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부모·자녀 사이 거리는 어느 정도가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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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서치>는 친숙하면서도 또한 낯선 사이버공간에서 딸의 삶을 찾아가는(서칭) 아빠의 모습을 그린 추적 스릴러지만, 본질적으로 아빠와 딸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제공해주지 않는다.

영화 <서치>의 한 장면./소니 픽쳐스

영화 <서치>의 한 장면./소니 픽쳐스

지난 8월 29일 개봉한 <서치>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영화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첫 장면부터 친숙하지만 낯설다. 컴퓨터 윈도 화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유지된다. 실사 화면은 거의 없고 다만 노트북과 모바일의 페이스북 화면과 구글 검색화면이 이야기 진행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거기에다가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유튜브의 일인 미디어로 현재와 과거를 재구성한다. 폐쇄회로(CC)TV 동영상은 이야기의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전화도 페이스타임(인터넷 화상전화)으로 대체한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딸을 잃은 아버지는 화상회의를 통해 업무를 본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친숙하지만 따지고 보면 비현실적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존재, 아빠와 딸

장르로는 스릴러를 표방하지만 내용면에서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다. 납치와 실종 그리고 경찰 수사라는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코드를 넣었기에 스릴러를 표방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복잡한 화면의 전개 속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풀어가는, 어찌보면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형식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주는 스릴러물로 볼 수 있다. 또한 가족과 세대라는 보편적으로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사이를 낯설게 하는 다양한 현대사회의 장치들로 인해 ‘현대의 몰인격화된 가족’을 형상화해 낸다. 현실에서 말 그대로 ‘서치(search)’를 해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가족 간의 거리는 물리적 거리와는 별개로 정서적 소통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 한 가족이지만 가깝지 않은 그 복잡미묘하고 어려운 관계를 현실로 나타내는 것 자체에서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징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스릴러이자 가족 드라마이다.(편집자 주: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남자주인공 아빠와 외동딸은 일찍 암으로 죽은 엄마에 대한 추억 때문에 서서히 멀어져가는 상황이다. 집이라는 같은 공간에서도 가족 구성원들이 각기 점유하는 시간이 달라 소통할 기회도 거의 없다. 그들은 같이 살지만 실제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빠는 딸의 피아노 레슨비를 직접 딸에게 주지 않고 그냥 놓고 나간다. 딸이 당연히 레슨을 잘 받고 있겠지 생각하면서. 그러나 딸은 죽은 엄마와의 추억이 떠올라 이미 오래전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지 않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결과적으로 소통은 이뤄지지 않은 채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부모세대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성장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구현방식에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갈등은 불가피한 일이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던 딸이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빠는 늘 그랬듯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딸의 소재를 찾지만 오리무중이다. 평소와 다름을 느낀 아빠는 딸의 자취를 이 영화에서 구현하고 있는 SNS 추적이라는 방식으로 찾아간다. 아빠는 자신이 알던 딸이 아닌, 낯선 딸의 모습에 당혹감을 가진다. 지금껏 자신이 알았던 딸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오른쪽)이 영화 <서치>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소니 픽쳐스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오른쪽)이 영화 <서치> 관객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소니 픽쳐스

언제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줬던 딸은 실제 학교와 급우들 사이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를 유령 같은 존재였다. 영화는 그런 딸의 모습을 급우들의 심드렁한 진술로 재구성해낸다. 딸은 아빠를 대하듯이 급우들을 대했고 그냥 그렇게 사라져버렸다. 스터디 수업에서도, 산행 모임에서도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딸의 모습은 유튜브 일인 방송에서 발견된다. 딸은 일인 방송을 하면서 SNS 채팅창으로 한 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비로소 딸의 속마음을 알게 된다. 또 왜 딸이 유령처럼 살았는지를 알게 된다.

물론 이런 광경은 사이버 시대가 아니라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아픔을 가족 누구도 아닌 전혀 모르는 타인 같은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은 이전에도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이전과 달리 사이버시대에는 그 대상이 신원을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으로 인해 위험성도 병존한다. 또 익명의 다수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면서 감정의 폭을 넓혀가기도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기도 한다. 딸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자신의 성장을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죽은 엄마와의 기억을 공유하는 아빠는 아니었다.

낯선 딸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는 아빠

대신 그 익명성의 가장 끝 쪽에 존재했던 위험을 끌어온다. 그 결과는 실종이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딸이 10대 중반에 접어들면 아빠와 속 깊은 대화를 하기 어렵다(물론 이 의견에 반대를 하는 아빠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 중 다수는 자신은 가정적이고 자녀들에게 너그럽고 소통이 잘된다는 착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실종이 확실해진 후 경찰이 개입하고 수사가 진행된다. 담당 수사관도 역시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다. 수사관과 아빠의 대화에서 아빠는 또다시 자신과 딸의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는 것을 느낀다.

최근의 경찰 사건 수사방식도 기본적으로 사이버 공간에 기반한다. 발로 뛰는 경찰도 물론 존재하지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통해 증거를 찾고, 유튜브 검색 및 CCTV 화면 추적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다. 이 영화 <서치>는 그런 시대적 흐름을 가장 잘 읽은 영화문법을 가지고 있다. <서치>의 제작진은 이를 ‘스크린 라이프’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자그마한 모니터나 모바일 속에서의 움직임으로도 인간의 내면과 삶, 걱정까지도 느낄 수 있고 범죄 수사에도 활용되는 스크린 라이프.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일상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친숙하면서도 또한 낯선 사이버공간에서 딸의 삶을 찾아가는(서칭) 아빠의 모습을 그린 추적 스릴러지만, 본질적으로 아빠와 딸이 어느 정도의 거리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관객 각자가 배우들의 감정선에 따라 연결된 독백으로 맞춰보면 될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국내 개봉작 제목과 같은 ‘서칭’이다. 관객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가족 간의 거리를 얼마나 서칭하고 있을까.

<배상훈 전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장(프로파일러)>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범죄도시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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