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어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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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주간지 미래를 위한 제언, 종이 시절의 관행을 버려야 산다

내가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으로 있던 시절, 사내 워크숍에서 이런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제목만 봐도 내용을 다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사, 좋은 기사(일 것 같)지만 굳이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 기사, 이런 기사를 만들어서는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잠재 독자들에게 콘텐츠 패키지의 브랜드를 계속해서 다시 인지시키는 것, 뉴스의 파편화에 맞서 독자들이 맥락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친절하면서도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새로운 뉴스 큐레이션 문법을 만든 악시오스, 퀄리티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디인포메이션, 쿼츠의 데일리브리프의 모바일 접속 화면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잠재 독자들에게 콘텐츠 패키지의 브랜드를 계속해서 다시 인지시키는 것, 뉴스의 파편화에 맞서 독자들이 맥락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친절하면서도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은 왼쪽부터 새로운 뉴스 큐레이션 문법을 만든 악시오스, 퀄리티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디인포메이션, 쿼츠의 데일리브리프의 모바일 접속 화면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는 날마다 200여개 기사 공급 제휴 언론사들이 2만건 이상의 기사를 쏟아낸다. 포털 종속 논란과 별개로 어쨌거나 여기서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는 페이지뷰가 권력이다. 세상을 바꾸길 원한다면 일단은 읽혀야 한다.

아직도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노동 이슈는 오히려 쓰기 쉽다. 미생과 송곳의 사이 그 어딘가, 분명히 중요한 기사지만 아무도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기사, 시스템을 건드리지 못하고 적당히 쓰는 사람의 정의감과 자기만족에 그치는 이런 기사들은 약간의 공감을 얻겠지만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대개의 경우 애초에 읽히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이 만드는 매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이럴 때는 이런 기사 좀 써줘야지, 공식처럼 따라 나오는 상투적인 기획도 그렇고, 우리 이런 기사도 쓴다고 과시하는 듯한 스치고 지나가는 르포 기사도 마찬가지다. 종합하고 분석한다는 명분으로 ‘우라까이’ 선물 세트에 적당히 전문가 코멘트 몇 개 붙여넣는, 이른바 묻어가는 시의성 기사들은 말할 것도 없다. 정보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감동이 있거나 뭐가 됐든 읽는 시간이라도 아깝지 않아야 한다.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기사가 돼야

저널리즘 생태계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나는 특별히 시사주간지 시장에 미래가 있느냐는 주제로 원고 청탁을 받았다. 세 가지 비슷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첫째, 시사주간지라는 콘텐츠 패키지는 여전히 유효한가. 둘째, 이 콘텐츠 패키지는 1회 4000원, 연간 18만원의 비용을 지불할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가. 셋째, 이 콘텐츠 패키지를 일주일에 한 번 우편으로 받아볼 의사가 있는 독자들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는가.

우선, 한국은 뉴스 신뢰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언론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23%만 그렇다고 답변했다(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 조사). 대부분의 독자는 네이버와 다음에 있다. 전체 뉴스 이용률의 86.4%가 포털에서 이뤄지고, 언론사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독자가 PC에서는 87.8%, 모바일에서는 73.9%에 이른다(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신뢰도가 낮은 이유는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도 관련이 깊다.

포털 종속은 저널리즘 다양성을 무너뜨렸다. 읽히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했지만 거의 똑같은 기사 수백 건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 최근 개편하기 전까지 네이버 뉴스 섹션은 하루 200개 정도 기사를 선택해서 편집했는데 200개를 고르기 어려울 때도 많다고 했다. 읽히려면 그나마 뜨는 기사에 묻어가는 게 안전하기 때문에 이슈를 뒤쫓는 것이다. 언론사로서도 불행한 일이지만 저널리즘 생태계에 치명적인 조건이다. 독자들이 떠나는 건 이유가 있다.

이미 광고시장에서 잡지는 가장 먼저 물량을 줄이는 추세다. 여성 월간지 시장은 죽은 지 오래고 다음은 시사주간지라고들 한다. 정기 구독도 위험하다. <주간경향>은 그나마 2000년 대비 지난해 발행부수를 비교하면 꽤 늘어난 편이지만 <한겨레21>은 8년 동안 36.2%나 줄었다. 광고와 구독이 동시에 무너지는 속도는 신문보다 잡지가 훨씬 더 빠르다. <월간조선>과 <매경이코노미> 등 일부 잡지의 구독이 늘긴 했지만 사실상 B2B 모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콘텐츠 패키지를 다시 구성하고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이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는 어디에나 넘쳐나지만 그만큼 다른 뉴스에 대한 갈망은 더욱 강렬해졌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잠재 독자들에게 콘텐츠 패키지의 브랜드를 계속해서 다시 인지시키는 것, 뉴스의 파편화에 맞서 독자들이 맥락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친절하면서도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하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똑똑하면서도 간결한 뉴스를 표방한 미국의 악시오스(Axios)는 새로운 뉴스 큐레이션 문법을 만들어냈다. 최고의 기자들을 모아 압축적으로 이슈를 요약하는 서비스다. ‘왜 이게 중요한가(What it matters)’라는 제목으로 처음 노출되는 콘텐츠는 100단어 내외. 악시오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읽기(read more) 버튼을 두고 ‘빅 픽처(the big picture)’,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기(go deeper)’, ‘맥락을 돌아보기(flashback)’ 등 추가 콘텐츠를 제공한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갈망은 더 커져

디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은 디지털 네이티브 시대에 퀄리티 저널리즘의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기자는 14명, 하루 출고하는 기사는 2건 남짓이지만 연간 구독료가 399달러, 프리미엄 회원은 회비가 1만 달러나 된다. 명확한 타깃 독자를 설정하고 강력한 콘텐츠로 브랜드를 구축한 것이 비결. 최고의 기자들을 뽑아 팬덤을 만들고 이들이 확보한 고급 취재원들과 독자들의 네트워킹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쿼츠(Quartz) 역시 수많은 도전과 실험으로 진입장벽을 만든 사례다. 군더더기 없이 짧게 쓰거나 탈탈 털어서 뽕을 뽑거나, 300에서 600단어 사이의 기사를 쓰지 않도록 하는 이른바 ‘쿼츠 커브(curve)’ 전략이 주효했다. 일찌감치 홈페이지를 포기하고 멀티 플랫폼 전략에 주력했고, 데일리 브리프(Daily Brief)라는 이름으로 뉴스레터에 인력과 비용을 투자해서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 냈다. 쿼츠의 뉴스레터는 42%라는 놀라운 오픈 비율을 기록하고 있다.

사례를 들라면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다른 뉴스에 대한 수요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뿐만 아니라 온라인 매체를 비롯해 모든 텍스트 매체의 위기다. 미디어 환경이 달라졌고 사람들의 습관이 달라졌다. 콘텐츠 패키지가 해체되고 뉴스가 맥락을 잃고 파편화된 채로 떠돈다. 그럴수록 패키지를 다시 구성하고 맥락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다.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장르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 지 오래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2만건의 기사 가운데 우리는 어떤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여전히 그 시장에서 지금 하던 대로 해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지금 같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대로 가도 된다. 그게 아니라면 변신을 서둘러야 한다. 여전히 시사주간지가 담을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 포맷이 있다. 뉴스의 이면을 짚고 맥락을 부여하는 주간 단위의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사주간지라는 형식에 매이지 않기를, 특히 종이에 지나치게 많은 투자를 하지 않기를 강력하게 조언한다. 콘텐츠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좀 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접근 방식과 디지털에 맞는 강력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낡은 문법과 기자들 특유의 이슈를 추종하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 한 발 물러서서 큰 그림을 계속 고민하고 그걸로 독자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그게 역설적으로 종이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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