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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환받는 용산 땅에도 완전한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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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미군기지에는 2027년까지 ‘제1호 국가공원’이 들어선다.
하지만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당초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미 대사관 부지 제공 문제와 토양오염 문제 등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건축가 홍윤주씨와 비디오 아티스트 라지웅씨가 지난해 10월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담장 너머를 살펴보는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건축가 홍윤주씨와 비디오 아티스트 라지웅씨가 지난해 10월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담장 너머를 살펴보는 행위예술을 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1988년 8월 13일 <경향신문> 3면에 이런 칼럼이 실렸다. “세계 어느 곳의 미군도 차지한 일이 없는 도심 하고도 노른자위를 그들에게 선사했던 셈이다. 수 미터 간격으로 ‘무단출입금지’란 경고문이 나붙어 있는 그곳이야말로 한국 국민에겐 금단의 성역이다. 이제 미 8군사가 용산 주둔 40여년을 마감하고 한강 이남 이주를 결정했다고 한다. 앓던 이가 빠지기라도 한 듯한 시원한 낭보다.”

‘시원한 낭보’는 30년이 넘도록 현실이 되지 못했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출범 직후, 용산 미군기지와 미 대사관 이전계획을 공표했다. 이듬해인 1989년 서울시는 용산 미군기지 부지 전체를 민족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계획은 백지화 등 여러 부침을 거친 다음 2027년까지 ‘제1호 국가공원’을 만들겠다는 최근의 계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하면 2027년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돌려받는 데 100년, 공원 만드는 데 50년.” 김은희 ‘용산 미군기지 온전히 되찾기 용산주민 모임’ 대표의 우스갯말이다. 김 대표는 “하지만 용산 미군기지 부지가 전부 공원으로 되려면 정말 그 정도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용산 미군기지 면적은 265만4000㎡로 80만평이 넘는다. 국토부 관계자도 “현재 진행상황에서 2027년 개장은 어렵다고 본다”며 “차근차근 해나갈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공원 조성에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일까. 먼저 부지 반환 문제다. 신수연 녹색연합 녹색사회팀장은 “용산 미군기지가 반환된 이후 ‘국가공원’으로 조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80만평에 달하는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 부지 모두가 공원이 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라며 “하지만 미 대사관과 기지 내부의 드래곤힐 호텔, 헬기장 등의 잔류 부지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미군 떠난 자리에 미 대사관 온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미 대사관이다. 드래곤힐 호텔과 헬기장은 애초부터 있었던 시설이고 이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호텔과 헬기장 등을 두고 “미군이 잔류하는 이상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남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한·미연합사령부 일부가 용산 미군기지 내에 남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용산에 남으려 했던 한·미연합사령부는 계획을 바꿔 연말에 용산에 위치한 국방부 영내로 이전한다.

하지만 미 대사관은 다르다. 기존 시설이 아니라 광화문에 있는 미 대사관이 용산 미군기지 내로 옮겨온다. 이는 2005년 한·미 양국 간 합의에 따른 것으로, 미 대사관 공관과 부속건물들이 차지하게 되는 면적은 2만3000평에 이른다. 제임스 윌튼 주한미군 기지이전사업단장은 올해 초 “수년에 걸친 계획과 준비 끝에 미 대사관 공관을 캠프 코이너 북측에 신축하게 되는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반환받는 용산 땅에도 완전한 봄은 오는가

이를 두고 용산구민 김청일씨(78)는 “미국에는 의미있는 일일지 모르지만 후손을 생각하면 절망적인 일이다”라고 운을 뗐다. 김씨는 캠프 코이너가 자리잡고 있는 남영동에서 60년을 살았다. 그동안 미군기지와 관련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기지를 둘러싼 담장이 답답하고 개발이 제한된 것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국토방위’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체념한 채 지냈다.

김씨가 미 대사관 이전에 반대하고 나선 건 2년 전부터다. 그는 “미 대사관 이전이 2005년에 결정됐다고 하는데 어떻게 주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결정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미군기지는 통일이 되거나 하면 언젠가 떠날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미 대사관은 미국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떠나지 않는다. 우리야 괜찮지만 후대손손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미 대사관이 들어오면 지금처럼 높은 담장이 쳐지고 그 주변에는 전경들이 왔다갔다 할 것이다”라며 “용산 미군기지가 제1호 국가공원으로 바뀐다고 하는데 그런 풍경은 국가공원 위상에 맞지 않다. 어느 나라 국가공원에 2만 평이 넘는 외국 대사관이 있나. 지금은 주민들이 다 같이 반대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미 대사관이 들어올 부지 입구인 18번, 19번 게이트는 폐쇄된 상태다.

잔류 부지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갈 길은 멀다. 오염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신수연 팀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 보면 전국의 미군기지 중에서도 용산 미군기지에서 오염사고가 가장 많이 났다”며 ▲2000년 한강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 ▲2001년 녹사평 기름유출 사고 ▲2006년 캠프킴 기름유출 사고 ▲2015년 탄저균 불법반입 등을 예로 들었다.

문제는 이 같은 사고들이 공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제보 혹은 미군기지 외부에서 우연한 계기로 발견됐다는 점이다. 2001년 녹사평 기름유출 사고는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의 터널 내 맨홀에서 기름 유출이 보고되면서 조사에 들어갔다. 서울시가 펴낸 ‘녹사평역 지하수 오염 성분 정밀분석 보고서’는 유출된 기름이 미군기지 내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에 시판 중인 휘발유와 성분이 달랐기 때문이다.

2006년 캠프킴 기름유출 사고도 비슷하다. 캠프킴은 남영역에서 삼각지 사이에 있는 미군기지다. 김은희 대표는 “캠프킴 인근 빌딩 지하에서 전기공사를 하던 중에 기름이 나왔다. 미군기지를 의심했지만 미군 측은 아니라고 했다”며 “하지만 이후 미군이 캠프킴에서 포클레인을 가지고 땅을 파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하 기름탱크를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가 확인 못한 기름유출 사고만 79건

한국 정부가 확인하지 못한 사고도 많았다. 용산주민 모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녹색연합 등이 지난해 미국 정보자유법(FOIA)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용산 미군기지에서 84건의 크고 작은 기름유출 사고가 있었다. 신 팀장은 “이 중 한국정부가 주한미군으로부터 확인해 파악하고 있었던 사고는 5건에 불과했다”며 “우리 정부의 무능함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말했다.

84건의 사고를 뜯어보면 이 중 주한미군 자체 기준으로 ‘최악’에 해당하는 사고는 7건, ‘심각’에 해당하는 사고는 32건이다. 주한미군 자체 기준은 1000갤런(3780ℓ) 이상을 최악으로, 110갤런(400ℓ) 이상을 심각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이 84건에는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던 녹사평 기름유출 사고와 캠프킴 기름유출 사고는 포함돼 있지 않다. 확인되지 않은 사고가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

전문가들이 지난해 10월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담장 밖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문가들이 지난해 10월 용산 미군기지 메인포스트 담장 밖에서 토양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군기지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많은 것은 미군기지 내 주에너지원이 등유, 휘발유 등 유류이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내 숙소, 학교 등 모든 크고 작은 행정시설은 각각의 유류 저장탱크와 난방 보일러를 갖고 있다. 특히 땅 속에 있는 유류 저장탱크는 관리를 잘하지 않으면 어느 시점부터 얼마나 기름이 새어 나갔는지 모르는 일이 발생한다.

3억 든다던 정화비용, 왜 143억 들었나

따라서 용산 미군기지를 반환받게 되면 부지가 얼마나 오염됐는지부터 확인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군기지 반환절차는 SOFA 협정에 따라 2~4년이 걸리는 토지 반환절차를 거친 다음, 기지 시설 조사, 환경오염 조사, 오염 정화작업이 이어진다. 이후 SOFA 합동위원회에서 기지 반환을 최종 승인하면 문화재청이 문화재 조사를 실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염을 조사하는 주체다. 한·미 양국은 미군기지와 관련해 2009년부터 ‘공동환경평가절차’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동환경평가절차를 믿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2010년 부산 캠프 하야리아 사례 때문이다. 당시 공동환경평가절차에 따르면 오염부지는 전체 부지의 0.26%에 불과했다. 정화비용은 3억원으로 추정됐다.

부산시는 해당 결과를 믿고 “우리가 정화할테니 부지를 빨리 반환해달라”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막상 시민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토양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기지 전체 면적의 17.96%가 오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3억원으로 예상됐던 정화비용은 14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오염 평가 주체에 시민단체 등 민간이 들어가야 하는 이유다.

환경오염 평가 주체에 민간이 들어가는 게 가능할까. 실제 지역주민들이 오염 조사작업에 참여한 사례가 있다. 2005년 반환된 춘천 캠프 페이지가 대표적이다. ‘미군기지 되찾기 춘천운동본부’에서 활동한 나철성씨는 “다른 지역은 시민단체가 현장에 들어가기 어려웠는데 우리는 활주로 밑 지하터널까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캠프 페이지 지하에 핵무기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나씨는 이어 “그럼에도 미흡한 점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단체는 기지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했지만 국방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화작업 이후에도 이들은 전수조사를 요구했지만 역시 국방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권용범 춘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미군기지 내에 어떤 시설이 있었는지 확인할 것 ▲부지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할 것 ▲전수조사가 어렵다면 시민들 의견을 반영해 조사 지역을 정할 것 ▲정화작업 이후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이 포함된 검증단을 꾸릴 것 등을 조언했다.

용산 미군기지는 특별법 개정을 통해 오염문제는 물론이고 미 대사관 이전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별법이 개정되면 서울시도 주체로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시는 미 대사관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관 건축을 위해서도 서울시 허가가 필요하다.

신수연 팀장은 “정부가 바뀐 이후 호텔과 헬기장, 미 대사관을 포함한 잔류부지에 대한 재협상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미 간의 모든 협정에서 ‘한·미 당국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경우’ 재협상이 가능하다. 제1호 국가공원을 제대로 만들기 위한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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