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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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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고갈 우려와 세대 갈등 프레임에 밀려 지속가능성 신뢰의 문제 외면

직장인 김모씨(36)는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을 접한 뒤 자신이 은퇴하면 다달이 받게 될 연금액수가 궁금했다. 국민연금 가입내역을 확인해본 결과 김씨는 현재 30만원이 조금 넘는 보험료를 매달 내고 있었다. 회사에서 받는 급여명세서에는 정확히 그 절반인 15만원 정도가 월급에서 자동적으로 납부되고 있었다. 나머지 반을 회사가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20대 시절인 2006년부터 첫 직장생활을 시작해 중간에 4대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자리를 잡거나 무직생활을 하는 등 굴곡이 있었지만 그동안 1590만원 정도를 납부해 왔다.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보다 얼마를 받는지다. 앞으로 계속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직장에서 만 60세까지 일한다고 치면 받게 될 연금은 현재가치로 87만원 정도일 것으로 계산됐다. 내는 돈의 2.86배를 연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국민연금공단 강남사옥 로비의 모습. /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국민연금공단 강남사옥 로비의 모습. / 연합뉴스

납부한 돈의 두 배를 훨씬 넘게 돌려받을 수 있다면 확실히 남는 장사다. 게다가 내는 돈의 반은 회사가 부담하니까 사실상 수익률은 5배를 넘는다. 그런데도 김씨를 비롯해 국민연금을 납부하는 시민들은 미심쩍어 한다. 향후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돌려받지 못할 것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김씨가 현행 연금 수급연령인 65세가 되는 2047년 무렵이면 그동안 쌓아둔 연금액이 소진될 것으로 예측되는 시점이 멀지 않은 때다. 앞으로 3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운용을 잘못해 막대한 손실을 입을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이 고갈되는 먼 미래가 온다 해도 정부가 지급을 보증할 것처럼 말하지만 정권과 정책에 따라 어떻게 바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낸 보혐료, 제대로 돌려 받을까

국민연금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불확실한 노후에 대비하는 공적 차원의 사회보험이다. 자신의 직업과 직장, 소득이 미래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개인이 가장 신뢰할 만한 국가에 최소한의 소득 안전망을 위임한 셈이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도 이러한 신뢰의 문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인빈곤율이 가장 높은 한국 사회의 현실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탱해야 할 미래세대인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저소득 문제가 겹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로 늘어나는 노년층을 뒷받침할 경제적 동력이 청년층에게 부족해 보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을 믿고 보험료를 낸 젊은 세대가 미래에 연금이 필요한 시기가 와서 그동안 들인 노력을 돌려받지 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신의 문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신뢰와 불신이 엇갈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쟁에 쉽사리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논란의 주제가 되고 있는 연금 고갈시기나 고령화에 따른 지속가능성 문제 뒷면에 자리잡고 있는 보다 기본적인 요인은 외면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바로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의 지속가능성은 재정이나 분배구조만큼이나 사회적 합의와 연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면 현재로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각국의 공적연금제도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지표들 중 가장 대표적인 ‘멜버른-머서 글로벌 연금지수’의 2017년 결과를 보면 한국의 연금제도는 30개국 중 25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6년의 46점보다 약간 상승했지만 47.1점을 기록해 사실상 가장 낮은 등급인 D등급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지속가능성에서 46.8점, 적정성에서 46.9점, 완전성에서 47.9점을 받아 세 가지 주요 항목 모두에서 D를 받았다. 종합지수 78.9점을 받아 2012년부터 6년 연속 1위를 지킨 덴마크나 네덜란드(78.8점), 호주(77.1점)에 비해서는 물론이고 종합지수 평균인 59.9점보다도 크게 낮았다. 연금제도 도입 초기 국가에 적용되는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은 나라가 없다는 점을 보면 국민연금은 국제적으로도 낮은 평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이 낮게 평가받는 배경에는 재정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공적연금제도를 굴리는 정부와 사회 전반의 지속 의지도 반영돼 있다. 백혜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멜버른-머서 지수’와 같은 지표들에서 정의한 지속가능성은 재정적 지속성을 넘어서 사회적 지속성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쉽게 말해 시민들이 연금제도를 얼마나 더 유지하고 더욱 안정적으로 운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하고 있느냐에 따라 지속가능성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이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도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은 세대·계층 간 연대의 지속과 제도에 대한 신뢰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며 “노인빈곤 해소라는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해 사회통합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사회적 동의를 확보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존속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연금은 지속가능성 하위권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의 공적연금이 지속가능한지를 두고 시민들의 의문이 커지는 것 역시 재정고갈과 세대 간 갈등과 같은 프레임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 합의는 뒷전으로 밀려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의 규모는 지난 5월 기준 634조원에 달하고 자산보유액이 최고점에 달하는 2040년이 되면 규모가 2561조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공단이 비교적 낙관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예측한 결과지만 관련 연구자들 역시 현행의 적립방식을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규모가 공단 예측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물론 이후 고령화에 따라 노년인구 비중이 높아진 여파로 연금 규모는 줄어들어 모두 소진될 것이라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적립된 연금이 모두 소진됐거나 다양한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필요한 연금을 그때마다 보험료로 걷어 지원하는 ‘부과방식’으로 바꾼 나라들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거친 바 있다. 부과방식을 시행하고 있는 독일이나 이미 연금이 소진된 후에도 이전까지의 공적연금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등의 예에서 보듯 사실상 고령화를 겪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재정 고갈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넘겨왔던 것이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경우 단시간 안에 고갈돼 세대 갈등이 전면화되거나 재정운용이 삐걱거릴 정도의 문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문제는 오히려 연금 고갈과 같은 재정적 문제보다는 국민연금이 원래의 취지인 노년층 소득감소를 적절히 보완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의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느냐에 있다. 국민연금 실질 소득대체율은 지난해 기준 24%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에 가입한 기간 동안의 평균소득을 100으로 볼 때 연금 수령액은 평균 24 정도에 그친다는 얘기다. 때문에 소득대체율 인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했다. 대선 당시 이 비율을 50%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한 문 대통령은 최근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과열되자 8월 1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연금 개편은 노후소득 보장 확대라는 기본 원칙 속에서 논의될 것”이라며 논란의 진화와 함께 당초 정책방향을 재확인하는 데 나섰다.

하지만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한편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지려면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가장 당면해 있으면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리는 문제는 바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문제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5년마다 한 차례 이뤄지는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국민연금 기금운용계획 등이 새롭게 수립된다. 최근 정책자문안과 공청회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올 10월이면 향후 5년을 넘어 장기적인 재정운용 및 제도개선 방향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론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보험료를 더 내더라도 연금 지급액을 더 늘리느냐 아니면 현행 수준을 유지하느냐의 방향이 결정되는 기로에 놓인 셈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1993년 3%에서 6%로 첫 번째 인상을 거친 뒤 1998년 9%로 올라 현재까지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국민연금 도입 이후 1998년까지 70%였던 소득대체율(명목)은 점차 낮아져 2007년 당시 여야 정치권의 합의로 40%까지 떨어졌다. 2007년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 재정계산을 거쳤지만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라는 기본 골격은 변함 없이 유지돼 왔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난관

노인빈곤율이 여전히 OECD 1위를 유지하는 한편, 정부의 국내총생산 대비 공적연금 지출 비율은 2.6% 수준에 불과해 OECD 평균 8.2%에 크게 못 미치는 현실 탓에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모두 변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반면 국민들의 재정 고갈 우려가 높은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그에 못지 않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구조라는 비판을 피하려면 보험료율은 높이더라도 국민연금 외의 노후소득 보장을 보완하는 대책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내부에서도 사회적 합의에 걸맞은 방안을 내기 위해 고심 중이다.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은 국민연금이 준조세에 해당하는 만큼 당장 반발여론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인상에 방점을 찍는 쪽에서는 현재의 노년층 소득감소와 불평등 문제를 하루빨리 손봐야 한다는 근거를 든다. 노인빈곤이 고령화와 맞물려 나타난 결과 중 하나는 연금 수급에서의 불평등이다. 한국을 비롯해 OECD 회원국 전반에서 저소득자는 고소득자보다 기대수명이 더 낮은데, 더 나아가 저소득자의 연금총액은 13% 더 적었다. OECD는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서 “고령화 때문에 사회·경제적으로 분류된 집단에 따라 격차가 확대되는 한편, 그에 부수되는 다양한 요인들까지 결합해 다음 세대로 갈수록 소득불평등을 포함한 삶의 여러 분야에서의 불평등이 서로 연계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빈곤과 불평등이 노년층을 넘어 사회 전체로 파급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유빈 연구위원 등이 쓴 ‘고령화 대응 노후 소득보장 정책과제’ 보고서를 보면 고령화에 따라 노인인구 비율이 늘면서 65세 이상 고령층의 높은 빈곤율이 전체 빈곤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다. 김 연구위원은 “노인인구의 열악한 경제상태가 전체 빈곤율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으며,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성비의 변화가 전체 빈곤율을 증대시키는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향후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노인빈곤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며, 노인빈곤율뿐만 아니라 전체 빈곤율도 지속적으로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국민연금은 시민들의 불신을 받고 있으면서도 가장 주요한 노후대비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통계청의 ‘2017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주요한 노후대비책이 국민연금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53.3%로, 예·적금(18.8%), 사적연금(11.4%)보다 높았다. 국민연금공단이 “적립금이 소진돼도 미래세대가 연금 혜택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높은 의존도 때문이다.

한편 대부분의 국민들이 국민연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국내의 노후 대비 공적연금 구조를 다양한 연금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쪽으로 개편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멜버른-머서 지수’ 결과를 발표한 호주금융센터와 글로벌 컨설팅사 머서(MERCER)는 한국의 연금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사항으로 ‘중소기업의 퇴직연금 도입 가속화’와 ‘저소득층 연금 가입자에 대한 지원 확대’ ‘퇴직연금의 연금 지급 비중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머서코리아 황규만 부사장은 “한국은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심화되는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공적연금과 더불어 상호 보완 역할을 하는 퇴직연금제도의 빠른 정착이 중요하다”며 “퇴직연금을 도입한 회사에서도 사후관리가 부족한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법적 개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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