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돗물 사태, 불신은 못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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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출된 과불화화합물 수치는 낮지만 국내기준 없어 주민들 불안

대구지역의 수돗물에서 과불화화합물이 검출되며 지속된 수돗물 불안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그러나 환경부와 대구시 상수도본부가 적극적으로 수돗물 불신 기류에 대해 진화에 나서기는 했지만 시민들이 불안감을 품게 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언제든 ‘수돗물 패닉’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낙동강 유역 정수장에서 일부 민감계층에게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과불화화합물 수치가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지만 당국의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안병옥 환경부 차관(가운데)이 6월 25일 대구 달성군 매곡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을 시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안병옥 환경부 차관(가운데)이 6월 25일 대구 달성군 매곡정수장을 방문해 수돗물을 시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시 곳곳의 매장에서 먹는샘물이 품절될 정도로 수돗물 불안 사태가 일어난 배경은 무엇보다 불신에 있다.

해외 기준에 비춰봐도 낮은 수치

특히 논란이 된 물질인 과불화헥산술폰산(PFHxS)은 발암물질이 아니라 환경호르몬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이 물질이 대구보다 낙동강 상류지점에 있는 구미하수처리장에서 1ℓ당 5.8㎍ 검출됐다는 사실이 불안을 증폭시킨 것이다. 오염물질의 농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지점인 하수처리장에서 실제 상수도를 공급하는 매곡·문산정수장까지의 거리는 30㎞가량 떨어져 있다. 해당 물질이 다량 검출된 5월 기준 매곡·문산정수장에서 정수한 수돗물의 과불화헥산술폰산 농도는 두 곳 모두 ℓ당 0.004㎍에 불과했다. 국내 기준은 없지만 해외의 권고기준인 캐나다 0.6㎍/ℓ, 독일 0.3㎍/ℓ 등에 비춰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였던 것이다. 낙동강에 흘러드는 산업하수가 과불화화합물로 오염된 점 자체는 문제지만 정수과정에서 농도가 인체에 위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로 크게 낮아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안이 과도하게 유포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안과 불신의 배경이 된 요인 자체는 아직도 유효하다. 과불화화합물이 어느 정도 이하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준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환경부는 대구 수돗물 사태 이후 내놓은 설명자료를 통해 이미 2017년부터 눈에 띄게 늘어난 과불화화합물 검출량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미 낙동강 수계의 정수장에서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의 과불화화합물 검출량만 해도 감시항목으로 설정할 것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과불화화합물의 농도는 낮지 않았다. 당국이 보다 일찍 과불화화합물을 먹는 물 수질 감시항목으로 지정하고 관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는 수돗물 불안 사태가 빚어진 셈이다.

2017년 12월 발간된 ‘국내 주요 정수장의 과불화화합물 분포 및 위해성 평가’ 논문을 보면 전국의 모든 정수장에서 과불화화합물의 ‘평균’ 잠재위험지수는 세계보건기구(WHO) 허용수준의 10분의 1을 넘기지 않았다. 이 수치만 보면 안전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주목해서 봐야 할 세부 데이터가 있다. 낙동강 유역 정수장들에서 검출된 과불화화합물 수치 중 최대치(2012~2016년)는 WHO 허용수준의 10분의 1을 훌쩍 넘겼다. 국내 수질기준 감시항목으로 지정해야 하는 기준을 넘긴 것이다.

감시항목은 많지만 기준치는 없어

위해성 평가에는 평균값 말고도 95%값이라는 지표가 쓰인다. 일반적인 수준보다 더욱 민감한 집단에 유해물질이 노출될 경우를 고려해 평균값 대신 사용하는 값이다. 이 지표로만 판단한다면 수돗물 중의 과불화화합물을 이미 감시항목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평균값’만으로 봤을 때는 기준을 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문제가 된 과불화화합물을 일찌감치 수질 감시항목으로 넣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해당 논문을 쓴 국립환경연구원 등의 연구진도 “국내 수질기준 감시항목의 설정 여부 판단기준인 WHO 허용 위해수준의 10분의 1을 넘지 않으므로 별도의 관리기준을 설정할 단계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PFCs(과불화화합물)의 검출빈도가 낮지 않으므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인체 위해 여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며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과불화화합물이라는 물질은 이번 수돗물 사태로 일반에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일상 곳곳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조리시 프라이팬 등에 음식이 눌러붙지 않게 하는 코팅제나 등산복 등의 의류에 방수소재 등으로 활용된다.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쉽게 변형되지 않는 성질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지만, 반대로 이러한 안정성 때문에 자연계에서 쉽게 생분해되지 않고 생물체 내에 축적되는 단점도 있다. 때문에 일부 과불화화합물은 2009년부터 국제협약으로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s) 목록에 올라 보다 중점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질과 관련해 올해 7월부터 먹는 물 수질감시항목으로 지정돼 보다 세부적인 계측과 관리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에 앞서 문제가 터지고 만 셈이다.

먹는 물에 대한 규제는 ‘먹는 물 수질기준’과 ‘먹는 물 수질감시항목’에 따라 이뤄진다. 수질기준에서는 법적으로 기준치가 정해진 59항목을, 감시항목은 향후 추가되는 과불화화합물 3종과 라돈을 더해 32항목을 모니터링한다. 과불화화합물이 새롭게 포함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국내의 기준은 세계적인 수질기준보다 치밀하지 못하다. 한국수자원공사가 공급하는 수돗물은 법으로 규정된 수질기준과 감시항목 외에도 276개 항목을 추가로 검사한다. 항목수는 많지만, 문제는 어느 정도로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수자원공사의 추가 검사항목 중 WHO나 해외 각국의 자체 기준이 마련된 데 비해 국내 기준은 없는 항목만 90개에 달했다.

대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판매량이 급증한 먹는샘물을 채워넣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직원이 판매량이 급증한 먹는샘물을 채워넣고 있다. / 연합뉴스

“검사는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로 인체에 영향이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얘기다. 새롭게 항목을 지정하고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너무 보수적으로 접근해서 나타나는 폐해도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수자원분야 연구자의 말이다. 이 연구자는 수돗물이 될 원수나 정수과정을 거친 정수 모두 수질이 좋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당국과 학계 모두 그 점에 안주해 새롭거나 알려지지 않은 오염원에 대해 방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점을 우려했다.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나타나는 배경에도 시민들의 불신을 불식시킬 정도의 철저한 검사항목 지정과 기준 설정은 더딘 데서 나타나는 시각차가 자리잡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연구자는 “시민들의 불신과는 달리 수돗물이 깨끗하게 공급되고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인식시킬 수 있게 하는 작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준이 정해진 항목에서만 보면 국내의 수돗물이 국제적인 기준으로도 우수한 수질로 공급되고 있지만, 정수된 수돗물과 취수원인 하천의 오염실태에 차이가 크다보니 나타나는 착시현상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낙동강 수계에는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간 구미나 대구 등의 지역에 대규모 공단이 자리잡고 있어 대구·경북은 물론 하류의 부산·울산·경남에까지 수질 관련 이슈가 파급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과불화화합물 역시 최근 5년간 검출된 수치를 지자체별로 비교하면 전국에서 울산이 가장 높고 그 다음으로 경남, 부산, 대구, 경북 순서로 상위 5 지역을 모두 영남권에서 차지했다. 이태관 계명대 교수(환경과학과)는 “낙동강 수돗물에서 높게 나온 물질들은 대부분 공장 등 산업체에서 사용하는 것”이라며 “이들 물질은 미량이라도 장기간 섭취하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물질별로 발생원을 추적하는 등 엄격하게 원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과불화화합물이 낙동강 수계에서 높은 농도로 나타나는 데에는 산업단지를 많이 끼고 있다는 점과 함께 비교적 강수량의 기복이 커 갈수기에는 유속이 느리다는 점이 지목된다. 여기에 4대강 사업으로 설치한 보 때문에 강물이 흐르는 속도와 유량 모두 과거에 비해 줄어 분해되지 않고 축적되기 쉬운 과불화화합물의 특성상 더욱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지적이다. 산업시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북미 알래스카의 북극곰 체내에서도 위험수준으로 과불화화합물이 축적된 사례가 발견됐다는 점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류의 생체 축적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다.

산업용수 무방류시스템 갖춰야

때문에 보다 전면적으로 과불화화합물 등 수질을 악화시키는 물질을 직접 하천이나 바다에 내보내는 대신 산업용수 무방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근본적인 대안의 하나로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시민들의 과도한 불안을 조성하며 상수도 당국에 불신의 화살을 집중시키는 대신 관심을 산업시설로 돌려야 한다는 환경단체들의 자성도 포함돼 있다. 서울의 한 환경단체 활동가는 “지역 환경단체에서도 산업하수를 해당 기업이 처리하지 않고 법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무분별하게 방류하는 데 대해 경고했지만 분위기상 기업보다는 정부와 지자체를 성토하는 쪽으로 흘러가 문제의 본질이 오도됐다”며 “그나마 일반시민들보다는 환경과 수질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환경단체를 비롯해 언론에서도 불안 조장 대신 대안을 제시했어야 했는데, 총체적으로 실패한 감이 있다”고 말했다.

관련 학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불화화합물이 상수원으로 흘러들어오는 경로는 90%가량이 직접 하수 배출에 따른 것이다. 원료 처리와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슬러지를 통해 유입되는 경우가 나머지 10% 정도를 차지한다. 이렇게 유입된 과불화화합물은 오염물질이 집결되는 하수처리장 주변 유역에서는 보다 고농도로 검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애초에 배출기준 등 법적인 관리항목이 엉성했던 문제에, 낙동강처럼 축적이 용이한 수계 환경과 일부 구간의 문제, 여기에 당국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겹치면서 문제가 된 오염원을 직접 처리하는 대신 상수도 불신이라는 엉뚱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감시항목 지정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과불화화합물을 먹는 물 수질감시항목으로 관리키로 발표한 것 자체가 2012년부터 전국 정수장을 대상으로, 올해 5월에는 낙동강 수계 18개 정수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서 나온 결과”라며 “외국의 권고기준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건강상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사전 예방 차원에서 감시항목으로 지정하고 배출원을 차단하는 등의 저감조치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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