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스마트팜 혁신밸리 예산 쪼개기 꼼수?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예비타당성 조사 안 받고 사업 분리해 보조금 적격심사로 끝내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스마트팜 혁신밸리(이하 혁신밸리). 정부가 농업의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확산에 주력해온 ‘스마트팜’ 관련 교육 및 실증과 생산유통 시설을 집약해 전국 네 곳을 선정, 각각 20ha(헥타르) 규모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8월 2일 세종로. 이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박행덕)의 집회가 정부종합청사 옆 세종로에서 열렸다. 이날은 정부 추진계획에 따라 공모한 지자체 중 두 군데의 시·도 지자체를 발표하는 날이기도 했다. 선정된 곳은 경북 상주, 전북 김제다.

지난 8월 2일 서울 세종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농정 규탄 스마트팜 밸리 사업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지난 8월 2일 서울 세종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 주최로 열린 ‘문재인 정부 농정 규탄 스마트팜 밸리 사업저지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한 농민들이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팜 혁신밸리 사업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

“A4 3장 분량이었나, 종이를 나눠주고 15분에서 20분 정도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의문 제기는 나왔죠. 동의서를 받기는 받았지만 모두 수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김현배 상주시 농민회 사무국장의 말이다. 혁신밸리 사업에 응모한 시·군 지자체는 20곳이 넘었다. 경북 상주가 선정된 데에는 사업 추진에 대한 농민들의 ‘동의’가 있었다는 점이 크게 감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농업판 4대강 사업?

실제 상주시가 농림축산식품부에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보면 총사업비는 1600억원이며, 지방비 부담금은 357억원으로 계획되어 있다. 이 중 도비는 77억원, 시비는 280억원이다. 연차별 부담은 도비는 2019년도에 55억원, 2020년도에 22억원이고 시비는 각각 228억원, 52억원으로 잡혀 있다. 두 지자체가 낸 계획서를 보면 인상적인 대목이 있다. KT가 스마트팜 관련 중소기술기업들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사업에 참여한다. <주간경향>은 정부 혁신밸리 추진과정을 검토하는 기사를 통해서 “애초 ‘추진계획’ 자체가 특정 대기업의 구상과 유사하며 실제 추진과정에서 사업비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설설치비는 대기업에 귀속될 것”이라는 농업계 우려를 보도한 바 있다. <주간경향> 혁신밸리 기사는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농림부는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를 내고 출입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특정 대기업과 농림부는 밸리사업에 대해 논의해온 사실이 없으며 스마트팜에 참여한 일부 대기업도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요지다.

농민단체들이 혁신밸리 사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과거 일부 대기업의 유리온실사업 추진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 상주의 경우 네덜란드 레바트사와 지자체, 농업 관련 회사가 MOU를 맺고 10ha 규모의 유리온실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다 농민단체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김현권 의원: 예산도 안 세워져 있는데 계획을 세우고 대상지 선정도 먼저 했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안 하고 법에 하도록 되어 있는 정보화 전략계획 수립도 안 하고, 이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업계의 현황은 국가가 나서서 투자해야 할 상황이 아닙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 이개호: 아마 농업의 전반적인 시대적 조류를 고려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입니다.”

8월 9일 국회.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왜 혁신밸리 사업은 500억 이상 사업에 대해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는 예비타당성 검사 및 5억 이상 규모의 IT 관련 사업을 대상으로 한 정보화 전략(ISP)계획 수립을 하지 않았는지 문의했다. 이개호 장관 후보자는 “예비타당성 검사는 안 했지만 보조사업 적격성 심사로 대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실제 2019년도 예산에서 정보화 관련 예산은 없기 때문에 해당 사업은 ISP 대상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예비타당성 검사’는 국가 재정의 측면에서 예산 낭비는 없는지, 사업성은 있는지 사전에 예측조사를 하는 경우를 말한다. 흔히 B/C로 불리는 비용편익 분석, 그리고 정책적 타당성을 뜻하는 AHP를 조사해서 B/C는 1 이상, AHP는 0.5 이상을 받아야 통과된다. 보통 추진기관의 장이 KDI에 의뢰해서 받거나 기재부가 직권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혁신밸리의 경우 이상하다. 예산안을 낸 기재부 쪽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우리도 말 나오지 않게 예비타당성 조사를 가급적 받으려고 했는데 예산안을 짠 기재부 쪽에서 받을 필요가 없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받지 않은 논리는 혁신밸리 사업이 패키지 사업이기 때문이다. 실제 농림부가 김현권 의원실에 서면답변한 내용을 보면 ‘기재부의 2018년 예비타당성 조사 운용지침 9조 3항을 보면 ‘여러 개의 개별 세부사업으로 구성된 집단사업(Pakage Project)의 경우, 원칙적으로 개별 세부사업별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한다’고 되어 있다. 농림부 혁신밸리 사업(2019년도 359억원)은 스마트팜 창업보육(91억원), 청년임대형 스마트팜(2개소, 123억원), 스마트팜 실증단지(145억원)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 별개의 사업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농림부 국회 답변자료 등을 검토한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사업이 어떻게 추진되며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긍정적인가를 평가하는 사업보고서가 나와야 국회에서 심사할 수 있는데, 이것을 쪼개 내부 심사위원의 보조금 적격심사로 끝냈다는 것은 국회는 묻고 따지지도 말고 통과시키라는 소리와 같다”고 말했다. 농업계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혁신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농업판 4대강 사업을 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작부터 빚지고 스마트팜 청년창업 위험”

“SKT나 KT, LG CNS 등 대기업이 해외수출을 하기 위해 중소기업들과 컨소시엄을 맺고 스마트팜을 만들겠다면 나는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스마트팜 기술 관련 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이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스마트팜은 대기업이 수익을 낼 만한 캐파가 있는 시장이 아니다. 앞서 대기업들이 지난 4∼5년간 스마트팜 하겠다고 뛰어들긴 했지만 시장에 딱히 의미있게 한 것도 없고, 시장을 교란한 적도 없다. 대기업이 들어온다고 중소기업들이 긴장하고 그런 관계도 아니다.” 이 인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20ha짜리 단지를 전국에 4개나 만든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결국 생산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 스마트팜이라고 하지만 현재 재배 가능한 작물은 시설원예, 파프리카, 멜론, 딸기, 오이 등 일부 품목에 한정된다. 이게 각각 20ha면 크다. 생산단지가 되면 기존 농가들이 황폐화될 수 있다. 그게 농민들이 반발하고 우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는 청년창업을 스마트팜을 통해 하는 것 역시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대시설도 운영한다고 하지만 청년들이 시작할 때부터 빚을 지고 농사를 짓게 만들겠다는 것 아닌가. 지금 목적은 스마트팜 잘해서 스마트팜 CEO가 되라는 것이다. 그게 답인가. 어디든 그렇게 하는 농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존 농가들도 스마트팜 교육 나가보면 놀면서 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국 (지금 강행하는 것을 보면) 그런 종류의 오해 내지는 허상이 청와대까지 흔들어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혁신밸리 관련 농림부 핵심 관계자는 “실제 1600억원 대부분이 시설비로 들어가는 것은 맞다”며 “KT 등 대기업들이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빅데이터나 솔루션에 대한 소유권은 당연히 주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4개 선정지역이 생산단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기존 기술 보급단계에서 문제점이 R&D에서 끝난다는 점에서 당연히 실증과 생산이 연계되어야 하며 실제 기술이 개발되면 임대농장에 먼저 적용한 후 주변의 집적화 생산단지를 거쳐 전국적으로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프로세스”라며 “혁신밸리는 기술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것이지 생산단지를 할 것이냐 아니냐는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혁신밸리 추진을 두고 기존 농민들과 충돌은 불가피한 것일까. 이 관계자는 “일단 예산이 확정된 후 9월 중 농민단체 사무처장 협의체 등의 자리를 통해 이해를 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