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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특구’ 장생포항 사실상 개점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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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고기 수급 어려워 비싼 가격에 찾는 손님들 없어 문 닫는 식당 늘어

울산 남구 장생포항은 고래고기로 유명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장생포항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래잡이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다. 지금이야 밍크고래, 돌고래 정도만 앞바다에서 가끔 눈에 띌 뿐이지만 과거 장생포 앞바다에는 귀신고래,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밍크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대왕고래, 참고래 등 다양한 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8월 14일 울산 남구 장생포항 고래고기 식당 거리 전경. 점심시간이지만 거리에 사람이 없다. (해당 식당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 류인하 기자

8월 14일 울산 남구 장생포항 고래고기 식당 거리 전경. 점심시간이지만 거리에 사람이 없다. (해당 식당은 기사내용과 관계없음.) / 류인하 기자

‘귀한 음식’으로 취급받는 고래고기가 처음부터 귀한 음식은 아니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부산, 포항, 울산 등지에서는 고래고기가 소고기, 돼지고기를 대신하는 값싼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그런데 1986년 세계포경위원회에서 포경을 금지하면서 고래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장생포항에서 만난 울산 토박이 박병오씨(71)의 이야기다. “내가 배 타고 나갔다가 들어오면 천지로(사방에) 고래고기 파는 아즈매(노점)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1970년대~80년대 초) 고래고기가 억수로 흔했는기라. ‘이거 한 토막 썰어 주소’라고 말하면 일회용 도시락에 탁 담아주는데 뚜껑이 안 닫혀. 고무줄 똘똘 묶어서 집에 갖고 오면 애들 한 점씩 먹이고 내도 (소주) 한 병 까서 먹는데 다 먹지도 못하는기라. 그만큼 양이 많았어. ‘좀 좋은 고기 주이소’ 하면 5000원, 거의 다 팔린 거 모아주면 1000원 받기도 하고…. 지금이야 (너무 비싸서) 못 먹지. 우리 젊을 때야 많이 먹어 그 맛을 알지, 요새 젊은 사람들이 그거 냄새난다고 먹나, 안 먹지.”

점심시간에도 식당들 텅텅 비어

울산광역시는 장생포항을 ‘고래특구’로 운영하고 있다. 장생포 앞바다 지척에는 장생포 고래박물관 및 체험관 등이 위치해 있고, 길 건너 맞은편에는 고래고기 식당이 있다. 문화체험도 하고, 고래고기도 맛보고 가라는 뜻이다. 1995년 고래 대축제를 시작으로 매년 고래축제도 연다. 그러나 지난 14일 찾아간 울산 남구 장생포항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였다. 한창 점심식사를 할 시간대였지만 고래고기 식당으로 발길을 옮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날 울산은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한낮 최고기온은 35도를 기록했다.

20년째 장생포항 앞에서 고래고기 식당을 운영해 온 A씨는 “곧 가게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팔아도 돈이 남는 구조가 더이상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2009~2010년까지만 해도 밍크(고래고기) 한 상자에 3만~4만원이면 들여왔거든요. 지금은 얼만지 압니까. 12만원입니다. 손님들 와가지고 12만원짜리 제일 큰 거 수육 한 접시 깔고 나면 남는 것도 없습니다. 거기다 사람도 써야지요, 가게 자릿세도 내야지요, 그런 거 다 빼도 한 상자에 3만~4만원만 하면 장사하고도 (이윤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고래고기도 유통이 제대로 안 되고 그나마 파는 것도 너무 비싸게 들어오니까 우리가 그 돈 내고 장사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접어야지요.”

다른 가게 사정도 A씨 가게와 다르지 않았다. B씨는 “(오늘) 지금까지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가게 안을 들여다봤다. 한창 일할 시간이지만 종업원 3명은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B씨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이상하게 울산도 같이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연관성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고래고기 식당은 정찰제로 운영한다. 가격은 가게마다 거의 동일하다. 오베기(꼬리), 대창, 창자, 고래위, 우네(고래 아래턱~배꼽 위), 껍질, 갈비살, 뱃살, 지느러미살 등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모듬’은 8만~15만원, 수육은 6만~12만원에 판매된다. 결코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가격은 아니다. 맛은 어떨까. 90년대 말까지 고래고기를 자주 먹었다는 이상태씨(64)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맛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고래가 원래 육지동물이었기 때문에 살코기 자체가 육고기 맛이 많이 난다”면서 “생선회 맛이라기보다는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나면서도 육회의 쫄깃한 고기 식감이 있다”고 했다. 고래는 부위별로 맛이 제각각이라 한 가지 맛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고래고기 식당이 점점 문을 닫는 이유는 무엇보다 장사가 안 되기 때문이다. 현지인들은 ‘비싼 가격’ 때문에 장생포에서 고래고기를 먹지 않는다. 관광객들 역시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에게나 고래고기가 선호의 대상일 뿐 젊은 세대들에게 고래고기는 낯선 존재였다. 서울에서 여행 온 C씨는 고래고기 식당 사이에 위치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점심을 때웠다. C씨는 “솔직히 낯선 음식이기도 하고, 고래를 먹는다는 게 뭔가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는다는 기분이 들어 처음부터 고래고기를 맛볼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택시기사 D씨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기서는 너무 비싸서 (고래고기를) 못 사먹는다”면서 “삼산동 농수산물시장에 가면 곱식이(돌고래의 울산 사투리) 같은 걸 파는데 우리는 그런 거 좀 사다가 한 점 먹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고래고기 전문점은 관광객들이나 외지인들 접대할 일 있을 때 와서 먹는 곳이지 현지인들이 전문점까지 와서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실제 이날 이곳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토스트전문점과 김밥류 분식점,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등 세 곳이었다. 그린피스가 2012년 내놓은 ‘사라지는 고래: 한국의 불편한 진실’ 자료에 따르면 국제포경위원회(IWC) 2005년 연례회의 사전 특별회의에서 제시된 국내 고래고기 전문식당은 50개로 이 중 절반이 울산에 위치하고 있었다. 소비되는 고래고기는 연간 150톤으로 당시 추정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울산은 여전히 가장 많은 고래고기 소비지역이지만 이곳 역시 쇠퇴하고 있다.

여전히 근절되지 않는 불법유통

고래고기 식당 주인 A씨는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고래고깃집이 대로변에 14~15곳 정도 됐는데 지금은 8~9곳 정도만 장사를 하고 나머지는 다 문을 닫은 상태”라고 했다. 이어 “우리 가게는 그래도 다른 곳에 비해 장사가 잘되는 편이라고 했는데도 우리 가게가 접을 정도면 다른 곳은 안 봐도 뻔한 일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한낮의 거리는 손님을 찾는 식당 주인과 담배 피는 중장년 남성들, 아이를 데리고 여행 온 관광객 몇 팀만 눈에 띌 뿐 한적했다.

일부 주민들은 경찰이 고래고기 포획 및 납품업자 등을 대거 검거하면서 사정이 나빠졌다고 주장했다. 한 주민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경찰이 고래잡이들을 전부 다 구속시키는 바람에 고래를 잡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밍크고래는 그물에 걸려 죽은 것(혼획)이 1년에 많아봐야 80마리 내외이고, 울산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 유통이 되려면 80마리로는 어림도 없다”고 했다. 결국 포획(직접 사냥)을 통한 유통이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고래사냥이 불법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혼획은 허용하고 있다. 혼획은 고래 외 다른 어종을 잡기 위해 쳐놓은 그물에 고래가 우연히 걸린 것을 말한다. 이 경우에도 고래를 발견한 어민이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해양경찰서에 신고한 뒤 ‘고래류 유통증명서’를 발급받아야만 수협 위판장에 팔 수 있다. 그러나 내부고발이나 신고가 없는 한 수사기관이 일일이 적발할 수도 없어 불법유통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한 고래고기 전문점 주인은 “나도 단속에 걸려 (고래고기를) 압수당한 적이 있다”면서 “유통증명서도 소매로 조금 떼왔다고 하면 사본(실제로는 허위증명서)을 갖고 있어도 어느 정도 눈 감아 주는 게 있다보니 이 동네에서 장사하는 가게들로서는 조금이라도 이윤을 남기려면 포획 고래인 걸 알면서도 (납품)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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