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를 올스타로 만든 ‘스나이퍼 집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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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정돈을 비롯한 디테일에 대한 꼼꼼한 습관, 성실함과 근면함은 타석에서 특별한 추신수를 만들었다. 추신수가 50경기 넘도록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은 그가 가진 특별한 ‘집중력’ 덕분이다.

마이클 커다이어는 메이저리그 미네소타를 대표하는 타자였다. 메이저리그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올스타에 두 차례 뽑혔고 2013년에는 타격왕에 올랐다. 2015시즌이 끝난 뒤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뉴욕 메츠와 맺은 FA 계약이 1년 남은 상태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연봉 1250만 달러를 받을 수 있었지만, 커다이어는 이를 포기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최고의 상태로 경기에 뛸 수 없다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야구를 떠나는 것이 옳다는 고집스런 판단이었다. 커다이어는 당시 자신의 메이저리거 생활을 정리하는 글을 <플레이어스 트리뷴>을 통해 밝혔다. 커다이어는 그 글에서 미네소타 시절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을 소개했다. 바로 ‘작은 것에 집중하라(Attention to details)’는 것이었다.

미 프로야구 텍사스의 추신수가 7월 9일 열린 디트로이트전에서 타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 프로야구 텍사스의 추신수가 7월 9일 열린 디트로이트전에서 타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라커 캐비넷’

추신수는 데뷔 14년째 시즌인 2018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대부분의 기록에서 최고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추신수는 5월 14일부터 전반기 마지막 경기까지 자신이 뛴 51경기에서 모두 출루를 기록했다. 텍사스 구단 역사상 최다 경기 연속 출루 기록이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어슬레틱스’는 추신수의 야구 배팅 장갑에 주목했다. 디 어슬레틱스에 따르면 추신수의 ‘라커 캐비넷’은 정리정돈 그 자체다. “빨간 장갑, 파란 장갑, 검은 장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고 전했다. 야구를 위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디테일에 대한 꼼꼼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부지런함이다. 텍사스 제프 배니스터 감독이 텍사스 감독이 된 첫해(2015년) 스프링캠프 때의 일이다. 감독 부임 첫해 스프링캠프의 첫날. 배니스터 감독은 리더답게 가장 먼저 출근하고 싶었다.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훈련지 라커룸에 도착한 게 새벽 5시였다. 추신수의 라커 앞에 이런저런 흔적이 남아있었다. 배니스터 감독은 “추신수는 이미 출근해서 훈련을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고 말했다. 배니스터 감독은 “스프링캠프 동안 추신수보다 먼저 출근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면서 “그날은 거의 잠을 안 잔 상태였다”고 말하며 웃었다.

추신수는 부산고를 졸업하고 곧장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시애틀과 계약했고, 주변의 모든 것과 싸워야 했다. 문화도, 환경도, 음식도 낯설었다. 심지어 포지션도 익숙하지 않았다. 최고의 좌완 투수를 꿈꿨던 18세 소년은 시애틀에서 외야수로 뛰는 게 좋다는 판단을 받아들여야 했다. 영어는 장벽에 가까웠다. 할 수 있는 건 누구보다 먼저 나오는 일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MLB.com’은 몇 년 전, 추신수의 FA 계약을 두고 ‘홀로 낯선 미국으로 넘어온 데다 투수에서 타자로 바꿔야 했던 겨우 18세 소년이 새벽 4시 30분에 제일 먼저 운동장에 나와 꿈꾸던 목표가 이제 이뤄졌다’고 전했다.

정리정돈을 비롯한 디테일에 대한 꼼꼼한 습관, 누구보다 먼저 나와 훈련을 준비하는 성실함과 근면함은 타석에서 특별한 추신수를 만들었다. 추신수가 50경기 넘도록 연속 출루 기록을 이어갈 수 있게 만든 것은 그가 가진 특별한 ‘집중력’ 덕분이다. 디테일과 부지런한 준비가 타석에서 특별한 집중력을 가능하게 만든다. 추신수는 이를 가리켜 “스나이퍼 같은 집중력”이라고 말했다. 추신수의 방망이는 일반적인 타자들의 방망이와 조금 다르다. 무게는 비슷하지만 방망이 헤드의 지름이 조금 짧다. 다른 타자들보다 더 가느다란 방망이를 들고 타석에 들어선다. 밀도가 높기 때문에 강한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가느다란 방망이는 제대로 맞히기가 더욱 어렵다. 추신수는 “항상 지금 이 공이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 공이라는 생각으로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 지독한 집중력 때문에 시즌 초반 문제가 생겼다. 추신수는 2018시즌 외야수보다는 지명타자로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추신수는 지명타자에 대비해 시즌을 준비했다. 보다 공격력, 특히 장타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추신수는 타구의 힘을 늘리기 위해 타석 때 투수를 향한 오른발을 높이 들어올리는 ‘레그 킥’을 준비했다. 힘을 실어 때릴 수 있다. 히팅 포인트가 바깥쪽 먼 곳에 만들어지는 바람에 몸쪽 공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 큰 문제는 머리의 움직임이었다. 고도의 집중력으로 투구를 판단하는데 머리가 흔들리면서 눈의 위치가 함께 움직였다. 투구 판단에 어려움이 생겼다. 추신수는 개막 직후 22경기에서 홈런 5개, OPS 0.803을 기록했지만 이후 10경기에서 출루율이 0.233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추신수는 5월 18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원정경기부터 레그 킥의 크기를 줄였다.

현역 선수 최다 출루기록은 어디까지

연속 경기 출루가 시작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추신수는 5월 14일 휴스턴과의 경기부터 매경기 출루를 빼놓지 않았다. 자신의 장기인 ‘스나이퍼 집중력’을 살리면서 추신수의 장기인 출루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전반기 동안 기록한 51경기 출루 기록은 현역선수 최다 기록을 넘어섰다. 이제는 은퇴한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타자들의 기록을 좇고 있는 중이다. 추신수의 변화는 집중력을 살렸고, 연속 경기 출루로 이어졌다. 결국 추신수는 데뷔 14년차에 처음으로 올스타에 출전할 수 있었다.

올스타전에서 추신수는 올스타의 자격을 증명했다. 스윙은 딱 1개면 충분했다. 추신수는 7월 18일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파크에서 열린 2018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2-2로 맞선 8회초 선두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에는 좌완 조시 해더(밀워키)가 있었고, 추신수는 지명타자 넬슨 크루즈를 대신해 대타로 나섰다. 해더는 올 시즌 좌타자 상대 53타수 중 3안타만 내주는 등 좌타 상대 피안타율 5푼3리의 ‘좌타 킬러’다.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팀을 이끈 AJ 힌치 휴스턴 감독은 추신수에게 대타 출전을 지시했다. ‘좌완 킬러’ 상대 좌타 추신수의 대타 출전은 예상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추신수는 올 시즌 해더와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다. 추신수는 해더가 몸을 푸는 동안 재빨리 클럽하우스에서 해더의 투구 영상을 살핀 뒤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바깥쪽 높은 공을 골랐지만 이후 속구 2개가 모두 스트라이크가 됐다. 해더는 올 시즌 좌타자 상대 2스트라이크를 잡은 다음 안타를 내준 적이 없다.(43타수 무안타) 가능성 제로의 상황에서 추신수는 단 한 번의 스윙으로 불가능을 뚫었다. 추신수는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시속 156㎞짜리 강속구를 가볍게 밀어때려 좌전안타로 만들어냈다. 데뷔 14년 만의 첫 올스타 출전에서 딱 한 번 휘두른 스윙으로 안타를 완성한 것이다. 스나이퍼 집중력이 올스타전에서도 빛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18살 소년이 새벽 4시30분마다 꾸던 꿈이었다. 오랫동안 변치 않은 노력은 결국 응답을 했다. 추신수는 올스타전 출전이 결정되던 날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연속 출루를 이어온 것은 나 혼자 만든 결과가 아니다.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고, 때로는 심판 판정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아주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건 야구의 신이 준 선물이다.”

<이용균 스포츠경향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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