화시켜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얻는다. 이미 세부적인 기술은 완성된 선수라는 믿음의 결과이기도 하다. 단순한 메시지를 통해 조직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키운다. 김 감독은 내야수들의 시프트에 개입하지 않는다. 두산은 올 가을 팀 창단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린다. 그 ‘위닝 컬처’를 만든 것은 기본기와 자율경쟁, 보스 ‘비개입’의 조화다.

<이용균 스포츠경향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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