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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사회주의 강소국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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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체상태에 빠졌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많은 국민들이 북한의 태도에 주목하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김정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9월 22일, 북한이 제작한 이번 남북정상회담 영상이 공개됐다. <평화, 새로운 미래>라는 제목의 1시간10분28초짜리 영상이다. 2박3일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의 전 일정을 담고 있는 이 영상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행사를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 행사를 관람한 뒤 환호하는 평양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북남 수뇌분들의 력사적인 9월 평양 상봉과 회담은 북과 남이 손잡고 마련한 귀중한 성과들을 더욱 공고히 하며, 북남관계를 새로운 평화의 궤도, 화해·협력의 궤도에서 가속적으로 발전시켜 통일대업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 데서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되었습니다. 온 삼천리 강토에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희망과 열기가 세차게 끓어 번지게 하고 겨레의 앞길에 끝없는 번영의 활로를 열어주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사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이번 9월 평양 상봉 및 회담 행사도 결국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을 통해서 가능했으며, 조국통일사에 빛날 그의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것이다. 3일 전 9월 19일 오후 10시30분 평양 능라도 구역의 5·1경기장. 15만 관중들의 열광적 박수 속에 연설을 진행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표정은 살짝 굳어 있었다. 새벽부터 강행군으로 조금 피곤해 보이는 듯도 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 중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화들짝 놀라며 문 대통령 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한 한국 대통령

이날 남북관계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역사적 단계로 접어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운집한 평양시민들 앞에서 육성으로 직접 연설한 것이다. ‘평양시민, 동포형제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문 대통령의 연설은 사려 깊게 마련되었다. 파격은 파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연단에 서게 될 문 대통령을 직접 소개했다. 역시 주의 깊게 기획한 배려다.

1호 행사.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김정은이 직접 참여한 행사를 북에서는 내부적으로 1호 행사라고 부른다. 한국으로 치면 일반에게 공개된 VIP 참석 행사쯤인 ‘1호 행사’에서 참석자들의 열렬한 박수와 환호 대상은 지금까지 김정은이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사흘째인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대화를 나누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 평양공동사진취재단

평양 남북정상회담 사흘째인 9월 20일 오전 백두산 장군봉에서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대화를 나누다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 평양공동사진취재단

김대중 전 대통령이든 노무현 전 대통령이든 남쪽의 대통령이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김정일 위원장)’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9일 전 열린 9·9절, 북한의 ‘공화국 창건기념일’ 행사에 참여한 리잔수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역시 김일성광장 앞에서 열린 열병식 연단에 김정은 위원장과 나란히 참석해 사열했지만 그에게 대중 앞에서 연설할 기회는 없었다.

북은 레거시(legacy), 전통과 관례를 중시하는 나라다. 유튜브에 보면 과거 1990년대 초반 열병식 영상이 남아있다. 김일성·김정일이 아직 살아있을 때다. 30년 가까이 전의 영상이지만 똑같다. 김정은처럼 김일성이 인민대학습당 앞 주석단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지금과 똑같은 ‘1호 음악’이 연주된다. 참석자들은 그 음악이 연주되는 것으로 ‘최고지도자’의 입장과 퇴장을 알게 된다.

이튿날 조선중앙방송. 예상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는 방송을 타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북이 제작해 9월 22일 공개한 다큐멘터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나운서는 남쪽 대통령이 연설하는 영상을 배경으로 연설 내용 일부를 대독하는 형태로 소식을 전했다. <로동신문>은 3면에서 본사 정치보도반 명의로 ‘‘문재인 대통령은 동포애의 정으로 자기들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극진히 환대해준 평양시민들에게 진심어린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면서 남북관계를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평화적 미래를 앞당겨나갈 의지를 피력했다”고 밝혔다. 연설내용의 직접 인용은 피해간 셈이다. 그렇다고 해도 15만명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남쪽이 생각하는 평화와 비핵화, 북쪽 사회에 대한 견해, 민족사의 미래 구상을 직접 귀로 들은 사람들의 숫자다. 그들 역시 그동안 생각하지도 못했던 ‘충격’이지 않았을까.

“그건 솔직한 말로 한국사람들의 반응이고, 조선사람들이야 70년간을 김일성·김정일 혁명사상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사람들 아닌가. 게다가 행사군중으로 동원된 사람들이다. 나도 그런 자리에 많이 참석했었다. 아마 ‘남조선 대통령이 왔으니 열렬히 환영해줘라’는 지시를 듣고 갔을 것이다. 게다가 나중에 또 다 어떻게 행동했고 생각했나 조사한다. 공개적으로 다른 반응이 나오긴 어렵다.” 한 고위급 탈북인사의 말이다. 그는 자신이 6년 전 탈북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정권 초기다.

남북정상회담 이틀째 ‘9월 평양공동선언’ 채택을 알리는 북한 <로동신문> 보도. / 로동신문 캡쳐

남북정상회담 이틀째 ‘9월 평양공동선언’ 채택을 알리는 북한 <로동신문> 보도. / 로동신문 캡쳐

그는 다시 ‘솔직한 말로’라는 표현을 썼다. “솔직한 말로, 인민들에게 차례지는(돌아오는) 것은 없으니 덤덤하지 않겠나. 물론 북남 사이에서 전쟁을 바라지 않는 건 북조선 주민들도 같다. 지난해까지 핵실험이니 미사일 발사니 들볶이다가 그게 없어지니 속으론 좋아하지 않을까.”

그에게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방북 후 어떤 단속이 있었는지 되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왔다 간 다음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지시가 내려왔다. 이런 내용이었다. 일부 간부들과 당원들이 남조선 정상이 오고 가니까, 정치적 각성이 무뎌지고 긴장이 해이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백 번 웃으며 악수하다가도 언젠가 한 번은 뒷덜미를 물어뜯어서라도 통일의 위업은 수행해야 한다. ‘총대에 의해서만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 김정일의 교시였다.” 이런 이야기는 북한의 공식매체엔 나오지 않는다. 당 조직이나 인민반 등의 교육 자리에서 ‘선을 타고’ 내려오는 이야기다. “그래도 김정은 대에 와서는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나이가 젊어서인지 더 개방적이고 호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많이 다르긴 다를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김정은은 과연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이 인사는 고위급 군 출신 탈북자로 한국에 들어온 뒤 안보기관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김정은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과연 김정은은 핵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다시 ‘솔직한 말로’란 말이 나왔다. “…솔직한 말로 그건 나도 장담은 못하겠다. 이번에 남북 사이에 합의된 걸 보더라도 일방적으로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어떻게 나오냐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것 아니냐. 풍계리 핵시설을 없앤 것도 그렇다. 파키스탄도 4차까지인가 핵실험을 했고, 인도도 6차까지 했다. 핵무기를 보유하면 핵실험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다. 이미 수소탄까지 보유했다고 선언했으니 시험장은 더 유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만든 것이 문제인데, 그건 이미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과 자기들(북측)의 주장이 너무 다르니… 어쨌든 핵은 이미 가졌으니 경제건설을 해야 하는데 유엔 제재나 한국의 5·24조치가 끝나야 그것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트럼프와 김정은 사이에는 ‘늙다리 미치광이’, ‘로켓맨’과같은 극한 표현이 오갔다. 9월 25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비핵화가 이행되기 전까지 제재는 계속 이행될 것”이라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의 용기와 과감한 조치를 높이 평가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올해의 남북, 북·미관계의 변화는 극적이다. ‘밖’의 시각으로는 전쟁 일보직전의 벼랑 끝에서 급선회해 무언가의 목표를 위해 속도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김정은은 한 번도 자기들이 가진 핵을 포기한다는 말을 쓴 적이 없다.” 김진무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난 4월 20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승리했다는 선언과 함께 ‘결속’되었다고 선언되었다. 실제 이날 채택된 결정서를 보면 당장 전원회의 다음날인 4월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로켓 시험발사 중지, 북부 핵실험장 폐기 등이 선언된다. 그 후 북의 주요 결정과 행보가 이날 회의 결정에 따른 시간표대로 이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결정서는 북의 이러한 조치가 “세계적인 핵군축을 위한 과정”이며, 특히 문서의 넷째 항목엔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아직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은 제3국에 무기나 기술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보이지만 종전 개발 핵무기는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다면 사용하지 않겠다’고 밝힐 뿐이지, 폐기 의사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이나 보수 일각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성과를 두고 ‘미래의 핵’이 아닌 지금까지 개발한 핵무기 리스트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비핵화와 관련해 진전이 없는 정상회담이었다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 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 2018.9.19.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

이후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도 마찬가지다. 낙관할 수 없다는 것이 보수 측 시각이다. 지난해 7월, 미국 국방정보국(DIA)이 작성한 비공개 북핵 보고서에는 지금까지 개발한 핵무기의 총 숫자가 60여개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가 들어 있었다고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그동안 막후에서 진행된 북·미협상 과정이 지리멸렬, 난관에 봉착했던 것은 이 과거 개발이력 및 보유 핵탄두 수를 두고 북·미 사이의 견해차가 컸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에 이어 10월 중이나 11월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2차 북·미회담에서는 이 ‘견해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을까.

이번 5차 남북정상회담 9일 전 열린 공화국 창건 70주년 행사, 이른바 ‘9·9절’은 그래서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초미의 관심 대상이었다. 정권 창건 70주년이라는 ‘꺾인 해’라는 점에서 과거 소련의 소비에트혁명 70주년 행사(1987년)나 중국, 러시아의 전승 70주년 행사(2015년) 등에 견주어봤을 때 어떤 식으로든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열릴 기념식은 성대하게 진행될 것이고, 행사의 중심인 열병식 퍼레이드에서 과연 북이 지난 당중앙위원회 행사 이후 언급하지 않고 있는 ‘핵보유국’의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가가 판가름나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열린 행사. 이날 행사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나 핵개발을 주도하던 전략군은 특작군, 해군저격병, 항공반항공군 저격병 등과 함께 별도 종대로 퍼레이드에 나섰지만 지휘관에 대한 소개도, 지난해까지 등장했던 ICBM이나 핵을 무력시위하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올해 4월 이후 이들의 모습은 조선중앙방송TV나 <로동신문> 지상에서도 사라졌다. 이들 부대는 어떻게 되었을까.

핵 폐기가 아닌 자발적 사용 금지 의지

북 전략군은 북의 육·해·공군과 구별되어 독자적으로 군대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군사령부의 위치가 위도와 경도를 포함해 서방 언론에 자세히 노출된 적이 있다. 평양 북동쪽의 평남 성천군 백원리다.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기지 해체 동향 등은 구글 어스 위성지도를 통해 북 전문매체 ‘38노스’ 등이 확인 보도한 바 있다. 역시 구글어스를 통해 전략군사령부를 살펴보면 특별한 변화의 조짐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전략군의 다른 과거 이름이 화성포병부대였다. 북에서는 스커드 계열의 미사일 부대를 화성부대라고 부른다. 북 전역에 산재하는 중단거리 미사일 부대는 당연 해체하지 않고 유지할 것이다. 핵은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미국까지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은 전력화 단계까지 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 수준에서 동결된 것으로 봐야 한다.” 이중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연구위원의 말이다.

“많은 세계인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여러 조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북한을 믿지 못하겠다, 또는 속임수다, 또는 시간 끌기라고 말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속임수를 쓰거나 시간 끌기를 해서 도대체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전한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의 김정은 위원장 발언이다. 문 대통령이 9월 25일(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CFR) 등의 한반도·국제문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연설 뒤에 ‘김정은의 비핵화 진정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공개한 발언이다.

외부에는 북한의 비핵화로 알려지고 있지만 북이 공식적·대외적으로 쓰는 말은 ‘조선반도 비핵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에 펴낸 책 <담대한 여정>에서 “그 속에 지뢰가 몇 개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북이 말하는 비핵화란 자신들만의 비핵화가 아니다. 한반도의 모든 영역, 해역이나 상공에도 핵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는 항공모함이나 전략폭격기가 출몰하는 것 역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를 보면 평창올림픽 참가에 앞서 “남측은 미국의 북침 핵전쟁 책동에 가담해 정세 격화를 부추길 것이 아니라 긴장 완화를 위한 자신들의 성의있는 노력에 화답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종구 연구위원은 “실제 북은 자신들의 비핵화 전략과 관련해서는 북의 핵심 엘리트층 사이에서만 논의할 것이며, 일반 주민들은 거의 주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반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이 핵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전략적 지위로 트럼프도 만나고 문재인도 만나는 것이 아니냐’며 할아버지(김일성)가 통일문제에 주동적으로 나섰던 것처럼 김정은의 뛰어난 협상력을 강조하는 형태로 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전쟁을 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을 것으로 본다. 차라리 더 위험한 것은 통제가 되지 않는 트럼프가 아니었나.”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의 말이다. 라 교수는 DJ정부에서 북한을 담당하는 국정원 1차장을 맡은 뒤, 참여정부 당시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국내 대북전략통이다. 핵·미사일 개발뿐 아니라 지난해까지 정전협정의 일방적 폐기를 선언하고, 특수작전군의 연평도 점령 연습작전을 직접 참관하는 등 사회주의 경제건설 노선으로 급전환하기 직전까지 ‘끝까지 갈 데까지 가보는 모습을 김정은이 보이지 않았느냐’는 <주간경향>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한 김정은이나 북한의 전략은 과거부터 일관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나 전략·전술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지만, 북한은 정권이 바뀐 것도 아니고, 바꿀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바꿀 만한 이유가 있더라도 정책기조나 전략·전술은 그대로 유지하는 식으로 나간다.” 라 교수에 따르면 북의 입장에서 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체제 안전보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동안 공식·비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체제 안전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용인·보장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핵은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최근 북이 공개한 노래 중 <위대한 나라>라는 노래가 있다. 땅이 넓어, 인구가 많아 북이 ‘큰 나라’가 아니라 백두장군을 모시고, 일심단결 위력으로 빛나는 나라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체제 안전을 바탕으로 자기식의 사회주의 경제건설, 강소(强小)국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북한의 비핵화 주장은 ‘조선반도 비핵화’

강진웅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는 “김정일 집권시기에 선군정치를 통해 군을 앞세운 강성대국을 내걸었다면 자신의 시대에는 과학기술자를 앞세워 경제강국을 만들어 선대와 다른 업적을 세우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는 뚜렷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하지만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만큼 국제사회의 제재가 쉽게 풀리지는 않을 것이며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에 제재 해제는 어려울 수도 있다”며 “어찌되었든 과거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두 보수정권 경험’이라는 학습효과 때문이라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내에 결실을 보려고 최대한 노력할 것이고, 남은 3년 동안 100%는 아니더라도 남북관계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관광 대국 꿈꾸는 북한

평양시 중구역 능라도 소재 5·1 경기장에서 진행 중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평양시 중구역 능라도 소재 5·1 경기장에서 진행 중인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 /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주간경향>은 북·미 정상회담 직전 4·27 남북정상회담 전후 김정은 위원장의 현지지도 ‘행보’를 보면 새로 채택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원산 갈마지구로 대표되는 관광산업 육성에 일차적으로 힘을 쏟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실제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엔 대북제재 리스트 중 관광을 명시적으로 거론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실제 대북제재가 풀리지 않더라도 시작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5월 26일 <로동신문> 보도에 따르면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 현지지도에 나선 김정은 위원장은 내년 태양절, 그러니까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이전에 건설을 완료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도 비슷한 움직임이 목격된다. 남북정상회담을 두 달 앞둔 지난 7월, 김 위원장은 백두산이 있는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했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 일행이 방문한 백두산과 삼지연 일대는 노무현 정권 당시 관광사업을 하기로 합의된 바 있다. 10·4선언 6조에는 ‘남과 북은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며 이를 위해 백두산~서울 직항로를 개설하기로 하였다’는 문항이 있다.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2호기는 9월 20일 아침 출발은 평양에서 해 삼지연으로 갔지만, 귀환은 삼지연 비행장을 출발해 곧바로 서울에 왔다. 2시간가량의 직항로가 개척된 셈이다. 이날 김정은 위원장은 “오늘은 적은 인원이 왔지만 앞으로는 남측 인원들, 해외동포들이 와서 백두산을 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남쪽 일반 국민들도 백두산으로 관광 올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화답한 말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비핵화 제재가 풀리지 않는 한 백두산 관광은 어렵다는 전망을 내포하는 반면, 김정은 위원장의 말엔 백두산 관광사업 추진에 대한 강한 의지가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월 23일, 문재인 대통령 방문단이 관람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빛나는 조국’의 홍보영상이 북한이 운영하는 사이트 <류경>, <유튜브> 등에 게재됐다. 공연은 평양 5·1경기장에서 9월 9일부터 10월 10일까지 진행된다. <조선관광> 사이트에 올라 있는 안내에 따르면 VIP석은 800유로(약 104만2008원), 퍼스트클래스는 500유로(약 65만1255원), 세컨드·서드는 300·100유로의 관람요금이 책정되어 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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