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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사전심사 통과는 ‘바늘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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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자 대부분 거절당해 추방… 최소한의 기회도 못 얻고 떠나

2012년 난민법이 제정된 이후 매년 세계 각지의 난민들이 한국을 찾고 있다. 지금까지 누적 난민신청자는 4만470명. 이 중에 난민으로 인정받은 숫자는 839명, 4.1%다. 인도적 체류허가자 1540명을 합쳐도 난민신청자 중 11.7%만이 난민심사를 마치고 한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난민문제 활동가들은 난민을 대하는 우리의 법·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입국절차 과정에서 진행되는 사전심사의 문턱이 너무 높고, 난민법 제정 당시 시민단체가 요구한 독립적인 난민위원회 설치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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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7월 1일 시행된 난민법은 제정 이유에서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난민을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지 아니하여 국제사회에서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고, 난민 인정절차의 신속성·투명성·공정성에 대하여 국내외적으로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법은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유엔 난민협약) 등 국제법과 국내법의 조화를 꾀하고,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을 다지려는” 목적에서 제정된 것이다.

사전심사제도 본래의 취지 못 살려

신설된 난민법에 따라 출입국관리소는 한국에 온 난민에 대해 7일 이내에 난민 인정심사에 회부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난민문제 활동가인 김연주 난민인권센터 변호사는 난민법이 ‘명백히 난민이 아닌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최대한 난민심사 신청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고 해석했다. 유엔 난민협약에 의하면, 난민이 현재 살고 있는 국가의 안보에 위협이 되거나 중범죄를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아 지역사회에 위험을 초래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강제송환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난민인권센터가 공개한 ‘2017년 난민심사현황’에 의하면 난민심사의 기회도 잡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공항에서는 184명이 난민심사를 신청했다. 하지만 심사에 회부된 사람은 20명뿐이다. 제주공항에서는 11명이 난민 인정심사를 신청했으나 1명만 사전심사를 통과했고, 김해공항에서는 2명이 신청했으나 모두 거절됐다.

김 변호사는 “입국하기 전에 거절이 된 난민은 한국에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이의신청을 제기하기가 매우 어렵다. 7일간의 불완전한 사전심사만으로 난민을 본국으로 돌려보냈을 경우 생명의 위협 등 심각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며 “난민으로 온 사람들이 난민심사는 받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회는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난민문제 인권운동가들은 사전심사 단계에서 난민 인정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이 이의제기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난민이 사전심사를 통과하면 정식으로 난민심사를 신청한 것으로 간주되어 입국이 허용된다. 하지만 입국이 결정된 난민들이 외국인보호소에 갇히는 일들도 종종 발생한다. 위조여권으로 입국한 사실이 드러나거나, 언어의 장벽으로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해 불법체류자로 간주되는 경우다.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대법원에서 난민불인정 취소소송에서 최종 승소한 난민신청자 ㄱ씨도 위조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다. 이현서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감사와 동행) 변호사는 ㄱ씨가 위조여권 문제 때문에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이상을 지냈다고 설명했다. 이 사람이 난민인지 아닌지 신원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변호사는 “정치사범 등 본국에서 정식 절차를 밟아 한국으로 오지 못하는 난민의 경우 어쩔 수 없이 위조여권을 쓰는 경우가 있다. 나중에 ㄱ씨가 난민이며 정확한 신원을 보호소 측에 입증했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구금상태에 있었다. 보호소에서 나온 이후에도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증세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외국인보호소는 강제퇴거 대상인 외국인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현재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보호 대상 외국인의 송환이 가능해질 때까지 외국인보호소는 계속 대상자를 ‘보호’할 수 있다.

공익법재단 어필의 이일 변호사가 제시한 난민법 개정안은 강제송환 금지를 명시한 난민법 3조에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구금을 제한하는 원칙을 명시했다. 난민신청자를 보호소에 구금하더라도 난민신청을 한 때로부터 1년을 넘길 수 없어야 한다는 게 이일 변호사 등 난민문제 활동가들의 주장이다.

한국의 난민인정 비율이 낮기 때문에 ㄱ씨 등 많은 난민들은 난민위원회에 이의제기를 하거나 행정소송에 들어간다. 난민문제 인권운동가들은 난민법의 제정 이유처럼 신속하고 공정하게 난민들의 이의신청을 다루기 위해서라도 정부 내에 난민문제를 다루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설 난민심판원 신설 추진

난민위원회는 난민법에 의해 설치된 비상설기구로 난민들의 이의신청 심사건을 ‘심의’한다. 난민위원회 위원장은 법무부 차관으로 사실상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법무부의 난민 관련 통계를 보면 난민위원회의 업무량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15년 난민위원회는 총 2016건의 난민 이의신청 건을 심사했다. 하지만 2016년에는 난민 이의신청 건이 총 4347건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난민위원회에서 4542건의 이의신청을 심의한 것으로 나온다.

ㄱ씨처럼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소송도 늘어나고 있다. 사법정책연구원의 자체 통계분석에 의하면, 난민과 관련된 재판은 2013년 163건에서 점점 늘어나 2015년엔 1000건을 돌파(1075건)했다. 2016년에는 2489건으로 1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대부분은 서울행정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지만, 2016년 들어 부산지법 290건, 대구지법 135건 등 지방에서도 난민 관련한 사건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6월 법무부와 유엔난민기구 한국사무소 등이 주최한 난민포럼에서도 난민심판원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발표가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법무부 관료, 학자, 인권운동가 사이에 차이가 있으나 난민문제를 다루는 상설기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성수 변호사 등 일부 토론자는 난민위원회를 준사법기관으로 만들어 난민위원회의 결정이 1심 판결에 준하는 효력을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일 변호사 등 난민문제 인권운동가들은 난민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난민문제 활동가들은 난민위원회를 상설기구로 할 뿐만 아니라 법무부로부터 독립적이며 심의와 의결권한을 같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난민위원회 위원 자격에서 ‘난민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한 일선 활동가는 난민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을 우려했다. 한국이주인권센터 박정형 활동가는 정부가 난민 보호대책을 내기에 앞서 예멘 국적자의 추가 제주도 입도를 막고, 이미 제주도에 들어온 난민들을 다른 시·도로 가지 못하게 한 정부의 조치가 난민에 대한 혐오를 부추겼다고 봤다. 그는 “이미 500명이 입국했는데 어떻게 할 줄을 모르고 방치하다가 제주도민 사이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일어나자 그제야 난민들에게 취업기회를 했다. 정부는 난민을 반대하는 세력의 눈치를 볼 게 아니라, 국제기준에 맞게 예멘 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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