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는 없는 ‘150조 보물선’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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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스코이호 발견” 둘러싸고 떠들썩… 소유권 문제 걸려 실제 인양까진 미지수

여름을 맞아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신작이 나온 걸까. 며칠 동안 대한민국은 보물선 소동으로 뜨거웠다. 주인공은 울릉도 앞바다 수심 434m에 잠들어 있는 러시아 배 ‘돈스코이호’다. 신일그룹은 지난 15일 150조원 가치의 금괴가 있는 보물선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선박을 찍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보물선은 순식간에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고 테마주로 주식시장은 들썩였다. 신일그룹이 판다는 신일골드코인도 덩달아 유명세를 탔다.

신일그룹이 지난 17일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사진.

신일그룹이 지난 17일 “돈스코이호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공개한 사진.

하나 하나 따져보자. 돈스코이호는 실존했던 배였나. 그렇다. 돈스코이호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도고 제독이 이끌던 일본 해군에 맞서 항전하다 항복을 거부하고 스스로 침몰한 러시아 순양함이다. 이름은 1300년대 모스크바 대공으로 리투아니아를 격퇴한 러시아 영웅 ‘드미트리 돈스코이’에서 따왔다. 최후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돈스코이호 부함장 블로킨 중령의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퇴항하던 돈스코이호는 일본의 빗발치는 포격 속에서도 항복을 거부한 레베데프 함장과 함께 1905년 5월 29일 울릉도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후에 러시아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레베데프 함장의 묘가 있는 일본 나가사키를 찾아 헌화했고, ‘돈스코이호’는 러시아 핵잠수함으로 부활했다.

역사적 사료가 있는 무용담이다. 러시아에서는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전한 것이 아니라는 근거로 돈스코이호 전투를 내세울 정도이니 유서가 깊은 배다. 실존한 배로 봐도 무리가 없다. 그렇다면 돈스코이호에 보물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부터는 ‘구전’의 영역이다.

구전으로만 전해져 온 러시아 순양함

당초 보물은 1905년 5월 28일(돈스코이호 침몰 전날) 대마도 근해에 침몰한 나히모프호에 실려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러일전쟁 후 전쟁포로로 잡혀 있다 돌아온 발틱함대의 한 사령관이 남겼다는 기록이 시초다. 기록에 따르면 나히모프호에는 군자금과 일본 정벌 후 쓸 자금으로 약 24조원에 달하는 금화와 백금괴 등 보물이 있었는데, 보물은 침몰 직전 돈스코이호로 옮겨졌다. 1980년 일본 해양개발주식회사는 나히모프호 보물 인양작업을 벌였다. 백금괴 17개는 인양됐지만 금화는 찾지 못했다. 아울러 러시아(당시 소련) 정부와 나히모프호에 대한 소유권 분쟁이 번지면서 인양작업은 1년 만에 끝났다.

나히모프호 소동이 가라앉자 보물선에 대한 관심은 울릉도 앞바다에 잠든 돈스코이호로 옮겨졌다. 한국의 도진실업은 1981년 5월 29일 해운항만청에 1200만원의 보험증권을 제출하고 매장물 발굴허가를 얻었다. 도진실업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부설 연구기관이던 해양연구소에 탐사작업을 의뢰했다. 하지만 탐사는 실패로 끝났고, 탐사작업을 진행한 도진실업 대표도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터진 시기에 단기금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돈스코이호는 발견되지 않았다.

1999년 8월 동아건설과 해양수산부 산하 국책연구기관 해양연구원(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밀레니엄 2000’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돈스코이호 탐사사업에 뛰어들었다. 동아건설이 탐사자금을 대고 해양연구원이 실제 탐사작업을 맡는 등 2004년 12월까지 4단계로 진행되는 대규모 보물선 탐사 프로젝트였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보물선 탐사작업을 본격적으로 지원한 배경에는 IMF(국제통화기금)가 있다. 구제금융을 받던 암울한 시기, 정부는 보물선 프로젝트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금 모으기 운동 등으로 ‘금’이 귀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부도위기에 몰렸던 동아건설 역시 보물선 탐사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의 침몰 전 모습. / 경향신문 DB

러시아 순양함 돈스코이호의 침몰 전 모습. / 경향신문 DB

실제로 밀레니엄 2000 공식 탐사기획서에는 탐사 기대효과로 ‘유물 발굴을 통한 기업 및 국가 재정에 막대한 기여’라고 명시돼 있었다. 지금은 돈스코이호에 금화와 금괴 200톤이 실려 있다고 부풀려졌지만 당시 해양수산부의 공식 허가문서에는 돈스코이호 내 금괴 추정량이 금괴류 500㎏에 불과한 것으로 적혀 있다.

밀레니엄 2000 프로젝트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2003년 5월 20일 탐사팀은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배를 발견했다. 위치도 파악했고 사진 촬영을 통해 증거도 남겼다. 다만 러시아와의 소유권 분쟁을 피하기 위해 돈스코이호 ‘추정’ 선박이라는 표현을 썼다. 동아건설의 보물선 탐사 소식이 알려지자 동아건설은 2000년 12월 15일부터 이듬해 1월 4일까지 주식시장에서 무려 17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호재에도 불구하고 2001년 6월 동아건설은 파산선고를 받아 상장 폐지됐고 2018년 현재는 회생절차를 거쳐 정상 운영 중에 있다.

동아건설과 해양연구원이 돈스코이호를 발견한 건 상장 폐지된 뒤였다. 채권단의 반대로 인양에 나서지 못했고 2014년 발굴 허가기간이 종료되면서 돈스코이호 탐사도 끝이 났다. 돈스코이호는 실존했던 배다. 2003년에는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배도 발견됐다. 하지만 돈스코이호에 ‘보물’이 있는지, 있다면 또 얼마나 있는지는 현재로서는 확인된 바 없다.

신일그룹, 발빠르게 코인 팔아 모금중

한 달 전에 세워진 신생회사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신일그룹이 돈스코이 인양작업을 하려면 발굴 보증금이 필요하다. 보증금은 매장물 추정가액의 1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신일그룹의 당초 홍보문구대로라면 매장물인 금괴 150조원의 10%인 15조원을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보증금 마련이 어렵다는 여론이 커지자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의 철근값 12억원의 10%에 해당하는 1억2000만원의 보증금을 납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증금을 납부한다 하더라도 실제 인양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발굴 승인 등을 관할하는 포항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는 “(신일그룹에서) 발굴 승인 신청을 한다 해도 선박 소유권 문제 등 국제분쟁 소지가 있기 때문에 승인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현재 이뤄진 탐사는 다큐멘터리 촬영을 목적으로 울릉군으로부터 공유수면 점용·사용 허가를 받아 진행됐다”며 “발굴 허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일그룹은 돈스코이호 인양자금을 마련한다며 자체 발행한 가상화폐 ‘신일골드코인’을 팔고 있다. 신일그룹에 전화로 코인 구매를 문의하자 상담직원은 “코인 구매는 임원진 개인 추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정식 가격은 1코인에 200원인데 임원진 추천을 통하면 120원에 구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원진에게 메신저로 코인 구매 상담을 요청하자 답이 왔다. ‘1인 구매 한도는 최소 100만원에서 최대 5000만원까지’로 지금 구매하면 코인을 덤으로 더 얹어준다고 했다. 1000만원을 자신 명의 계좌로 입금하면 코인 20만개를 ‘맞춰’준다며 오는 9월 거래소에 코인이 상장되면 ‘20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돈스코이호 소동은 이미 15년 전 발견된 배에 금괴가 있다는 오래된 소문을 의도적으로 결합해 띄운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보물선에 편승한 실체 없는 가상화폐가 현금으로 거래되고 있다. 발굴 관련 당국의 한 관계자는 “개인 사업자가 달나라를 탐사한다고 투자자를 모아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어쨌든 공유수면 사용 허가를 받았기 때문에 진행 중인 작업을 제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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