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의 시대, 철도의 시대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편집실에서]운하의 시대, 철도의 시대

본의 아니게 MBC <PD수첩>에 얼굴이 나간 적이 있다. 인터뷰를 한 것도 아니었고, 단지 관련 인물이 중요한 발언을 하는 현장에 참석한 기자였을 뿐이었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4대강 수심 6m의 비밀’이었다.

감사원은 7월 4일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실태 점검 및 성과분석’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네 번째 이뤄진 이 감사 결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6m 수심으로 강을 파서 4대강 보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말이 ‘4대강 살리기’였지, 배가 다닐 수 있도록 한 ‘대운하 맞춤용’ 사업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PD수첩이 2010년 여름에 방송한 이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이 8년이 지난 후 사실 그대로 확인된 셈이다.  

<PD수첩> 프로그램에 얼굴이 나온 것은 국회에서 4대강 사업에 관한 설명회를 하던 때였다. ‘2009년 6월 24일 4대강 토론회’라는 자막이 나온다. 토론회라고 했지만 기억하기로는 이날 토론회는 그리 큰 규모도 아니었고 관심이 있는 보좌관들이 참석하는 소규모 설명회였다. 당시 야당인 민주당 쪽 보좌관 몇몇이 참석했다. 이날 취재 나온 기자도 한두 명에 불과했다. MBC 카메라가 온 것도 아니었고, 한 인터넷 언론의 카메라가 이날 설명회를 촬영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날 설명회에는 정부 출연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마스터플랜 연구 총괄책임자가 참석했다. 이 책임자의 발언은 뒷날 <PD수첩>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다. 물이 부족해서 낙동강에 8개 보를 세워 6억톤의 물을 확보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낙동강 본류에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류의 부족한 물을 계산하다보니 6억톤이 필요하다는 셈법이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본류에서 확보한 물을 어떻게 지류로 보내는지에 대한 방법은 없고, 일단 지류에서 물이 부족할 것 같으니 본류에서 확보해 놓는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이었다.

이날 설명회에서 나온 더 중요한 사실은 박창근 관동대 교수의 설명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박 교수가 연구 책임자에게 왜 6억톤이 필요한지를 따져 묻자, 연구 책임자는 아주 간단한 문제라면서 낙동강 본류를 수심 6m로 파면, 물의 양이 금방 나온다고 했다는 것이다. 강의 길이와 너비, 수심을 곱하는 산수가 등장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집착했던 수심 6m는 바로 배가 다니기 위한 길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기자에게 수나라가 운하를 만들어 옛날 중국이 큰 나라가 됐고, 독일이 운하로 대국이 됐다고 이야기했다. 운하로 대국이 됐다고 해서 아무때나 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육로가 험난했을 때 가장 편한 길은 수로였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에는 남해안·서해안의 소금이 한강을 거쳐 마포나루에 실려져 왔다.

남북화해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은 운하의 시대가 아니라 철도의 시대다. 부산항에서 출발한 물류가 동해안과 북한,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유럽에 도착할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수심 6m의 운하에 집착했던 이명박 정부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철도의 시대가 멀지 않았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편집실에서바로가기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