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숍 화장품업계 ‘봄날’은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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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하락에 폐업설까지, 대기업 계열 브랜드도 고전 면치 못해

지난 6월 말, 대표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인 스킨푸드의 폐업설이 불거졌다. 스킨푸드 온·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 품절 상태가 장기화되며 화장품 관련 커뮤니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쓰던 제품을 미리 사두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스킨푸드 측은 “원부자재 수급이 지연돼 일부 매장의 제품 공급에 차질이 있었을 뿐 폐업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박았지만 스킨푸드로 향한 우려의 눈길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가맹점주들은 “몇 개월 전부터 본사에 새 주문을 넣어도 물건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니스프리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이니스프리 제공

이니스프리 명동 플래그십 스토어 전경/이니스프리 제공

업계는 스킨푸드의 이번 사태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몇 년째 지속되고 있는 경영난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들도 실적 하향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2000년 중저가 화장품 전성시대를 열었던 로드숍 화장품업계가 성장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드 여파로 암흑기 맞은 중저가 화장품

2004년 문을 연 스킨푸드는 식물성 성분을 활용한 화장품으로 소비자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카피로 명성을 얻으며 한때 국내외 700여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대형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2014년부터 수십억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스킨푸드의 지난해 매출총액은 1269억원으로 전년(1690억원)과 비교해 25% 가까이 떨어졌다. 영업손실 또한 10억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손실은 110억원에 달했다. 지난 2016년 590개에 달했던 국내 가맹점 수는 공급 차질 문제가 생기며 올해 3월 기준 544개까지 줄었다. 스킨푸드 관계자는 “국내 화장품 시장 정체가 계속되며 투자금액 중 생산금액 일부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복합적인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스킨푸드의 경영상황이 전반적 업황 악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로드숍 화장품 열풍을 불러일으킨 미샤는 실적이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미샤와 어퓨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앤씨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2016년보다 53.8% 감소한 112억2956만1000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2분기 이하 매출 하향곡선을 그려오던 에이블씨앤씨는 올 1분기 영업손실 12억원을 기록하며 결국 적자 전환했다.

대기업 계열 브랜드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모레퍼시픽그룹 브랜드인 이니스프리의 지난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1627억원, 3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 29% 감소했다. LG생활건강 더페이스샵의 1분기 매출액도 전년 동기 대비 13% 감소한 1301억원을 기록했다. 업계는 더페이스샵의 영업이익도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가성비’와 제품력를 앞세워 한때 국내 화장품업계를 호령했던 로드숍 화장품들이 이처럼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지난해 화장품 업계를 강타한 사드의 영향이 있다. 재작년 말 불거진 사드 갈등으로 중국의 한국 화장품 규제가 강화되고 중국 단체관광객이 급감하며 그간 중국 의존도가 컸던 화장품업계는 매출 직격탄을 맞았다. 미샤의 경우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30%대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으나 사드 갈등 직후 하락세를 걸었다. 하지만 중국인 관광객 수 감소에도 국내 고급 화장품 브랜드의 매출규모가 늘어났다는 점, 최근 사드 해빙 분위기에도 로드숍 화장품업계의 영업성적은 여전히 부진하다는 점 등은 업계의 위기가 단지 사드라는 대형 악재로 인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몇 년간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시장에 수많은 브랜드가 생겨나며 경쟁이 심화된 데다가 헬스앤뷰티(H&B) 스토어가 급성장하며 기존 로드숍 영역을 잠식한 영향이 크다고 말한다.

로드숍 화장품업계 ‘봄날’은 갔나

특히 빠르게 덩치를 키우고 있는 H&B스토어는 기존 화장품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다. CJ올리브네트웍스 올리브영의 매장수는 현재 11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뒤이어 GS리테일의 랄라블라(190개)와 롯데 롭스(108개)가 빠른 속도로 매장수를 늘리는 중이고 이마트도 부츠(13개)를 앞세워 공격적 확장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오프라인보다 가격을 낮춘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자리잡으며 기존 로드숍이 내세우던 ‘가성비’ 강점이 희미해졌다. 업계에선 기존의 방식으론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로드숍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은 더 이상 로드숍 화장품 브랜드만의 매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브랜드 리뉴얼, 해외 진출로 돌파구

위기에 빠진 로드숍 화장품 업체들은 우선 세 확장보다 기존 영역 지키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가맹점을 늘리기보다 기존 매장과 직영점을 강화하고, 플래그십 매장 등으로 채널을 다변화해 고객 접점 넓히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70여개의 가맹점이 사라진 더페이스샵의 경우 현재 직영점 비중이 전체 1056개 매장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네이처리퍼블릭은 701개 점포 중 3분의 2 이상인 454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 콘텐츠를 색다르게 체험할 수 있는 대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이미지 제고에 나서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이니스프리는 명동과 판교에 브런치 카페를 겸한 플래그십 매장을 운영 중이고, 미샤는 지난 5월 서울 강남에 첫 번째 플래그십스토어 ‘갤러리 M’을 오픈했다.

해외시장에 진출하거나 브랜드 리뉴얼 등으로 돌파구를 찾는 업체들도 있다.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9월 미국 뉴욕 유니언스퀘어, 지난 3월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와 하라주쿠에 매장을 연 후 지난달에는 호주 멜버른에 1호점을 오픈하며 오세아니아 시장까지 진출했다.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 중인 이니스프리는 호주를 비롯해 총 12개국에 진출해 해외 매장 총 584개점을 운영 중이다. ‘사드 광풍’에도 럭셔리 화장품 성장세를 기록한 LG생활건강은 중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로드숍 원조’격인 미샤는 12년 동안 미샤를 상징해온 브랜드 아이덴티티(BI)를 새롭게 바꿔 달며 재도약 승부수를 띄웠다. 한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화장품 편집숍과 온라인몰 등이 활성화하며 시장 내 ‘가성비’ 화장품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기존 방식과 차별화된 생존전략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노정연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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