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마르크스 주의자들이 왜 기독교에 주목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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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목사가 최근 내놓은 <죽은 신의 인문학>은 지난 몇 년간 위기감과 절망감 속에서 길어 올린 반성이자 희망의 발판이다.

2014년 봄. 10년 만에 한신대 교단에 선 이상철 목사(49)가 맡은 강의는 1·2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 필수 ‘기독교 인문학’이었다. 종교색이 짙은 과목인 만큼 첫 시간에 이 목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라”고 말했다. 10명 남짓 손을 들었을까. 그런데 마지못해 손을 드는 모양새에다 분위기까지 묘하고 어색했다. 마치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자백받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같은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했었지만 강의실에서 이런 느낌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죽은 신의 인문학> 저자 이상철 목사는 “신학과 인문학은 우리를 스쳐간 무수한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불러내는 것이고, 그 죽어간 사연을 대독하면서 같이 흐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죽은 신의 인문학> 저자 이상철 목사는 “신학과 인문학은 우리를 스쳐간 무수한 억울하고 안타까운 죽음을 불러내는 것이고, 그 죽어간 사연을 대독하면서 같이 흐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게 한국 교회, 한국 기독교가 처한 현실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세월호 참사까지 터지면서 한국 교회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싶었어요.”

한국 교회 현실에 대한 성찰 다뤄

‘개독교’가 된 교회를 향한 대중들의 신랄한 조롱과 냉소. 당황스러웠지만 그 지적은 어느 것 하나 뺄 것도 없이 맞는 소리였다. 사회 곳곳에서 한국 교회가 벌이는 ‘그로테스크한 소동’은 정신병의 증상과 유사했다. 그래서 처참했고 화가 났다. 목사로서 느끼는 모멸감의 정도는 절망적이었다.

“더 이상 추락해서는 안된다는 위기감이 컸습니다. 학생들에게 내게 몇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지요.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기독교, 즉 한국형 신흥종교 ‘개독교’는 절대로 기독교가 아니니까요. 참된 기독교를 제대로 공부하고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죽은 신의 인문학>(돌베개)은 지난 몇 년간 위기감과 절망감 속에서 길어 올린 반성이자 희망의 발판이다. 제목만 놓고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도 하다. 전통적으로 신학과 인문학은 대립·긴장관계에 있는 개념이다. 그는 이에 대해 “신학이 자족적이고 폐쇄적인 종교의 범주에 갇혀 있어서는 시대와 호흡할 수 없고, 당대의 인문정신과 소통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돼 있다. 신학자로서의 반성과 한국 교회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다뤄진 2·3부와 달리 1부에서는 근현대 철학사상의 흐름과 신학적 사상을 엮어냈다. 특히 그는 슬라보예 지젝,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등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학자들을 대거 호출했다. 신학과 마르크스주의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조응이지만, 실제 21세기 들어 이들은 신학을 인문학 담론의 키워드로 부활시켰다.

“로마제국이 무너지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이 사도 바울이 전한 예수의 메시지, 즉 기독교였습니다. 이 지점에 21세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집중했지요. 시쳇말로 하자면 ‘빨갱이들이 기독교에서 변혁을 위한 상상력을 찾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세계는 자본의 법칙을 내재한 제국이 지배하고 있으니까요. 2000년 전 로마제국처럼 기독교의 어떤 요인에 의해 21세기 제국에 균열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는 겁니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주의, 레비나스의 타자론 등 다양한 개념으로 신학적 접근을 시도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기독교의 본질은 명쾌하다.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인 환대를 실천하며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분과 차별은 사라져 모두 하나가 됩니다. 성경에도 정리되어 있지요.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내국인과 난민…. 과연 예수님이 지금 내 곁에 계신다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실천했던 삶. 이 점이야말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삶의 핵심적인 덕목이지요.”

그는 많은 한국 교회가 성경을 혐오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특히 최근 몇 년 새 불거진 동성애 문제와 여성혐오 등의 논쟁에서는 늘상 성경의 근거가 등장한다. 이에 대해 책을 통해서도 “성경은, 신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며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성경을 혐오의 도구 사용하는 것 반박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서울 서대문 한백교회(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87년 6월항쟁 뒤 세워진 교회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박사와 성공회대 박성준 교수가 함께 설립했다. 교회 이름은 한라에서 백두까지의 앞글자를 따왔다. 신자는 50명이 채 안되는 작은 교회다.

“설립 초기부터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않았어요. 안병무 선생은 50명을 한 공동체의 적정선으로 제시했지요. 그 이상을 넘어가면 서로 돌보고 살피며 나누기 힘들다고 봤어요. 그래서 이 숫자를 넘으면 분가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을 계승한 교회답게 신도들의 다수는 통일문제나 언론·시민운동 관련 운동가 출신들이다. 번영지상주의, 축복 일변도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염증을 느끼거나 권위적인 기성교회에 실망한 이들도 찾아든다. 목회자와 장로의 5년 임기제를 시행하고 있는 점, 남녀 동일 비율로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는 점은 기성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예배 방식도 좀 다르다. 일반적인 교회에서라면 목사가 신도들 앞에 서서 설교를 하는 형식이지만, 이 교회는 전체 신도가 탁자에 둘러 앉아 예배를 본다. 설교를 대체하는 ‘하늘 뜻 나누기’는 말 그대로 목사와 신도들이 성경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이다.

“얼마 전의 통계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신자는 970만명이라고 집계돼 있습니다. 이 중에서 150만~200만명 정도는 소위 ‘가나안 신자’로 분류됩니다. 현재 교회를 나가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매주 이런 분들 몇몇이 우리 교회를 새로 찾고 있어요. 놀랍고 고무적이죠. 퇴행적 모습을 보이고 맹신만을 강요하는 기성 교회에서 지쳐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을 갈구하며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지금 방황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런 분들이 합리적이고 바른 신앙공동체를 만나고, 그 공동체가 곳곳에서 뿌리내릴 수 있다면 한국 교회도 새 희망을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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