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GB 요금제, 통신사들 노림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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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요금제에 데이터 혜택 늘려 비싼 요금제로 가입자들 유도

2월 LG유플러스가 속도·용량 제한 없는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이동통신 3사의 요금제 경쟁이 불붙었다. KT는 5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로 개편하는 요금제 개편을 단행했고, SK텔레콤도 7월 요금제 개편안 ‘T플랜’을 내놨다. 이 개편 흐름 아래에는 정부의 통신비 인하 드라이브 정책이 있다.

SK텔레콤 홍보모델이 가족 간 데이터 공유 요금제 ‘T플랜’을 선보이고 있다./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 홍보모델이 가족 간 데이터 공유 요금제 ‘T플랜’을 선보이고 있다./SK텔레콤 제공

문재인 정부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펼치면서 보편요금제 도입을 추진해 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월 2만원대에 음성통화 200분,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도입법안을 6월 말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보편요금제 도입을 결사 반대하는 이통사들은 보편요금제에 상응하는 요금제를 내놓으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다. 300MB에 묶여 있던 저가요금제 영역의 데이터량을 늘려 보편요금제보다 나은 요금제를 내놨다는 명분을 챙기고 데이터를 무제한 쓸 수 있는 요금제를 늘려 고가요금제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100GB 이상 쓰는 이용자는 1%도 안 돼

이번 개편에서 이통사들이 주력 상품으로 내세운 것은 ‘100GB 요금제’다. 이 요금제는 대다수 이용자들의 이용 패턴과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데이터 제공량 차이가 더 커져 저가요금제 가입자와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이통3사에서 100GB 이상 데이터를 제공하는 요금제는 SK텔레콤 T플랜 ‘라지’ ‘패밀리’ ‘인피니티’, KT 데이터ON ‘비디오’ ‘프리미엄’, LG유플러스의 무제한 요금제 등 6종이다. 가격은 월 6만9000원에서 10만원에 이른다. 6월 기준 전체 LTE 스마트폰 가입자의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7.4GB, 무제한 LTE 요금제 가입자당 트래픽은 19.8GB를 기록했다. 무제한 요금제를 쓰는 가입자들 평균도 20GB를 쓰지 못하는 수준이다. 과기부 통계를 바탕으로 추산해보면 월 100GB 이상 쓰는 가입자는 1% 미만으로 파악된다. 100명 중 99명은 100GB를 다 못 쓴다는 뜻이다. 결국 이통사들은 혼자 다 쓰지도 못할 데이터를 제공하면서 더 비싼 요금제로 이동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SK텔레콤의 ‘T플랜’은 스몰(1.2GB, 3만3000원)·미디엄(4GB, 5만원)·라지(100GB, 6만9000원)·패밀리(150GB, 7만9000원)·인피니티(무제한, 10만원) 등 총 5단계로 구분된다. 저가 요금제인 스몰과 미디엄의 데이터 제공량 차이는 3배지만 미디엄과 라지 데이터 제공량 차이는 25배 정도다. KT의 ‘데이터ON’ 요금제도 비슷하다. ‘데이터ON’ 요금제는 LTE 베이직(1GB, 3만3000원)·데이터ON톡(3GB, 4만9000원)·비디오(100GB, 6만9000원)·프리미엄(무제한, 8만9000원) 등 4단계다. 저가 요금제인 LTE 베이직과 톡 요금제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은 3배지만 톡과 비디오 제공량 차이는 33배다.

KT데이터온 요금제로 개편

KT데이터온 요금제로 개편

이통사들은 무엇을 노린 것일까. 고가요금제에 데이터 제공량을 늘리고 혜택을 몰아주면서 고가요금제를 쓰게 하겠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SK텔레콤은 가족 결합 혜택을 내세웠다. 가입자가 가장 많은 1위 사업자로서 그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도다. 6만9000원인 100GB 요금제(라지)에는 가족에게 나눠줄 수 있는 혜택이 없지만 1만원만 더 내고 패밀리 요금제에 가입하면 150GB를 받아 20GB를 가족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결국 가족이 데이터를 나눠쓸 수 있으려면 한 사람은 8만원에 육박하는 돈을 내야 하고 가족 모두 SK텔레콤 가입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 이통사들은 고가 요금제에만 혜택을 몰아줘 기존 고객을 묶어두고 가입자당평균매출(ARPU)을 올리는 전략을 쓴다.

중저가 요금제 혜택 늘려야

이통사들이 보편요금제를 결사 반대하는 이유는 맨아래 요금제를 정부가 결정하면 그 위 단계 요금제가 다 흔들리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고가요금제를 유도해 가입자당 매출을 늘려온 구조가 어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통3사 모두 약속이나 한듯 2015년부터 3년 동안 최저가요금제 데이터 용량을 300MB로 고정해뒀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3년 동안 LTE 스마트폰 사용자 한 명당 평균 데이터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했지만 이통사들은 최저 요금제 데이터 용량은 손대지 않았다. 과기부 통계를 보면 평균 사용량은 2015년 1월 3.23GB에서 3년이 지난 2018년 1월 6.81GB로 2배 가까이 늘었고 트래픽 비중은 동영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이동했다. 2015년 3월 48.9%였던 동영상 비중은 2017년 12월 54.3%로 커졌고, SNS 비중도 같은 기간 15.8%에서 17.5%로 늘었다. 정부는 인가 대상자인 SK텔레콤에 여러 차례 최저 요금제 데이터 용량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소비자단체는 실질적인 통신비 인하를 위해서는 중저가 요금제 혜택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요금제별로 쓸 수 있는 용량 차이가 더욱 커져 윗단계 요금제를 쓸 수밖에 없는 개편안”이라며 “전체적으로 소비자가 내는 요금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통사들은 데이터 사용 추이에 대한, 공개되지 않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느 정도 데이터를 더 주면 위 요금제로 넘어올 수밖에 없다는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요금제를 개편해 고가요금제로 유도하고 있다”며 “3만~4만원대 요금제 혜택이 너무 적고 여전히 최저 요금제 데이터량이 1~1.2GB인 것도 문제다. 중저가 혜택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문자 텍스트 웹페이지 기준으로 한 번 웹페이지를 띄우는 데 0.5MB 정도 소요된다. 300MB 용량 요금제를 쓰면 600페이지 정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음악 1곡은 2~3MB, 웹툰 한 편 보는 게 4~5MB 정도 된다. 중저가요금제의 빈약한 혜택을 고가요금제에 몰아주는 이통사 요금체계는 결과적으로 저가요금제 이용자가 고가 이용자를 위해 요금을 더 많이 내는 구조를 고착시킨다.

이제 요금제 개편 국면에서 마지막 남은 통신사는 LG유플러스다. 2월 속도·용량 제한 없는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으며 요금제 경쟁의 불을 지폈지만 5월 KT가, 7월 SK텔레콤이 요금제를 개편한 뒤 LG유플러스는 중저가 영역 요금제 개편이 없는, 가장 소극적인 요금제를 운영하는 회사가 됐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현재 저·고가 등 특정 구간에 국한하지 않고 다각도로 신규 요금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LG유플러스가 중저가 요금제 혜택을 늘릴지 주목된다.

<임아영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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