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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삶의 각종 지표는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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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은 높아지고 혼인율·출산율은 낮아져… ‘마음의 병’ 환자는 크게 늘어

88만원 세대론이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당시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90년대생들은 이제 사회로 나왔다. 그들을 맞이한 사회는 88만원 세대에 대한 우려보다 냉혹했다. 청년 실업률과 혼인율을 비롯한 청년층의 ‘미래’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는 바닥으로 치닫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가 청년빈곤 문제로 바뀌는 동안 청년들 사이에는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이 파고들어 왔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청년들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제4회 알바데이 행사에 참여한 아르바이트노동조합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있다. / 서성일 기자

제4회 알바데이 행사에 참여한 아르바이트노동조합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자리에 앉아 있다. / 서성일 기자

93년생 이대진씨(가명)는 학창시절이 그립다. 종종 모교 교정을 찾기도 한다. 이씨가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씨의 얘기를 듣고 “요즘 끼니 걱정하며 굶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이씨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밥’ 걱정을 털어놨다. 얘기는 이렇다.

이씨는 부산의 대형 호텔에 입점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노동자다. 일주일 내 4일씩 일하다 두 달 전부터 스케줄을 바꿔 주말만 일한다. 3년 전 택배 상하차 작업을 하다 다친 허리 통증이 도졌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이씨가 하는 일은 계산대에서 바코드만 찍는 게 다가 아니다. 출근하면 청소부터 시작해서 틈틈이 편의점 창고 정리를 한다. 제품은 많고 창고가 좁다보니 사다리를 타고 작업을 해야 한다. 사다리 위에서 작업을 하다 다치는 노동자들도 많다. 수시로 제품이 들어오기 때문에 판매와 정리, 청소를 반복한다. 결국 다친 허리는 주4일 근무를 버티지 못했다.

하루 끼니 걱정하며 사는 알바 인생

이씨가 주말 내내 편의점에서 일해서 버는 돈은 65만원. 집안형편이 어려워 집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씨의 한 달 생활비다. 여기서 학자금대출을 갚고 식비와 병원비, 휴대폰 요금을 내고 나면 지갑이 텅 빈다. 밖에서 사먹는 밥은 이씨에게는 사치다. 학생식당에서 먹는 밥도 부담스럽다. 500원짜리 생수 하나를 놓고도 살지 말지를 고민한다. 어쩌다 사먹는 한 끼에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씨는 “10년 전이 더 행복했다”며 “적어도 그때는 학교가 밥을 줘서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취업해서 집을 사고 결혼해서 애를 낳는 삶’을 포기했다. 스스로를 사회에서 ‘도태된 청춘’이라 불렀다. 물론 처음부터 제도권의 꿈과 동떨어졌던 건 아니었다. 안정적인 공기업에 들어가 중산층으로 살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하지만 이씨는 롤모델을 찾지 못했다. 비슷한 처지의 선배, 동기 가운데 취업에 성공해 행복한 삶을 사는 이가 없었다. 수년 동안 치열하게 취업 준비를 하던 선배들은 결국 비정규직을 전전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가 됐다. 대학 3학년 때 이씨에게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증상은 갈수록 심해졌다. 졸업반이 되면서 불안장애 증상까지 나타났다. 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겼다며 자책하던 이씨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알바해서 번 돈으로 병원을 돌며 다친 허리와 마음을 치료하고 있는 셈이다. 이씨는 “나는 지금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중산층이 될 가능성은 없는 최하층의 어딘가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힘들 때면 나 자신을 위해 매달 20만원을 쓰는 상상을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청춘은 여기도 있다. 96년생 김미현씨(가명)가 일하는 서울 강남 의류매장에는 의자가 없다. 주6일, 아침 10시30분부터 저녁 7시3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서서 일한다. 중학교 2학년 때 찜닭전문점 알바로 시작해 놀이동산, 대형마트, 일식 주점을 거치며 ‘노동’에는 이골이 난 김씨에게도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9시30분. 책을 좀 읽다가 쓰러지듯 잠을 잔다.

한 달 150만원을 받는 김씨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밥’이다. 김씨가 고민하는 ‘밥’이 정신적인 ‘빈곤’을 뜻하는가 물었더니 “그냥 먹는 밥이다”라는 무심한 대답이 돌아왔다. 김씨가 ‘먹는 밥’을 말한 이유는 이렇다.

[표지 이야기]청년층 삶의 각종 지표는 최악

우울증 환자 증가 전 세대 중 가장 높아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 김씨는 한 달 생활을 150만원에서 모두 해결해야 한다. 가장 큰 부담은 식비다. 회사에서 따로 식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매일 사먹는 점심이 가장 큰 지출이다. 김씨가 일하는 매장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한 명씩 교대로 나가 밥을 먹는다. 김씨가 점심에 주로 먹는 메뉴는 햄버거. 3900원짜리 세트 메뉴 ‘더블킹’이다. 어쩌다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면 햄버거 대신 투썸플레이스에서 ‘아이스 라테’로 점심을 대신한다. 밥과 커피를 모두 사먹을 여력이 없다. 김씨는 “오늘 당장은 사먹을 수 있지만, 그럼 내일 하루는 굶어야 한다”며 “밥이 해결돼서 식비만 줄어도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식비 외에 김씨가 지출하는 고정비는 더 있다. 전세자금대출(7500만원) 이자를 내고 가스비와 전기세를 낸다. 교통비와 생필품 구입비도 반드시 써야 하는 돈이다. 또 하나, 병원비와 약값이 있다. 김씨는 우울증 환자다. 지난해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도 삶에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자살 충동은 늘 따라다닌다. 김씨는 죽지 않기 위해 고양이를 데려와 함께 살기로 했다. 이름은 ‘내일’로 지었다. ‘내일’이 식구가 되면서 지출도 커졌다. 김씨는 “고양이는 ‘나로 하여금 내일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라며 “내가 굶더라도 떨어져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청년들은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 자료에 따르면 20대 공황장애 환자는 2016년 1만3238명으로, 5년 동안 연평균 13.3%씩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8024명)보다 65%나 늘어난 수치다. 10대는 38.8%, 30대는 37%의 증가율을 보였다. 2017년에도 20대 공황장애 환자는 1만6580명을 기록해 증가세를 이어갔다.

우울증을 앓는 청년층도 늘고 있다. 20대 우울증 환자는 지난 2012년 5만2793명에서 2016년 6만4497명으로 늘어났다. 무려 22.2%나 증가한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 인구 10만명당 우울증 환자 수는 2012년 784명에서 2016년 943명으로 늘어났다. 연평균 증가율은 4.7%로 전체 세대 평균 수치인 1.6%의 3배에 달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도 늘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발간한 <2018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10대 자살률은 2015년 4.2명에서 2016년 4.9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20대 자살률도 16.37명에서 16.38명으로 소폭 증가했다. 20대와 30대의 실제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은 OECD 국가들의 평균 자살률을 넘어섰다.

이른바 ‘분노조절장애’로 불리는 ‘습관 및 충동장애’ 진료를 가장 많이 받은 연령대도 청년층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 빅데이터에 따르면 습관 및 충동장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5986명(2017년 기준) 가운데 20대(29%) 비율이 가장 높았고, 30대 20%, 10대 19%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의 70% 가까이를 청년층이 차지한 셈이다. 이정현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제때 치료를 받지 않는 청년들도 많다”며 “숨은 환자들은 불안증상이 높아지면서 실패 경험이 쌓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어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표지 이야기]청년층 삶의 각종 지표는 최악

청년들의 삶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는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청년실업률은 10.7%(2018년 4월 기준)로 10년 전인 7.1%(2008년)보다 높아졌다. 그나마 취업에 성공한 청년들도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 임금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중은 35.7%(2017년 8월 기준)에 달한다. 60세 미만 근로자 가운데 유일하게 청년층 비정규직 비율만 높아졌다. 2003년 8월 기준 31.8%에서 14년 사이에 3.9%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월평균 근로소득, 60대보다도 낮아

청년들의 소득수준도 바닥에 머물고 있다.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일자리 행정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9살 이하 청년층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82만원으로 은퇴 세대인 60세 이상 노동자의 월평균 근로소득 186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자리 역시 2030세대 청년 일자리는 532만개로 전년보다 16만개 줄어든 반면 60대 이상 일자리는 288만개로 28만개 늘었다.

이 같은 청년층의 일자리 감소는 혼인율 하락으로도 이어졌다. 2017년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따지는 조혼인율은 5.2건으로 지난 2007년 7건에서 감소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4500건으로 전년 대비 6.1%인 1만7200건 감소해 4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출산율도 낮아졌다. 2008년 기준 1.192명에 달했던 합계 출산율은 2017년 1.05명으로 떨어졌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 10년 동안 청년층의 삶의 질이 악화되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며 “특히 인구가 많은 25세에서 29세 연령층은 사회 취약계층으로 낙인 찍혀 사회에서 도태될 수 있다”고 말했다.

88만원 세대 담론의 등장은 청년실업 문제라는 화두를 던졌다.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청년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에 해당하는 30세 미만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8만1000원으로 나타났다. 30세 미만 저소득 청년 가구의 월 소득은 2013년(90만8000원) 이래 계속 낮아지고 있다. 청년가구가 떠안은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위의 조사를 살펴보면 30세 미만 가구의 부채 보유액은 2385만원으로 전년(1681만원)보다 무려 41.9% 늘어났다. 2010년 이후 7년 동안 30세 미만 청년의 부채는 154.8%나 급증했다. 천주희 새로운사회연구원 현장연구센터 팀장은 “오늘의 청년 빈곤은 미래의 노인 빈곤으로 이어진다”며 “여러 지표들의 심각성은 20~30년 후에 한국 사회가 직면해야 할 문제로, 우리에게 보다 일찍 도착한 미래”라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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