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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좌절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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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폭등에 전세가격까지 꿈틀… 오피스텔 등 소형주택 전·월세에도 불똥

7년차 직장인 김모씨(33)는 결혼식을 또 한 번 미뤄야 하나 고민 중이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덩달아 전세가격까지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과정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신혼집 마련이 예상보다 어려워지면서 김씨는 올가을로 계획했던 결혼을 차라리 내년으로 미루는 건 어떨까 하고 예비신부와 상의하고 있다. 김씨의 어머니가 올봄 갑작스런 병환으로 입원하면서 이미 한 차례 결혼을 미뤘기 때문에 더는 미루고 싶지 않기는 하지만 앞날이 보이지 않는 부동산시장 때문에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부동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권도현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인근 부동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권도현 기자

매물 품귀로 실구매자도 발 동동

“부동산 중개소에 들를 때마다 차라리 돈 좀 더 보태서 이참에 집을 사라는 얘기는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런데 모아둔 돈도 적고 대출받을 수 있는 돈도 2억원밖에 안 되니까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김씨는 지난 9월 5일 회사에 하루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부동산 중개소를 돌아다니며 신혼 전셋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나마 조건에 맞는 집을 방문하면 사진을 찍어서 직장에서 근무 중인 여자친구에게 보냈다. 어떻게든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액수에 맞춰 전세를 얻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올해 5월에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보다 대체로 교통이나 면적 등 모든 조건이 못미치는 집들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부동산 중개업자의 말처럼 제2금융권에까지 대출을 최대한 끌어다 전세를 끼고 집 한 채 사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에 전세로 신혼집을 구해도 2년 뒤면 다시 또 전세금이 올라 번거롭게 이사해야 할 일이 벌써부터 걱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모자라는 돈을 끌어올 방법이 없다. 이렇게 호가가 오르는 국면에서도 매매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하다 보면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씨는 “여자친구가 우리 조건에 맞춰 살면 되니까 부담 갖지 말자고 해도 더 비싸고 좋아 보이는 집에 마음이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면서도 “여기저기 직접 둘러보고 나니 매매가격이 오르면 자연스레 전세가도 오를 테니까 일단은 만족스럽지 않아도 집을 얻고 결혼을 더 미루지 말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씨의 경우는 신혼부부 둘만 살면 되는 집이고 전세였기 때문에 아예 집을 구하지도 못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서울의 주택, 특히 아파트를 사려고 하면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서울 동대문구에 살고 있는 박준모씨(44)는 오는 10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바쁘게 매물들을 찾고 있지만 아예 집이 없어 마음만 급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강북에선 교육환경이 좋다는 노원구를 중심으로 알아봤지만 이미 중개업소에서 매물마다 대기자 명단이 십수 명에 이른다는 얘기를 듣고는 포기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대문구나 인근의 강북구 등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매물이 나오면 신규분양도 아닌데 계약금에 중도금까지 내고 계약부터 하고 본다는 소리를 들으니 덩달아 나도 빨리 집을 사야겠다는 조바심만 늘었다.” 박씨는 몇 년 동안 계획했던 첫 번째 내집 장만이 이번에 미뤄지면 다음에는 더욱 기회가 없을까봐 고민이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아파트를 사려고 몰리는 반면 매물은 추가적인 집값 상승을 기대해 잘 나오지 않는 지금의 서울 아파트 시장 모습은 ‘매수우위지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서울 아파트 시장의 매수우위지수는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6년 11월 첫째 주 기록한 157.4 이후 12년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KB국민은행의 주간 주택시장동향 조사결과를 보면 8월 20일 기준 이 수치는 152.3을 기록했다. 이 지수는 100보다 높을수록 부동산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아 매도자가 우위에 있고, 반대로 100보다 낮으면 팔려는 사람이 많아 사려는 사람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뜻한다. 부동산 광풍이 불었던 시기로 기록된 2006년에 버금갈 정도로 최근 서울에서는 매도우위 양상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급작스럽고 가파른 광풍

그런데 근래의 부동산 광풍은 더욱 급작스럽고 가파른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올해 1분기 동안 100 이상을 유지하며 파는 사람 우위의 모습을 보였지만 4월 들어 정부의 양도세 중과 시행이 있으면서 70을 겨우 웃도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때만 해도 정부의 정책과 부동산시장 과열 방지 메시지가 어느 정도 먹혀들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 수치는 7월 초순까지 꾸준히 70대를 유지해 아파트 수요 증가가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7월 말 100을 넘어 다시 파는 사람 우위의 시장으로 전환된 뒤 한 달 사이에 투기수요 급증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수준으로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7월에 있었던 기획재정부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발표가 부동산을 통한 초과이익 기대심리를 잠재우지 못할 정도로 미온적이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게다가 7월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개발 발언까지 맞물리면서 투기수요에 불이 붙은 것이다. 추석을 앞두고 정부는 부랴부랴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부동산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지만 이미 불붙은 부동산 투기심리의 불똥은 다른 곳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크다.

8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 쇼’에서 관람객이 부동산 강연을 듣기 위해 줄을 서 있다./연합뉴스

8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8 대한민국 부동산 트렌드 쇼’에서 관람객이 부동산 강연을 듣기 위해 줄을 서 있다./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집값이다. 부동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집값 안정대책 발표에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보유자의 종합부동산세율을 높이고, 1주택자의 양도소득세 비과세 요건도 강화되는 안이 포함될 것으로 보이면서 이러한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주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도시형 생활주택은 주택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새롭게 강화될 대책에서 보유주택 수에는 포함되지 않을 공산이 크고, 반면 오피스텔은 업무용 시설이라 애초에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확실한 정부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규제를 피할 수 있고 아파트보다는 상대적으로 투자액수가 적어 진입 문턱이 낮기 때문에 유휴자금이 몰려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시장의 심리를 반영한 듯 오피스텔 등의 전·월세가격도 요동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런 소형 주거시설은 아파트 매입은 물론 전세조차 꿈도 못꾸는 청년층의 주거현실과 맞닿아 있어 문제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고향인 부산에서 직장 때문에 서울로 온 직장인 강성환씨(31)도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월세가 더 오를까봐 걱정이다. 강씨는 성동구에 있는 오피스텔에 보증금 2000만원, 월세 60만원을 내며 살고 있다. 월세 60만원은 강씨 월급의 5분의 1이 넘는 큰 액수지만 평범한 원룸은 물론 개인 화장실이 딸린 고시원 방도 40만원이 넘어가는 현실 때문에 오히려 액수가 크다는 감각조차 흐릿해졌다. 강씨는 “오피스텔이건 원룸이건 전세로 구하려면 보증금이 아무리 싸도 1억원은 기본으로 넘고 2억짜리도 흔하기 때문에 보증금 낼 목돈이 없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월세살이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씨가 사는 오피스텔은 직장과의 거리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상경 초기에 급하게 골랐기 때문에 주거환경이 좋은 편도 아니다. 비싼 월세에 더해 혼자 살면서 드는 생활비도 만만찮아 부산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상의해 부산의 본가를 팔고 서울로 부모님이 오는 방법까지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2010년 무렵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서울 집값에 비해 지방의 아파트 가격이 급등할 때도 강씨의 본가는 집값 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별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무리라는 결론이 나왔다.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은 크게 올랐지만 부산의 부모님에게는 남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강씨는 “월세 때문에 서울 말고 경기도 인근 도시로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다”며 “그런데 막상 경기도라도 교통이 편한 지역은 월세 차이가 얼마 나지 않고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허비되는 시간이 많아 쉴 시간마저 줄어들까봐 고민”이라고 말했다.

돈 없어 변두리로 밀려나는 사람들

국토연구원이 8월 발표한 ‘국토정책브리프’를 보면 가구주 연령 20~34세인 청년층 가구 가운데 주택 임대료가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구 규모는 26.3%에 달했다. 4명 중 1명 이상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절반 이상을 기본적인 주거비로만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들 임대료 부담 과다가구의 69%는 월세 거주자이다. 향후 집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기는커녕 다달이 나가는 월세 부담만으로도 이미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값 상승으로 일부 부동산 투기세력이 막대한 액수의 초과소득을 거둬들이는 현상은 상대적 박탈감을 넘어 미래를 위한 준비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하게끔 만든다는 것이 청년들의 목소리다.

“정부가 청년들을 위해서 임대주택 짓는다고 하면 인근 자가 소유자들이 집값 떨어진다며 들고 일어나는 나라인데, 여기에다 물려받을 부모님 집 한 채도 없는 청년들은 혼자 살 수밖에 없고, 설사 운이 좋아 결혼하게 되더라도 오르는 전세금에 밀려 계속 변두리로 밀려나는 거죠.” 경기 성남시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40대 자영업자는 돈이 없어 도시 외곽 주거지역으로 밀려나는 문제는 자신의 부모님 세대에 이어 지금도 바뀌지 않은 고질병이라고 말했다. 과거 산업화 시기 서울시 개발과정에서 밀려나 성남 등 인근 지역으로 이사했던 부모세대의 주거문제가 주택보급률이 100%에 육박하는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결국 집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남는 돈으로 돈놀이해서 더 많은 집을 갖게 되는 나라에선 집이 없는 사람들은 중년이든 청년이든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직 주택거래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이거나 이제 막 진입하는 시기인 청년층으로만 한정해도 이러한 양극화는 심각하다. 임대료 부담 과다가구의 31.1%가 월세 보조금 지원, 27.8%가 전세자금 대출 지원을 당장 필요한 정부의 대책으로 꼽았지만 실제 주거지원 프로그램 이용률은 6.5%에 불과했다. 반면 국세청 사업자 현황 통계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30세 미만 부동산 임대업자로 등록한 인원은 1년 전보다 25.1%나 늘었다. 이들 연령대 임대업자의 전체 규모는 50∼60대의 5% 수준에 불과하지만 증가율은 30대(17.8%), 40대(12.8%)보다도 크게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재산을 모은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는 연령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속·증여 자산을 바탕으로 부동산 임대사업에 뛰어든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부동산을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상대적 격차가 커지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최근 정부가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지원이 과도하다고 보고 신규등록 임대주택에 대한 혜택을 축소하는 안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지만 시작부터 차이가 난 부동산 자산과 임대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집을 가진 가구의 자산은 다음 세대로 물려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가구는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모두 부동산 가격 상승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호림 강남대 교수(세무학)는 “청년 임대사업자가 빠르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현상은 지난 정부 시절 상속과 증여가 늘고 여기에 저금리 기조에 따른 갭 투자가 확산된 것이 원인이라 볼 수 있다”며 “최근의 임대사업 등록 유도 정책도 다주택자들이 세금을 회피하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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