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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엄연히 ‘정상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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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부부, 비혼모 가족, 생활동반자적 동거가족 등 현실에 존재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뤄진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우리 사회가 흔히 생각하는 ‘정상가족’이다. 하지만 사회가 정한 틀 바깥에서도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동성부부, 비혼모 가족, 애정에 기반하지 않은 동거가족 등이다.

노유다 제공

노유다 제공

동성부부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벽들

노유다씨(36)와 나낮잠씨(40)는 11년차 부부다. 두 사람은 2007년 여성 퀴어 사진 동호회에서 만났다. 문예창작학과에서 각각 시와 소설을 전공했고,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와 여성영화를 좋아하는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 유다씨가 낮잠씨에게 청혼을 했다. 낮잠씨가 “웬 결혼? 생각해보겠다”고 하자 유다씨는 “생각해볼 수 없다. 지금 당장 답을 달라”고 했다.

2008년 2월 27일이 결혼기념일이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 대신 한날한시에 개명을 했다. 그리고 주변에 결혼을 알려야 했다. 성적 지향을 알리는 것과 결혼을 알리는 것은 다른 차원이다. 전자가 정체성의 표현이라면 후자는 사회에서 ‘가족’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게다가 낮잠씨는 가족들에게는 성 정체성을 알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낮잠씨는 결혼을 준비하며 가족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다. 낮잠씨는 어머니가 자식이 홀로 산다고 생각하기보다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낮잠씨와 유다씨의 결혼을 반겼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멋있다” “좋아 보인다”는 축하를 들었다.

주변의 축하와 별개로 부부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벽은 낮지 않다. 법적으로 두 사람은 아무 관계도 아니다. ‘가족할인’이라는 일상에서의 작은 혜택부터 크게는 병원에 입원을 해도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재산상속도 마찬가지다. 유언장을 남기면 제3자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직계가족이 우선이다.

매번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것도 불편하다. 얼마 전 병원에서 “두 사람 이름이 특이하다. 무슨 관계냐”는 질문을 받았다. 가족이라고 답하자 간호사는 “자매는 아닌 것 같은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인들조차 그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낮잠·유다씨가 옆에 있는데 다른 친구에게 “니가 우리 중에 제일 먼저 결혼하네”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들 부부는 “너희가 오래 같이 살았고 또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둘이서 반지 주고받고 주변사람들에게 알린다고 그게 ‘진짜’ 결혼은 아니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은 불편해도 ‘친구’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1시간 이상 이야기할 사람이라면 부부임을 말하고 5분 이하로 볼 사람이라면 가족이라고 답한다.

구세군 두리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다. (사진은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무관함.)/여성가족부 제공

구세군 두리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한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다. (사진은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무관함.)/여성가족부 제공

이들은 “우리가 동성애자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우리가 가족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며 “사회가 생각하는 가족, 부부의 정형화된 모습에 균열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들 부부는 생활동반자법도 중요하지만 동성결혼이 하루빨리 합법화되기를 원한다. 생활동반자법으로 복지 부분이 해소된다 하더라도 ‘정상가족’의 틀은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부부는 다가오는 이번 추석에도 낮잠씨 원가족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유다씨는 “낮잠의 원가족은 저와 낮잠이 구성하고 있는 가족을 좋아하고 명절 때마다 이번에는 오냐 안 오냐 물어본다. 명절에 같이 가면 잔치 분위기다”라며 “이렇게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이 저희 가족을 지지해주고 안위를 묻는 게 지금으로서는 우리의 안전망이다”라고 말했다.

결혼과 비혼모, 나는 비혼모를 선택했다

김유리씨(33·가명)와 6살 된 딸아이는 추석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유리씨 가족은 이번 추석을 맞아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딸아이는 매일 수영복을 입어본다. 유리씨는 “가족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부부와 아이, 3인 이상을 떠올리는 것 같다”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구성이 아닐 뿐 저와 딸아이도 당연히 정상가족이다”라고 말했다.

유리씨가 임신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임신 4주차 때였다. 아이의 아빠와는 오래 만났다. 그때가 두 번째 임신이었다. 처음으로 임신을 했을 때 유리씨도 남자친구도 대학생이었다. 출산을 고민하고 말 것도 없었다. 온라인으로 낙태를 해주는 산부인과를 찾아 아이를 지웠다. 두 번째 임신은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일단 유리씨와 남자친구 모두 돈을 버는 생활인이라는 점이 컸다.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유리씨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입되는 게 망설여졌다. 그는 “결혼을 함으로써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과 혼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감당해야 할 부분, 어느 것이 더 어려울지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유리씨는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당차게 비혼모를 결심했지만 이후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성당에 다니는 부모님조차 수차례 낙태를 권유했다. 배가 불러오자 알아서 직장을 관뒀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유리씨는 지금도 몇몇 친구들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유리씨는 “왜 낙태를 하지 않았는지, 결혼은 하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했다.

주거와 생계. 대부분의 비혼모들이 겪는 공통적인 문제다. 유리씨는 부모님 집에서 아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유리씨는 “저는 운이 좋은 편이다. 결혼 전에 임신을 했다는 사실 하나로 부모와 인연을 끊은 비혼모들도 많다”며 “정부는 맨날 저출산 저출산 하면서도 모든 복지혜택은 신혼부부 중심이다”라고 비판했다.

아이는 4살 즈음부터 아빠의 존재를 물었다. “외국에 갔다” “아프다”는 말로 순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유리씨는 “지금 우리 가족은 ○○이랑 엄마랑 할머니랑 할아버지야. 아빠가 없는 가족도 있어”라고 반복해서 말해준다. 유리씨가 ‘지금’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이유는 얼마 뒤 있을 독립을 생각해서다. 그는 “비혼모 가족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나쁘지 않았다면 진작에 독립을 했을 것이다”라며 “사회는 비혼모 가족을 ‘불우한 가정’으로 소비하는데, 원래 불행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따로 또 같이’ 주택 동거인들의 김치 담그기. 거주자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표현했다./김기민 제공

‘따로 또 같이’ 주택 동거인들의 김치 담그기. 거주자들은 서로를 ‘식구’라고 표현했다./김기민 제공

혈연·사랑 관계가 아니면 가족이 될 수 없나

“지금 사회가 허용하는 가족은 크게 두 종류예요. 혈연을 기반으로 하거나 성애적 사랑을 기반으로 하거나. 그런데 둘 다 내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하죠?” 김기민씨(37)의 말이다. 기민씨는 현재 혈연도 성애적 파트너도 아닌 사람과 3년째 함께 살고 있다. 기민씨는 “단어 그대로 동거인이라는 표현이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기민씨는 30대가 될 때까지 소위 ‘정상가족’ 구성원으로 지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가족 내에서 주어지는 역할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기민씨는 “자식은 부모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 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기본값이 있는데 저는 거기 부합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며 “내가 패륜아인가? 이런 생각까지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기민씨는 자신이 혈연가족에게 느끼는 불편함과 구속감을 동반자나 파트너에게도 느낄까봐 신경이 쓰였다. 동시에 왜 가족은 항상 피나 애정으로 묶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 혈연이나 애정에 기반하지 않는 관계는 고립되기 쉬워 보였고 또 고립되기 쉬운 게 현실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따로 또 같이’ 주택이다. 기민씨는 이를 통해 자신의 노후와 안전망을 시험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따로 또 같이’ 주택은 방 3개에 거실 하나, 그리고 널찍한 마당이 있다. 이들은 방 크기에 맞게 월세를 내고 생활비 통장으로 공동생활을 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보통의 ‘셰어하우스’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들은 가족의 역할인 돌봄과 경제적 부양도 일부분 하고 있다. 계약관계로만 보기에는 너무 긴밀하다는 게 기민씨 설명이다.

그는 하루빨리 생활동반자법이 도입되길 바란다. 생활동반자법은 동반자가 혈연관계인지 성애관계인지 묻지 않는다. 기민씨는 “일각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을 위한 제도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며 “동성혼이든 이성혼이든 결혼제도에 들어가야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모두 똑같이 누리자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기민씨와 동거인이 구성하고 있는 형태도 가족일까. 혈연도 사랑도 기반하지 않은 ‘남’이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기민씨는 “혈연가족이 동거인보다는 훨씬 역사성이나 밀도가 깊다. 하지만 이 가족이 나를 학대한다면? 반대로 역사성이나 깊이는 얕지만 나를 항상 돌봐주는 사람이 동거인이라면? 이렇게 놓고 보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깊이라는 건 관계를 구성하는 지표 중 하나일 뿐이지 유일한 지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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