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기 신도시’는 신도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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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자족성 있는 도시 표방해 신도시라는 표현 안 써

5년 내내 부동산과 씨름했던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0월. 잠시 주춤했던 서울 집값이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수도권까지 집값 상승세가 번질 조짐을 보였다. 당시 추병직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 장관은 2006년 10월 23일 오전 11시쯤 기자실을 찾았다. 예정에 없던 방문이었다. 추 전 장관은 “집값 안정을 위해 신규 신도시를 수도권에 추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실무진은 “신도시 한 곳과 규모를 확대한 기존 신도시 한 곳은 10월 안에, 분당 규모의 신도시 한 곳 이상을 2007년 상반기에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 한승희 국세청장 등 장관들이 9월 1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뒤 질문을 받고 있다. / 정지윤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가운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최종구 금융위원장(오른쪽), 한승희 국세청장 등 장관들이 9월 13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뒤 질문을 받고 있다. / 정지윤 기자

‘베드타운’인 기존 신도시와 다르다

추 전 장관의 ‘신도시 추가 공급’ 발언은 큰 파장을 불렀다. 부처 간 조율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을 자극할 수 있는 신도시 입지 추론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신도시 계획 발표 직후 신도시 유력 후보지로 꼽힌 지역의 아파트 호가가 2~3일 사이에 5000만원까지 올랐다. 후보지의 몇몇 미분양 아파트에는 청약자들이 몰렸다. 추 전 장관은 신도시 계획을 공개한 지 22일 만에 사퇴했다.

‘신도시 파문’ 학습효과 때문이었을까. 정부는 9월 21일 집값 안정을 위해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하면서 ‘신도시’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보도자료에도 ‘신도시’라는 표현은 없었다. 서울과 제1기 신도시 사이 330만㎡(약 100만평) 규모 택지 4~5곳에 주택 20만호를 공급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실상 ‘제3기 신도시’를 수도권에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언론의 관심도 ‘제3기 신도시’에 쏠렸다. 주요 신도시 후보지 5~6곳도 거론됐다.

신도시는 흔히 정부 주도 하에 계획적·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를 뜻한다. 1990년대 들어 한국의 신도시는 주로 수도권 주택 공급과 집값 안정을 목적으로 조성됐다. 국토부는 통상적으로 면적 330만㎡ 이상에 주택 2만호 이상 공급되면 신도시로 본다.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추진한 1기 신도시는 모두 서울에서 반경 20~25㎞ 안에 있다. 분당(9만7600호), 일산(6만9000호), 평촌(4만2000호), 산본(4만2000호), 중동(4만1400호)에서 인구 117만명을 수용하도록 설계됐다.

2기 신도시는 2001년부터 개발계획이 수립됐다. 1기 신도시보다는 서울에서 멀어졌다. 20~40㎞ 떨어져 있다. 서울 진입이 불편한 교통은 여전히 골칫거리다. 2기 신도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인천 검단 등 일부 도시는 올 연말에나 분양이 시작된다. 성남 판교(2만9300호), 화성 동탄1(4만1500호), 화성 동탄2(11만6500호), 김포 한강(6만1300호), 파주 운정(8만8200호), 광교(3만1300호), 양주(6만3400호), 위례(4만4800호), 고덕(5만7200호), 인천 검단(7만4700호)에서 인구 150만3000명을 수용한다. 이외에 서울 뉴타운이나 혁신도시를 신도시 범주에 넣기도 한다.

정부가 발표한 제3기 신도시는 1·2기 신도시와 도입 취지부터 유사하다. 3기 신도시도 1·2기 신도시처럼 수도권 집값 안정이 주요 목적이다. 예정대로 수도권 4~5곳에 주택 4만~5만호가 공급되면 1기 신도시인 산본, 중동, 평촌과 비슷한 크기의 신도시가 조성된다. 다만 3기 신도시는 서울과 1기 신도시 사이에 들어설 예정이어서 서울과 거리는 1·2기 신도시보다 가깝다는 이점이 있다.

국토부는 언론이나 시장에서 제3기 신도시로 부르는 것까지 막을 순 없지만 기존 신도시와는 차별화된 주택 공급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신도시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이유는 ‘베드타운’인 기존 신도시와 달리 자족성 있는 도시를 표방하기 때문”이라며 “신규 택지에 기반시설을 많이 만들고 도시 내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며 출퇴근 자체도 편하게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토부 관계자는 “신도시로 단정지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보금자리주택도 공급량은 많지만 신도시라는 표현을 안 썼다”며 “신규 택지 330만㎡ 활용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기존 시가지 확장이나 도시에 바로 인접해 입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도시의 통상적인 개념과 달리 생활시설 등을 많이 넣어 독립성이나 자족기능을 강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3기 신도시 집값 안정 효과 미지수”

정부가 제3기 신도시를 신도시라 부르지 않는 것은 자족기능이 부족해 베드타운화된 과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신도시 추진에 거부감을 보이는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조금이라도 잠재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런데 국토부는 이미 신도시 구성 요소 중 하나로 ‘자족성’을 명문화하고 있다. 국토부가 2007년 1월 만든 택지개발촉진법 지침 ‘지속가능한 신도시 계획기준’을 보면 ‘330만㎡ 이상 규모로 시행되는 개발사업으로서 자족성·쾌적성·편리성·안전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로 신도시를 정의한다. 국토부의 신도시 정의에 따르면 자족기능이 없는 신도시는 신도시이지만 ‘반쪽짜리 신도시’다. 제3기 신도시가 자족기능을 갖추지 못하면 또다시 반쪽짜리 신도시가 되는 셈이다.

현재 정부가 제3기 신도시를 신도시가 아니라고 해도 시장은 이미 제3기 신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 국토부가 올해 안에 1~2곳의 신도시 입지를 발표한 뒤 유력 후보지로 떠오른 몇몇 곳은 이미 ‘제3기 신도시 후보지’로 불린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권 주택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서울 중심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르자 결국 주택 30만호 공급 카드를 꺼내들었다. 국토부는 서울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일부에 주택을 공급하려 했으나 서울시의 반대에 부딪혔고, 급히 3기 신도시로 선회했다.

정부의 갑작스런 제3기 신도시 추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1·2기 신도시가 겪고 있는 교통수단 미비나 수도권 과밀화 문제가 지금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신도시는 복합개발이기 때문에 3기 신도시 예정지 주변 집값과 땅값을 일제히 끌어올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3기 신도시가 미분양이 발생하고 사업 진척이 더딘 2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이 2011년 발간한 보고서 ‘한국형 신도시 개발’을 보면 2기 신도시 계획을 ‘단기적으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 ‘단기적이고 안일한 사업계획에 따른 무리한 사업 추진’으로 평가했다.

<김원진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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